발행인칼럼2

제목“금방 그 친구랑 오줌 같이 누고 왔다니까!” #4372022-07-23 15:52

금방 그 친구랑 오줌 같이 누고 왔다니까!”

 

안녕하십니까? 박 실장님!” “어이구! 이게 누구십니까? 김 차장님! 오랜만입니다. 언제 김 차장님이랑 쏘주 한 잔 해야 하는데…”

 

쏘주, 좋지요. 빨리 날 한 번 잡으세요. 제가 쏘지요그나저나 요즘 홍보실 식구들 정신 없겠어요? 귀하신 분 모시려니…”  아니, 김 차장님무슨말씀이세요?” “에이, 박 실장님. 왜 이러세요. 우리 사이에…”

 

순간 박진호 실장 얼굴에 일말의 당혹스러움 같은 게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1991년 초, D그룹 계열 종합상사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가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이런저런 정보들을 수집하고 작전을(?) 구상한 끝에 그날 저는 전재용 인터뷰를 위해 D그룹 홍보실로 뛰어 들었고, 역시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는 법은 없었습니다.

 

박 실장님, 이러지 맙시다. 내가 뭐 ‘D그룹이 대졸신입사원을 100퍼센트 공개채용 한다 해놓고 뒷구멍으로 전직 대통령 아들 뽑았다이렇게 쓰겠습니까? 미국서 이혼하고 고국에 돌아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재용씨 얘기 좀 들어보자는 거 아닙니까? 선수끼리 자꾸 이러지 맙시다. 내가 조금 전 그 친구랑 오줌도 같이 누고 왔어요. 그 친구 생각보다 키가 크더군요. 턱 쪽은 엄마를 빼 닮았고자자, 시간 끌지 말고 얼른 시작합시다.”

 

계속 발뺌하던 박 실장은 안 되겠다 싶었던지 어디론가 몇 군데 전화를 돌리고 나서 그럼, 김 차장님… 20분만 만나시는 걸로 하고잘 부탁 드립니다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전재용씨와의 인터뷰는 1시간 반을 훌쩍 넘기면서 진행됐습니다. 당시 포항제철 박태준 회장의 딸 경아씨와 이혼,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한 그는 자신의 지난 삶과 앞으로의 계획들에 대해 비교적 진솔하게 털어놨습니다. 인터뷰 후 우리는 전재용씨를 디스플레이 룸으로 데리고 가 여러 가지 옷들을 들고 다양한 포즈를 취하게 했습니다. 

 

그와의 인터뷰는 본지특종 / 이혼의 아픔 딛고 D그룹 신입사원으로 새 출발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 차남 재용씨 단독 인터뷰라는 제목을 달고 곧 바로 올라 갔고 회사에서는 특종상이 논의 됐습니다.

 

하지만 저와 선배 사진부장에게 돌아올 뻔 했던 특종상은 철저히 보안을 유지해오던 D그룹이 저한테 전재용씨를 들키자(?) ‘에라,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하는 마음으로 여러 매체에 대놓고 공개를 하는 바람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래도 결코 쉽지 않았던 그 인터뷰를 처음으로 따냈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 인터뷰 성사의 요건은 정보력과 자신감이었습니다. 당시 저에게는 D그룹 인사부에 선후배처럼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기초 정보를 어지간히 확보한 후 그를 통해 전재용씨가 D그룹 종합상사 섬유수출사업부 신입사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그 부서가 7층에 있고 그는 생각보다 키가 크며 턱은 뾰족하고…’ 하는 등의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를 화장실에서 만났다는 건 거짓말이었습니다.

 

박진호 실장은 저와의 기 싸움에서 졌습니다. “내가 방금 만났다는데 뭘 자꾸 숨기려 들어?’ 하는 제 눈빛에 그가 꺾였던 것입니다.

 

비단 기자의 경우뿐만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 정확한 자료와 정보, 그리고 자신감만 갖춘다면 안 될 것 같은 일까지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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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