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금요일 아침의 행복 #4362022-07-23 15:52

금요일 아침의 행복

 

아파트 생활을 하던 한국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풀 냄새, 흙 냄새가 매우 친근하게 다가 옵니다. 나무 위를 오가며 쉴 새 없이 재잘대는 각양각색의 새들이 정겨움을 더해줍니다.

 

정원 한 켠에서는 고양이가 새끼 도마뱀을 요리조리 굴리며 재롱을 부립니다. 수영장 쪽 펜스 너머에서는 골든 리트리버 한 마리가 여자아이답지 않게(?) 씩씩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커다란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 누워 아내와 함께 따뜻한 커피 향을 음미하며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볕을 반깁니다. 아내가 정원에 만들어 놓은 두 개의 분수는 제법 예쁜 물 소리를 냅니다.

 

<코리아 타운> 가족들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만 일을 합니다. 그래서 금요일 아침이 저에게는 실질적인 주말 아침이고, 일주일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됩니다. 물론, 금요일 점심 무렵부터 토요일 오후까지 저는 다시 회사에 나가 이런저런 일들을 합니다.

 

여하튼, 금요일 아침마다 만나는 이러한 그림들은 저에게는 말 그대로 행복입니다. 아내와 함께 커피 잔을 기울이며 참으로 감사하다는 얘기를 자주 하곤 합니다.

 

2주 전 미안해. 다시 열심히 뛰어서 더 좋은 집 살 게…’ 라는 제목의 제 글을 보시고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셨습니다. “정말 호주 올 때 1 4백 만원 갖고 온 거 맞아?” “한국에 있는 빚 다 갚고 왔다는 거 거짓말이지?” “그렇게 돈도 없이 왔다면서 몇 년 새에 어떻게 코리아 타운을 인수할 수 있었어?” .

 

그에 대한 저의 답은 성실신용입니다. 한국에서도 아내와 저는 시작을 어렵게 했습니다. 아버님이 결혼 전부터 남겨주신 건 사업실패로 인한 집 한 채 값 정도의 빚이었고, 아내와 저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이런저런 부업들을 해가며 그 빚들을 모두 갚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결혼 4년 만에 19평짜리 아파트를 마련했고, 다시 4년 만에 신도시 32평짜리 아파트로 옮겨 갔습니다. 무일푼, 아니 마이너스 상태에서 시작한 우리에게 성실신용외의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다.

 

20019, 시드니에 와서도 ‘1 4백만 원도 채 안 되는 돈으로 두 아이 랭귀지스쿨 학비 내고, 중고차 하나 사고, 렌트살 집 본드비 내고 나니 거의 바닥이었습니다.

 

방법은 열심히 사는 것, 낮에는 신문 잡지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새벽에는 아내와 두 아이들과 Woolworths 청소, 수영장 청소 그리고 신문배달 등을 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코리아 타운>을 인수할 때도 저에게는 신용이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한국과 시드니의 친지, 지인들에게 이러이러한 계기로 <코리아 타운>이라는 잡지사를 인수할 기회가 생겼다. 잘 키울 자신 있다. 도와 달라는 요청을 했고 저를 믿는 몇몇 분들이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셨습니다. 그 분들에 대한 고마움은 지금도 조금씩 조금씩 갚아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억울하게 날려버린 신도시 32평짜리 아파트대신 시드니에 집도 하나 마련했습니다. 한국에 비해 주택구입이 용이한 호주의 주택구입 제도와 신용덕에 아내와의 약속을 앞당겨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자랑을 하는 것도, 잘난 척 하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Wentworthville 930 스퀘어 짜리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집은 오래 됐지만 땅이 넓어서, 자연과 가까이 있어서 택한 집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내와 저는 금요일 아침마다 어김 없이 작은 행복을 만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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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