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미안해. 다시 열심히 뛰어서 더 좋은 집 살 게…” #4342022-07-23 15:51

미안해. 다시 열심히 뛰어서 더 좋은 집 살 게…”

 

한국주택은행 4 2 73만원, 조흥은행 2 3 97만원, 한일은행 2 9 84만원, 한국외환은행 1 4백만원, BC카드 7 12만원, 국민카드 9 55만원, 혜은 엄마 5 50만원, 1208호 아줌마 2백만원, 무지개수퍼 17 5 8 25…”

 

단 한 군데라도 빠질세라 몇 번이나 확인 하고 또 확인 했습니다. 애지중지하던 신도시 32평짜리 아파트를 팔아 이렇게 정산하고나니 남는 돈은 채 1 4백만원이 안 됐습니다.

 

많이 허탈했습니다. 그토록 아끼고 모아서 산 우리집이었는데 이렇게 날아가버리다니…. 돌아서서 소리 없이 눈물을 닦는 아내의 어깨를 감싸며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영은아, 미안해. 다시 열심히 뛰어서 더 좋은 집 살 게…”

 

20019월의 일이었습니다. 호주로의 맨주먹 이민을 결정하자 우리는 곧바로 집 정리에 나섰습니다. 지인들은 반 농담, 반 진담으로 어지간한 건 떼먹고 가라고 했지만 아내와 저는 단 돈 1원도 남기지 않고 모든 빚을 깨끗히 갚았습니다.

 

당시 저에게는 심각하게 많은 빚이 있었습니다. 가장 많은 애정을 쏟았던 회사가 예기치 못한 부도를 맞고 무너져가는 과정에서 16개월여 동안 월급 한 푼 안 받고 회사 살리기에 뛰어 들었던 탓이었습니다.

 

말이 1년 반이지 그동안의 생활은 말로는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은행이나 개인에게서 돈을 빌려 메꿔나갔지만 정말이지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만 했습니다. 결국 회사는 침몰해버렸고 설상가상으로 보증 섰던 3천만 원 가까운 돈까지 떠안게 됐습니다.

 

이후 저는 다른 회사에서 연봉 7천만원을 받고 있었지만 눈덩이처럼 커져 나가는 빚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시드니에 있는 한 교민매체에서 초청을 받았고 1주일의 고민 끝에 이민을 결정했습니다.

 

집을 팔아서 빚을 정리하고 1 4백만원도 채 안 되는 돈을 들고 다섯 식구가 시드니행을 준비할 때의 절박함이란…. 하지만 남의 가슴 아프게 하는 일없이 모든 빚들을 갚았다는 사실은 또 다른 편안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지난 주말, 문득 화나는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시드니에서 모발폰 대리점을 운영하다가 회사를 부도 처리한 후 얼마 전부터 부동산 컨설팅회사를 운영하는 분이 한 분 계십니다. 그 분은 회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많은 분들에게 크고 작은 피해를 줬고, <코리아 타운>에도 3천 불이 넘는 손해를 입혔습니다.

 

그것도 연락 한 번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변호사 사무실에서 편지 한 통이 날아 들었습니다. ‘회사가 정리절차에 들어가니 받아야 할 돈이 있으면 신청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얼마 후 다시 한 통의 편지가 왔습니다. ‘당신에게 지급할 수 있는 돈은 한 푼도 없다….

 

그러던 그 분이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몇 달 전부터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면서 몇몇 교민매체에 커다랗게 컬러 광고를 내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도 광고가 나왔고 그 분의 사진이 실린 기사까지도 눈에 띄었습니다.

 

사업을 하다보면 돈이 없을 수도 있고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남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는 최소한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아니 직접 얘기하기가 어렵다면 편지 한 통이라도 보내는 마음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문득 그 분이 밉다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 가족이 6년 반 전 한국을 떠날 때 단 돈 1원도 남기지 않고 빚을 다 갚고 떠난 건 정말이지 잘 한 일이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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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