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아줌마와 사모님 사이 #4412022-07-23 15:55

아줌마와 사모님 사이

 

어머! 사모님 오셨어요? 예쁜 선영이도 왔구나. 오빠는 안 왔어? 아유! 우리 선영이 더 예뻐졌네…” “? , …”

 

갑자기 웬 사모님에, 웬 과잉 친절? 어제 아침만 해도 아줌마아니면 진영이 엄마라고 부르던 사람이 하루 사이에 이게 웬 일이람? 하긴 저 약사 언니, 우리가 처음 이사 왔을 땐 애가 둘이나 있는 줄도 모르고 나한테 한동안 아가씨라고 불렀으니까…. 약국 문을 들어서던 아내가 의아해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어젯밤에 TV 봤어요? 진영이 아빠가 송도순씨랑 김홍신씨가 진행하는 토크쇼에 나오시더라구요. 직장인들의 보너스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목소리도 좋고 말씀도 정말 잘 하시더라구요. 너무너무 멋 있었어요. 사모님은 좋으시겠어요…”

 

그랬습니다. 90년대 초 <여원> 편집국 차장으로 근무할 당시, 저는 여기저기 TV나 라디오 방송에 자주 출연하고 신문이나 잡지, 사보 등에도 컬럼니스트로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곤 했습니다.

 

아이 둘을 둔 평범한 회사원의 아내로 인식 됐을 때는 아줌마또는 진영이, 선영이 엄마정도로 불리던 아내가 한 인기 TV프로그램에 남편이 여원 편집국 차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타나자 호칭이 사모님으로 격상 됐던 것입니다.

 

견습기자 시절 삼성본관을 지키는 수위와 이병철 회장을 동등한 높이에서 봐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지위나 재산에 따라 사람의 등급을 매겨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TV 출연으로 아내를 사모님으로 격상시켜줬던 그 동네 약사 언니는 그날 이후 저도 아저씨진영이, 선영이 아빠대신 선생님으로 높이 올려 주셨습니다.

 

저의 첫 차는 기아 프라이드였습니다. 호주에서는 미국 포드자동차 OEM으로 Festiva라는 이름을 달고 거리를 누볐을 겁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제 차를 갖는 게 좀 늦었습니다. 결혼 전부터 물려(?) 받았던 빚 다 갚고, 다섯 식구가 살 조그만 아파트를 하나 마련하고 나서야 비로소 선배가 쓰던 중고차를 하나 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상했던 모양입니다. 한국에서 제일 큰 여성지 편집국 차장이 프라이드를 몰고 다니는 게 어울리지 않았던 탓인지, 덩치는 커다란 친구가 소형차를 몰고 다녀서 이상했던 건지하긴, 지금 생각하면 그 차의 색깔까지 빨간색이었으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겠습니다.

 

하지만 차의 크기나 종류를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안 좋은 잣대는 어딜 가나 비슷했습니다. 제 차를 몰고 취재를 가거나 호텔 같은 델 가면 얼른 비켜라하는 표정으로 바쁘게 손짓을 하곤 했습니다.

 

몇 년 후 저는 새로 출시된 하얀색 소나타3를 타게 됐습니다. 어딜 가든 제 차가 들어서면 친절히 진행방향을 안내 해주고 심지어 경례를 붙이는 사람까지 생겨났습니다. 호텔에서는 발레파킹을 해줄 테니 정문에서 내려 들어가라고 친절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드물긴 하지만 수 십억 원, 수 백억 원의 재산을 갖고 있음에도 매우 검소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반면, 지나치게 고급스런 자동차 때문에 구설수에 오른 고위직 공무원들이 뉴스에 등장하는 걸 보면 꼭 저러고 싶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안쓰러운 마음이 들곤 합니다.

 

돈 있는 사람, 권세 있는 사람들의 부인은 사모님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부인은 무조건 아줌마인 것도 꼭 고쳐져야 할 나쁜 잣대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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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