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 그리고… 거의 정신줄을 놓고 다녔습니다. UBD를
펼쳐 들고 분명 Lidcombe을 향해 달렸는데… 눈 앞에
보이는 건 Bankstown이라는 이정표였습니다. M4를 두 차례 더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전화를 걸어 “호주에 온지 얼마 안 돼, 길을 헤매다가 엉뚱한 곳에 와 있다. 내일 꼭 찾아 뵙겠다”고 백배사죄하고 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 실제로 리드콤은 꽤 오랫동안 저에게는 ‘블랙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 지역을 찾아 가기도 그랬고, 리드콤에 들어가서도 희한하게 스테이션 이쪽과 저쪽이 마구마구 헷갈리곤 했습니다. 시티는 더했습니다. 처음 한참
동안은 아예 차를 갖고 갈 엄두를 못 냈고, 웬만큼 운전에 자신이 붙은(?) 후에야 차를 몰고 시티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또한 엄청난 착각이자
어드벤처였습니다. UBD를 보고 확실히 공부해둔 길이었음에도 실제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가는 곳마다 웬 No Right Turn이
그리도 많은지… 안 되겠다 싶어 좌회전을 할라치면 얄밉게도 No
Left Turn 표시가 튀어 나옵니다. 잘 보이지도 않던 One Way 표지판은 왜 제가 꺾어 들어가려고만 하면 나오는지 정말 야속했습니다. 킹스크로스에서 만나기로 했던 한 분은 결국 찾기를 포기하고 다음 날 트레인을
타고 가 만난 적이 있습니다. 시티 George Street에
들어갔다가 계속되는 No Right Turn의 방해와 No Left
Turn과 One Way의 합동 교란작전(?)으로 40분 넘게 헤매다가 돌아와버린 겁니다. 물론 지금도 완벽하게 이곳저곳을 꿰뚫고 있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8년 전 처음 시드니에 와서 오른쪽 왼쪽이 한국과는 정반대인
낯선 길을 UBD 하나에 의존하며 헤매던 것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용 됐습니다. 얼마 전 제 딸아이가 ‘본격적으로’ 운전을 시작했습니다. 그동안은 필요성이 크지 않아 운전에 별 관심을
안 가졌는데, 막상 운전을 시작하니 여러 가지로 좋은 모양입니다. 여자아이(?)답게 차 안에 이런저런
장식들도 하고, 자기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에 딸아이도 많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딸아이가 Green P를 달고 운전하는 모습을 보며 작은 행복을
느낍니다. 아직은 출근길과 퇴근길에 한 차로 같이 움직이지만 이제 한 달쯤 지나서부터는
딸아이 혼자 운전하게 할 생각입니다. 물론, 출퇴근길에는
제 차가 그 뒤를 따르긴 하겠지만…. 딸아이가 본격적으로 운전을 시작하면서, 길을
몰라 헤매던 8년 전 옛날 생각들이 문득문득 떠오르곤 합니다. 아울러
내비게이션의 고마움도 실감합니다. 처음 가는 길, 낯선 길도 UBD에 매달리지 않고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편안하게 찾아갈 수 있다는 건 분명 또 다른 고마움입니다. 우리 교민사회에도 내비게이션 같은 사람들이 군데군데 많았으면 좋겠고, 저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 되고 싶은 욕망입니다. 다음 주
일요일(13일)이 제가 시드니에 온지 꼭 8년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옛날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
오릅니다. 아울러, 아주 크게는 아니더라도
옛날보다 조금씩조금씩 나은 모습을 갖춰 나간다는 건 참으로 고맙고 행복한 것이라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가져봅니다. ********************************************************************** 김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