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DJ 오빠, 오늘 저랑 데이트 해요!” #4942022-07-23 16:35

“DJ 오빠, 오늘 저랑 데이트 해요!”

 

I cried a tear, you wiped it dry. I was confused, you cleared my mind. I sold my soul, you bought it back for me. And held me up and gave me dignity. Somehow you needed me…”

 

Anne Murray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실내를 포근하게 감쌉니다. 순간, 저만치 앉아 있던 한 무리의 여학생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집니다.

 

하지만 잠시 후 “I don't need you. I don't need friendship. I don't need flowers in the Spring. I don't need you. And you surely don't need me…” Kenny Rogers의 걸쭉한(?) 목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잘 생긴 DJ 오빠랑 오늘 저녁 데이트 하고 싶어요. YES Anne Murray You Needed Me, NO Kenny Rogers I Dont Need You를 틀어주세요.

 

그런데 1절은 You Needed Me, 2절은 I Dont Need You가 나갑니다. 여학생들은 “뭐야?” 하는 표정으로 DJ박스를 향해 비난의 괴성을 질러 댑니다.

 

1981년이었으니 참 오래 전의 일입니다. 6년간의 ‘방황’을 마치고 다시 대학에 들어간 저는 잃어버린 시간들이 아까워 전공인 영어영문학은 물론, 부전공 사회사업학, 교직, 영자신문, 야학 등 여러 가지 일들을 닥치는(?)대로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학교 앞 다방 (그때는 그렇게 불렀습니다)에서 DJ를 봤습니다. 정신 없이 바쁜 중에서도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저는 일주일에 두 세 번씩 ‘무보수로’ DJ박스에 앉았습니다.

 

시그널 뮤직은 영화 러브스토리 중에서 주인공 남녀가 눈싸움을 할 때 배경으로 깔리는 Francis Lai 악단의 연주곡 Snow Frolic이었습니다. 저의 별명이 썬맨 (SunMan)이어서 프로그램 이름은 ‘썬맨의 음악 속의 데이트’였습니다.

 

어둠침침한 DJ박스 구조 덕에 얼굴이 잘 안 보이는 터라, 여학생들은 마이크를 타고 흐르는 DJ의 목소리에 반해(?) 신청곡 메모지에 커피, 담배, 초콜렛, 사탕, 영화표 등 다양한 선물을 넣어주곤 했습니다. ‘끝나고 데이트 하자’는 신청서도 심심찮게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1년 남짓 아마추어 DJ생활을 하는 동안 저는 참 많이 행복했습니다. 물론 팬(?)들이 희망하는 곡을 틀어줘야 하는 의무감도 있긴 했지만 음악과 함께 할 수 있어 늘 좋았습니다.

 

제가 마지막 곡으로 올려 놓는 노래는 저의 별명인 썬맨답게(?) 언제나 John Denver Sunshine on My Shoulders였습니다. 노래 중간쯤 주저리 주저리 클로징 멘트를 하면서 “여러분의 썬맨, 물러갑니다!”라는 인사를 남기고 DJ박스를 나오면 여학생 팬들이 크게 반겨줬던 기억이 납니다.

 

벌써 30년이 다 돼가는 추억입니다. 내일, 토요일 오후 두 시부터 아홉 시까지 스트라스필드 임마누엘장로교회 (42 Homebush Rd. Strathfield)에서 일일찻집이 열립니다.

 

시드니샘물호스피스가 교민 암환우 쉼터 운영기금 마련을 위해 사랑과 정성을 모으는 자리입니다. ‘잘 생긴’ DJ가 여러분께 신청곡도 들려 드리고, 중간에 라이브 공연도 두 번 곁들여진다고 합니다.

 

소중한 분들과 차 한 잔의 여유 속에서 옛 추억을 떠올리며, 암환우 및 가족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뜻 깊은 시간을 만나실 수 있어 ‘강추’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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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