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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앗! 그때 그 5만원이? #5742022-07-23 17:37

! 그때 그 5만원이?

 

2주 휴가기간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그와는 모두 세 차례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첫날 인사동에서 반가운 저녁식사 자리를 마련한 그가 동행한 자신의 지인에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이 분들을 다시는 못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마음 같아서는 뭐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저 또한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으면서 얼굴이라도 더 보고 싶었던 거지요…”

 

그래서 그는 2001 11 2일 저녁, 저보다 50일 늦게 시드니 행 비행기를 탄 우리 가족과 인천국제공항까지 동행했답니다. 그리고는 꼬깃꼬깃 모아뒀던 만 원짜리 열 장을 제 아내의 손에 쥐어줬습니다.

 

서른 두 평짜리 아파트를 팔아 빚을 모두 갚고 남은 1 4백만 원으로 다섯 식구가 맨땅에 헤딩을 시작하던 시절, 누가 보든 우리 가족은 매우 위험하고 먼 길을 떠나고 있었던 겁니다.

 

몇 달 후 그는 우리 아이들 영어공부에 필요할 거라며 문법책을 10만 원어치 사서 보내줬고, 이듬해 아내가 한국에 잠시 다니러 갔을 때도 공항까지 배웅하며 5만 원을 아내 손에 쥐어줬답니다.

 

그때는 저도 최악의 상황이었어요. 점심 먹을 돈이 없어서 남들 점심 먹을 때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가 냉수 몇 컵 벌컥벌컥 마시고 다시 일을 계속하곤 했거든요. 속된 말로 몸뚱이라도 팔아서 뭔가를 해주고 싶었지만…”

 

그가 그 지인에게 그렇게 옛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그렇다면 본인은 점심 먹을 돈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거금을 쥐어줬다는 얘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속으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젊은 날의 열정을 다 바쳤던 회사가 침몰하는 걸 막기 위해 끝까지 몸으로 회사를 지켰던 바보들…. 1996 8, 회사가 완전히 물 속에 가라 앉았을 때 그 속에는 바보 같은 디자인부장바보 같은 편집부장이 회사를 떠받치고 있었습니다. 그와의 우정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그렇게 제가 한국을 떠나올 때, 그는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는 저의 무모한 도전에 가슴 졸이면서도 저의, 우리 가족의 기사회생을 기원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07, 6년여 만에 처음 한국에 갔을 때 그는 감격에 겨워 저를 얼싸 안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의 두 번째 만남에서 그는 비로소 9년 여전 저의 무모한 도전, 맨땅에 헤딩을 회고하며 당시에는 다시는 못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우리는 함께 하는 시간 내내 서로를 챙겨주기에 바빴습니다. 어떻게 하면 서로 밥 값을 낼까, 차 값을 낼까, 뭔가를 더 해줄 수 있을까를 놓고 나름 기발한 작전들을(?) 쓰기도 했습니다. 서로가 아주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조그만 것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가 한국을 떠나는 날엔 아침 일찍부터 숙소로 쳐들어와(?) 하루 종일을 우리와 함께 했습니다.

 

마음 따뜻한 친구와 소래 포구에서 가진 싱싱한 회와 매운탕, 그리고 소주 한 잔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습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에 담긴 우정은 그 무엇보다도 깊고 진했습니다.

 

이제, 2주 동안 받았던 따뜻하고 진실된 마음그 행복함으로 2011년을 시작합니다. 올해에는 주변의 좋은 사람들을 향한 더 따뜻한 마음, 더 진실된 사랑으로 함께 하는 2011년을 다짐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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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