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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모범남편? NO! 과대포장입니다!! #6392022-07-23 18:15

모범남편? NO! 과대포장입니다!!

 

김 기자, 오늘 비도 오고 꿀꿀한데 포장마차에서 쏘주 한 잔 어때?” 주로 이렇게 시작 됩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김 선배, 오늘 저녁에 시간 좀 내줘요. 선배하고 의논할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요.”

 

김 차장님, 오늘 박진영 기자 생일인데 함께 해주실 거죠? 저녁 일곱 시 회사 앞 삼겹살집입니다에서 안 됩니다. 지금 김 국장님 회사 정문 앞에 차 대기시켜놓고 있으니 얼른 내려 오십시오하면서 반강제로 끌고(?) 가는 경우까지 그 껀수와 방법도 매우 다양합니다.

 

심지어는 비 오는 날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모여서 술 마시는 우주회 (雨酒會)라는 모임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여유 있는 시간이 생겨도 저는 늘 이런 이유와 저런 핑계로 여기저기 불려 다니기에 바빴습니다.

 

갑자기 그렇게 됐어. 미안해. 저녁 먼저 먹고되도록 빨리 갈 게.” 아내를 향한 저의 상투적인(?) 전화멘트였습니다. “알았어.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조심해라고 대답하는 아내도 제가 일찍 집에 들어오거나 술을 적게 마시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는 사실을 너무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일단 술자리가 시작되면 밤 늦게까지, 더러는 밤을 꼴딱 새우며 술을 마십니다. 술을 무서워하거나 피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해서 술자리마다에서 저는 참 많은 술을 쉬지 않고 열심히 마셨습니다. 일 때문에 늦고 술 때문에 늦고허구한날을 토요일도 일요일도 없이 저는 그렇게 보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가끔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쓰다 보니 어떤 분들은 당신도 <코리아 타운> 김태선 사장 좀 본받으라는 핀잔 아닌 핀잔을 부인에게서 듣는다고 합니다. 제가 아내를 무척 아끼고 사랑하는 애처가쯤으로 과대포장돼 보이는 탓입니다.

 

하지만 나보다는 남을 위해, 집안 일 보다는 회사 일, 바깥 일에 더 목숨을(?) 걸었던 저였기에, 늘 새벽에 나갔다가 새벽에 들어오고 일이 없으면 술 때문에 늦었던, 게다가 아들이 주방에 들어가면 큰일나는 것으로 여겼던 어머니 탓에 한국에서의 저는 그리 좋은 남편이 못 됐습니다.

 

실제로 아내는 우리가 시드니에 온 것을 참 많이 좋아합니다. <코리아 타운>이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4일 근무를 실시하는 데다가 야근도 없고,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함께 여기저기를 다니며 낚시까지 공통의 취미로 갖고 있으니 아내로서는 한국에서의 그것과는 180도 다른 경험을 하고 있을 겁니다.

 

지난 일요일, 살짝 무리를 해서 웬만한 사람들은 이미 하나씩 다 갖고 있다는 루이비통가방을 선물하려 했지만 아내는 끝까지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모발폰을 최신형 갤럭시 노트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으로 2012년 결혼기념일 선물을 대신했습니다.

 

점심 때는 스시와 사시미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가끔 들르는 이스트우드 일식집에 갔습니다. 마음 좋은 그곳 사장님이 내주신 결혼기념일 축하 와인 두 잔으로 기분을 내려 하는데 아내는 딸아이 부부와 아들녀석을 불러 냈습니다.

 

그걸로도 모자라 내친 김에 저녁까지 함께 먹자는 아내의 제안에 따라 우리는 그날 코스트코에서 커다란 랍스터 몇 마리에 싱싱한 생굴까지를 듬뿍 사서 우리 집에서 성대한(?) 결혼기념일 파티를 가졌습니다.

 

왠지 결혼기념일 파티가 아닌 듯싶은 기분도 살짝 들었지만 명품가방보다는,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먹는 비싼 요리보다는 그렇게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게 훨씬 행복하다는 바보천사의 의견에 따라 우리의 2102년 결혼기념일은 그렇게 그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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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