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용서를 구하지 마세요” #7492022-07-23 21:08

용서를 구하지 마세요

 

브라질월드컵 16강전, 주심의 경기종료 휘슬이 울리자 프랑스 벤치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그라운드로 달려나갔습니다. 서로 얼싸안고 승리의 기쁨을 나누는 가운데 디디에 데샹 프랑스 감독이 가장 늦게 벤치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그는 곧바로 프랑스 선수들에게 가는 대신 0 2 패배의 슬픔에 젖어 있는 나이지리아 선수들을 향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 한 명 한 명의 어깨를 감싸며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이날 경기의 MVP로 선정된 프랑스 미드필더 폴 포그바 선수도 나이지리아 선수들과 일일이 포옹하며 빈센트 엔예마 골키퍼와는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는 이 사진을 위대한 골키퍼라는 설명과 함께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그라운드 위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한 전쟁을(?) 치렀던 그들이지만 경기가 끝난 후 보여준 모습들은 참으로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이번 월드컵 첫 예선탈락 팀은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대회 우승국 스페인이었습니다. FIFA 랭킹 1위의 스페인은 무적함대라는 닉네임에 걸맞지 않게 조별예선에서 네덜란드에 15, 칠레에 0 2로 패하며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전 세계가 스페인의 참패에 경악하며 비난을 퍼부을 때 스페인의 스포츠신문 <as>가 이들을 보듬고 나섰습니다.

 

이 신문은 스페인의 예선탈락이 확정된 다음날, 유니폼으로 눈물을 훔치는 미드필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선수와 침울한 표정의 골키퍼 이케르 카시야스 선수 사진을 1면에 실었습니다.

 

그리고는 용서를 구하지 마세요. 우리는 이미 당신들에게 많은 빚을 졌습니다라는 제목을 맨 위에 올렸습니다. 바로 밑에는 유로 2008, 2010 남아공월드컵, 유로 2012에서 스페인 대표팀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환호하는 사진 세 장이 실렸습니다.

 

그리고 <as>는 맨 아래에 대문짝 만한 글씨로 이렇게 헤드라인을 달았습니다. ‘당신들이 챔피언이던 그 시간 우리는 참 많이 행복했습니다.’

 

지난 월요일 인천국제공항에 내린 한국 대표팀을 향해 한 축구팬이 이게 너희들을 향한 국민들의 마음이다. 엿먹어라!”며 노란색 포장지에 싸인 사탕 모양의 호박엿 수십 개를 던졌습니다.

 

홍명보 감독과 선수들이 엿에 맞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선수단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막내 손흥민 선수는 이 엿, 먹어야 되나요?”라며 속상해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은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특히 홍명보 감독의 이해가 안 가는 선수기용이나 작전구사로 잠을 설쳐가며 응원하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줬습니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에게도 2002년 한일월드컵 4, 2010 남아공월드컵 첫 원정 16, 2012 런던올림픽 사상 첫 동메달 등으로 우리에게 기쁨과 환호를 선사했던 순간들이 있습니다.

 

조별예선에서 우리에게 아픔을 줬던 벨기에는 16강전에서 미국을 2 1로 꺾고 8강에 올랐고, 알제리는 독일에 1 2로 패해 16강에서 멈췄지만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승부를 연장전까지 끌고 가는 투혼을 발휘했습니다.

 

KBS 이영표 해설위원의 지적대로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보여주는 자리이고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는 분명 실패했습니다. 그럼에도 스페인 스포츠신문 <as>의 보도 자세가 제 머리 속에 아주 강하게 남는 건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

 

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