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등수 지키기 #7362022-07-23 21:02

등수 지키기

 

참 희한한 일입니다. 분명 비슷비슷한 실력을 가진 아이들이 모였음에도 그 속에서 다시 1등부터 60등까지 등수가 정해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정해진 등수는 어지간해서는 잘 바뀌지 않습니다. 첫 단추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대목입니다.

 

저는 고등학교는 물론, 중학교도 입학시험을 치렀습니다. 1967년에 마지막으로 실시된 중학교 입학시험은 1955년생들이 그 주인공이었는데 이른바 빠른 56’으로 그들과 함께 공부했던 저도 마지막 중학교 입학시험 세대가 됐습니다.

 

중학교에서처럼 고등학교 때도 전국에서 고만고만한 실력을 가진 친구들이 입학시험을 거쳐 모였지만 역시 일찌감치 1등부터 60등까지 등수가 매겨졌습니다.

 

우리 반에 수현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부산에서 공부 좀 한다는 소리를 듣던 그 친구가 서울로 유학을(?) 온 거였는데 공부보다는 다른 쪽에 더 열심이어서인지 1학년 1학기 중간고사에서 58등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수현이는 거짓말처럼 50등 대에서 계속 머물고 있었습니다.

 

이번 2학기 중간고사 때 우리 집에서 한 달만 나랑 먹고 자면서 공부 해보자.” 양쪽 엄마들의 허락 하에 수현이는 중간고사를 한 달 앞둔 시점부터 우리 집에서 저와 함께 생활하며 공부에 몰두했습니다.

 

이윽고 중간고사 결과가 나왔고 수현이는 27등을 했습니다. 평소 등수보다 무려 30계단을 올라간 겁니다. 단 한 달 동안의 합숙훈련으로(?) 그만큼 치고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그 친구가 기본적인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수현이는 내친 김에 이제부터 나하고 도서관에서 매일 공부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다른 쪽에 더 관심이 갔던 모양입니다. 결국 수현이는 1학년 학년말고사에서 다시 50등 대로 복귀(?) 했고 졸업 때까지 계속 그곳에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자리를 잘 잡든지 아니면 중간에 치고 나갈 기회가 생겼을 때 그 페이스를 유지하는 건 참 중요합니다. 아내와 함께 산행을 시작한 첫날, 우리는 말 그대로 죽을 것 같았던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컨디션도 안 좋은 데다가 두 끼를 굶고 산행에 도전했던 때문이었습니다.

 

그날 우리 때문에 스무 명의 선배회원들이 한참을 기다려야 했던 게 너무너무 미안해 그 다음 주부터 아내와 저는 이를 악물고(?) 선두그룹 가까이에 끼일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다른 회원들이 중간에 잠시 쉬는 동안에도 아내와 저는 숨만 잠시 고른 후 곧바로 산행을 계속했습니다. 첫날 산행에서 낙오(?) 되면서 고갈된 체력에 불안감마저 더해져 몇 배로 힘이 들었던 경험을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회를 거듭하면서 아내와 저는 산행대열의 앞쪽에 서서 제법 씩씩하게 걷고 있습니다. 첫날처럼 대열의 맨 뒤에서 헉헉대는 일이 반복됐더라면 어쩌면 산행을 포기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2005 10 1, 제가 <코리아타운>을 인수했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당시 <코리아타운>은 전체 교민 신문·잡지 중 여섯 번째 정도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선두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처음 몇 달 동안은 일요일도 없이 매일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일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이후 <코리아타운>이 맨 앞자리에 서고부터는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요즘도 밤 열두 시를 훌쩍 넘기곤 합니다. 이제, 2014년이 시작된 지 4분의 1이 지났고 우리의 초반 성적은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합니다. 모두들 제 페이스를 유지해서, 혹은 중간 스퍼트를 내서 성공을 향해 힘차게 달릴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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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