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봄·봄·봄 #8062022-07-23 21:38

봄·봄·봄

 

제가 출근을 하고 나면 아내도 곧장 뒷마당으로 출근(?)을 합니다. 그리고는 텃밭정리를 시작합니다. 여기저기 땅을 갈아엎고 흙을 고른 후 촘촘히 비료를 줍니다. 그 위에 잡초방지를 위한 검정비닐까지 꼼꼼히 깔아줍니다.

 

2주 넘게 계속된 아내의 열정적인 작업 덕분에 지금 우리 집 텃밭은 이런 모종과 저런 씨앗들로 가득합니다. 한쪽에서는 성격 급한 꼬마깻잎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지들이 알아서(?)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시금치 석단을 사서 맛있게 무쳐 내놓더니 어느새 뿌리부위를 잘라 텃밭 한쪽에 작년처럼 시금치 전용공간을 만들어놨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우리 집 텃밭은 어른 얼굴만한 깻잎부터 상추, 시금치, 쑥갓, 미나리, , 부추, 고추, , 가지, 호박, 수많은 채소들로 가득한 작은 농장이 될 것입니다.

 

지난 일요일 아침에는 깔끔하게 정리된 아내 표 농장을 찬찬히 둘러봤습니다. 곳곳에 수북이 쌓여있던 옆집 담쟁이덩굴 낙엽까지 깨끗이 긁어내 우리 집 텃밭은 갓 이발을 마친 훈남의 모습이 돼 있었습니다.

 

지금 안 하면 안 된다며 매일 아침 혼자서 몇 시간씩, 가끔은 코피까지 흘려가며 그 많은 일들을 다 해낸 겁니다. 극성스런(?) 작업을 마치고 이것저것 조근조근 설명하는 아내의 얼굴에는 행복감과 뿌듯함이 가득했습니다.

 

복숭아나무, 사과나무, 배나무, 무화과나무도 새순을 틔우기 위한 기지개가 한창입니다. 아직 덩치가 작은 뽕나무에도 앙증맞은 오디들이 빼꼼이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지난해 어렵게 구해 심은 감나무가 비실대서 죽었나 싶었는데 그곳에서도 파릇파릇 새순이 돋고 있습니다.

 

아직 덩치만 산만한 비파나무도 언젠가는 탐스러운 열매를 보여줄 것이고 뒷마당을 가득 메운 자카란다도 보랏빛 눈꽃을 피우기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작년 이맘때 힘들게 심었던 잔디도 이젠 푸릇푸릇 건강한 청년의 모습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내친김에 아내와 함께 집안 대청소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청소기를 돌리면 아내는 스팀청소기로 마루바닥을 뽀송뽀송 반짝반짝 하게 만들었습니다. 춥다는 이유로 겨우내 가스히터만 끼고 살던 생활에서 벗어나 거실카펫도 걷어내고 집안 구석구석 켜켜이 쌓여 있던 먼지들도 깨끗이 털어냈습니다.

 

오랜만에 자동차 목욕까지 마친 아내와 저는 열심히 일한 우리를 위한 보상의(?) 시간도 가졌습니다. 한결 깨끗해지고 푸르러진 뒷마당에서 그들을 친구 삼아 먹는 맛있는 고기와 술 몇 잔, 그리고 향 짙은 커피 한 잔늘 느끼는 거지만 우리에게는 더 할 수 없는 고마움과 행복들입니다.

 

이렇게 지난 일요일에는 힘도 좀 들었고 땀도 제법 흘렸지만 오랜만에 개운한 기분이 됐습니다.

 

그러고 보면 겨우내 춥다는 이유로 참 많이 게을러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한 기운이 남아 있지만 한낮에는 벌써 완연한 봄 날씨를 보입니다. 이제 얼마 안가 순식간에 날씨가 더워져 히터가 있던 자리를 에어컨이 대신하게 될 겁니다.

 

시드니에 처음 와서는 날씨가 참 귀엽다고 생각했습니다. 겨울이라고는 하지만 전혀 겨울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저도 시드니의 겨울이 춥다고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농담 삼아 나이가 들어 그렇다고 하지만 저는 애써 우리 몸이 이곳 날씨에 적응돼서 그렇다고 강조합니다.

 

어쨌든 다시 봄이 왔습니다. 이제부터는 아내가 정성 들여 정리해놓은 텃밭 식구들이 건강 씩씩할 수 있도록 매일 물도 주고 바지런을 떨어야겠습니다. 그리고 따뜻해지는 봄 날씨처럼 얼어붙어 있던 우리네 경기도 풀리고 좋은 일들도 많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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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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