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Y LYNN’S LONG HALFTIME WALK

특별휴가 내내 두통에 시달리는 빌리는… 심란하고 외로운 청년이었다

이라크에 파병된 빌리라는 열아홉 살 된 육군 사병이 분대장을 구하려고 총격전이 벌어지는 한 가운데로 뛰어든 모습이 종군기자 카메라에 잡혔다. 그 영상은 전국에 급속도로 퍼져서 이라크 전쟁을 애국심과 연결하려는 미국 시민들을 열광시켰다.

 

01_빌리를 향한 가엾음

육군은 영웅이 된 빌리와 그 당시 전투에 함께 했던 브라보 팀 7명에게 두 주간의 포상휴가를 주었다. 팀들은 텍사스에서 열리는 댈라스 카우보이스의 축구경기에도 초대받는다.

그 짧은 시간이 길고 고된 시간이 되리라는 것을 영화 제목이 암시하는데 벤 파운틴의 원작이며 앙리가 감독한 ‘빌리 린의 긴 해프타임 행진’은 흥행에 실패했다.

전투장면이 많은 액션물도 아닌데 구태여 초당 120프레임으로 촬영해 세부적인 효과까지 화면에 표현해야 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비웃음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투자한 만큼 본전을 못 찾았다고 이 영화 자체가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찔러야 할 적들이 분명하고 우리 편이 승리함으로 관객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는 감동을 원한다면 빌리 린의 이야기는 적당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영화만큼 지구촌 사람들이 치러내야 하는 끊이지 않는 전쟁의 슬픔, 한 사람의 몸서리쳐지는 기억이 화려한 쇼로 치장된다는, 삶의 극심한 아이러니를 이처럼 코믹하면서 서글프게 표현한 영화가 또 있을까? 어린 병사 빌리를 향한 가엾음이 이 영화를 말하게 한다.

 

02_남동생

빌리가 그 어린 나이에 전쟁터에 가게 된 것부터가 마음이 쓰리다. 빌리와 둘도 없이 친한 작은 누이 캐서린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고 다리와 골반이 부러진 것 외에도 얼굴과 몸에 큰 흉터가 남아 여러 번의 성형수술이 불가피하다.

불행한 일은 항상 짝으로 온다는데 병원에 있는 캐서린을 두고 그녀의 약혼자는 줄행랑을 쳐버렸다. 그 일에 격분한 빌리는 약혼자의 차를 쇠몽둥이로 박살냈는데 감옥형에 처할 상황에서 입대라는 또 다른 선택의 길이 열렸다.

군에 들어가면 이력서에 그어질 빨간 줄을 면할 뿐 아니라 계급장이 스펙으로 더 해질 수도 있고 월급이 나오면 누나의 치료비를 댈 수도 있다. 입대가 여러모로 감옥살이보다는 나아 보였다. 국가적 영웅이 되는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03_육박전

어느 소설에서였다. 북한군과 남한군의 대치 상태를 표현한 글이 기억에 남는다. 참호 쪽으로 접근해오는 북한군의 동태를 살피는 남한군 지휘관의 신경이 칼날처럼 날카롭다.

참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야 하는 방어사격에도 벌벌 떠는 사병들에게 총 쏘는 일을 게을리하면 결국 달려드는 적을 참호 안으로 초대하는 꼴이 된다고 호통을 친다. 칼을 빼 들고 생사를 다투는 처절한 몸싸움을 하지 않으려면 총알을 아끼지 말고 쏘아 제끼라는 말이다.

총상을 입고 이라크 병사들에게 끌려가는 부대장 브림 하사를 구해낸 빌리에게 바로 그 일이 일어났다. 길에 파놓은 참호 속으로 대장을 밀어 넣고 그의 다리에서 품어져 나오는 피를 지혈시키려고 애를 쓰는 상황에서 참호의 다른 쪽으로 이라크 군인 한 명이 빌리를 향해 덤벼들었다.

좁은 터널 속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삶과 죽음의 혈투로 빌리는 버둥거렸다. 그리고 기어이 뽑아 든 대검을 자기처럼 버둥대는 한 인간에게 사용한다. 평소 같으면 비둘기 목을 자르라고 해도 십중팔구는 무슨 그런 끔찍한 농담을 하냐며 진저리를 쳤을 청년들이 군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일들은 우리가 생각하기엔 너무 버겁다. 그래서 어쩌면 그들의 세계는 동화 속 이야기처럼, 아득히 먼 환상으로 머물러주길 바라는 걸까?

 

04_악몽, 타인과 나눌 수 없는 기억  

여자 친구와의 로맨스로 마음을 설레야 할 청춘의 시작에 상관도 없는 남의 나라 사람과 총격전을 벌이고 육탄전을 경험한 동생의 인생이 안쓰러워 작은 누이는 미칠 지경이다.

월드컵 우승 장면을 반복하듯이 동생의 전투장면을 되풀이하며 떠들어대는 텔레비전에 환멸을 느낀다. 누이는 식구들 틈에서 저녁을 먹는 동생에게 대량 살상무기를 구경이나 했느냐고 묻는다. 후세인의 대량 살상무기 보유를 핑계로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 끼어든 것을 꼬집는 말이다.

아버지가 매섭게 눈을 부라리며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내지만 캐서린은 터질 것 같은 울분을 속으로 다져 넣지 못하고 ‘그렇게 전쟁을 하고 싶으면 하고 싶은 놈들이 들어가야지 왜 내 동생이고 엄마 아들이야?’라고 내뱉는다.

가족들은 나라를 위해 국방의 의무를 충실하게 수행한 장한 아들의 환상을 깨려는 작은 딸의 태도가 괘씸하다. ‘기름 때문에 남의 나라 전쟁에 참견했다는 말인가 본데 미국 정부가 너만큼도 생각이 없을 것 같으니?’라며 큰 언니는 캐서린을 면박 준다.

엄마 역시 정치 이야기는 그만하라고 고함을 치며 작은딸의 입을 막는다. 힘없는 소시민이 높으신 분들이 결정한 일에 따지고 들어봐야… ‘늙은이들이 전쟁을 선포한다. 그러나 싸워야 하고 죽어야 하는 것은 젊은이들이다’라고 누군가 말했는데 단지 전쟁을 선포하는 늙은이들의 아들들은 제외될 것이다.

 

05_긴 해프타임의 악몽

경기가 시작되기 전 빌리의 브라보 팀원들은 기자회견을 했다. 휴식시간에 무얼 하느냐는 물음에 돌아온 대답은, 그들이 여느 집 막내아들처럼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어 하거나 게임에 몰두하는 그저 어린 청년들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기자들은 영화 ‘300’의 전사들처럼 전설적인 이야기가 필요하다. 빌리에게 닥쳤던 이라크 병사와의 육탄전이 그들이 정작 듣고 싶은 이야기다. 그때 벌어졌던 상황을 구체적으로 끄집어내지 못해 안달하는 것은 기자들뿐만이 아니다.

빌리에게 사인을 해주던 스타 플레이어들, 남자라면 으레 관심을 가질만한 최신 무기의 종류로 시작된 질문은 ‘네가 쏜 총에 맞아 죽어가는 사람을 보면서 드는 느낌을 말해봐’로 곧장 이어졌다.

적이라고는 하지만 개별적인 미움이나 적대감이 있을 리 없는 사람들과 죽이고 죽는 상황에 놓였던 어린 청년의 얼굴에 곤혹스러움이 배어든다. 무섭다면서도 귀신 이야기를 계속하라고 조르는 아이들처럼 선수들은 ‘느낌’을 말해달라고 떼를 쓴다.

 

06_군인과 시민

오래 전 일이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는 어떤 사람에게 나도 축구 선수들처럼 ‘그럼, 사람도 죽여 봤나요?’라는 질문을 했었다. 그분은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때 나는 어리지도 않은 나이였는데 그런 질문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가진 사람에겐 얼마나 무례하고 폭력적인지에 대해선 무심했다.

김훈의 소설 ‘내 젊은 날의 숲’에는 휴전선 근처 민통선에 배치된 김 중위라는 남자에 대해 ‘중위’는 이인칭이나 삼인칭이 아닌 불특정다수를 지칭하는 무인칭이기에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될 수 없다는 표현이 있다.

시민들이 군인들에게 느끼는 감정을 대변하는 구절이다. 그럼에도 ‘중위는 수목원에 올 때도 늘 철모에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고 그 앞섶에 대검을 꽂고 있었지만 그가 적을 쏠 수 있는 군인으로 보이지 않았다’라고 표현한다.

글 속의 화자는 김 중위가 입고 있는 군복의 익명성 속에서 오히려 한 개별자로서 심란하고 외로운 인간 김 중위를 만난다. 특별휴가를 받은 내내 두통에 시달리는 빌리에게서 내가 본 모습도 그렇게 심란하고 외로운 청년이었다.

 

07_재주는 곰이 넘고

부하들을 숲 속에 후퇴시키고 망가진 탱크 안에서 200명이 넘는 독일 군단을 상대로 홀로 싸운 군인이 있었다. 미국 전쟁사에서 훈장을 가장 많이 받았다는 오디 머피 (Audie Murphy)는 열아홉 살도 되기 전에 이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텍사스 출신 영웅이다.

대러스 카우보이스팀의 구단주는 빌리의 전투를 소재로 영화를 제작해 오디 머피를 이은 제2의 텍사스 전쟁 영웅을 만들겠다는 꿈에 부풀었다. 문제는 로열티를 흥정하는 구단주가 빌리와 팀원들에게 뻔뻔할 정도로 인색한데 있었다.

축구 경기장 좌석 하나에 몇만 불씩 매매가 되는 것을 생각한다면 민망하기 짝이 없는 액수다. 브라보 팀 대장은 구단주의 제안에 모욕감을 느끼며 ‘그 정도 액수는 우리 할머니라도 지금 당장 현금지급기에서 뽑아줄 수 있다’고 응수했다.

부대장을 상대하기보다는 어린 빌리를 구슬리는 것이 빠르다고 판단한 구단주는 ‘빌리, 너의 전투는 이제 더는 네 것이 아니야. 그건 이제 미국의 이야기야. 그런 이야기 위에 세워진 게 미국이야’라며 ‘땡전 한 닢 못 받는 것보다는 낫잖아?’ 장삿속으로 눈이 벌건 남자가 애국과 전우애, 꿈과 이념을 들먹이며 그럴듯하게 둘러대기도 잘한다.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어요.’ 빌리가 방을 나오며 한 말이다.

 

08_군인 빌리

전투팀을 걸그룹과 함께 출연시킴으로 경기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해프타임 쇼는 빌리에게 고역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현란한 불꽃과 함께 터지는 폭죽이 전투 현장의 폭탄 터지는 소리와 기관총 사격으로 오버랩 된다.

미국을 상징하는 경기장의 흥청거림과 자신이 돌아가야 할 전투지와의 극명한 대립은 그의 마음에 더욱 깊은 고독감을 안겨준다. 몇 시간 후면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야 하는 동생의 귀대를 막으려고 작은 누나는 백방으로 애를 쓰지만 빌리는 귀대를 결심한다.

‘가서 남의 나라를 깨부수겠구나. 어려울 게 뭐가 있겠어. 이제 진짜 영웅이 되는 일만 남았네’라며 누이는 억지를 쓴다. 절망스러워서 하는 소리라는 것을 아는 빌리는 그런 누이가 가엾다. ‘내가 무슨 영웅이겠어, 누나. 난 그저 군인일 뿐이고 군대가 내가 있을 곳이야. 내가 하는 일이 꼭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틀린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위대한 삶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간다는 것이 위대하다는 말은 빌리 같은 어린 병사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21세기에도 야만적 전쟁이 계속되는 걸 세상에 알리려는 종군기자에게 동료가 집으로 돌아가라고 충고한다.

6개월짜리 아이가 첫걸음을 떼고 처음으로 엄마를 부르는 소리를 놓치지 말라며 그 순간은 일생에 단 한번이지만 전쟁은 계속해서 일어날 거라고. 옳은 이유든 옳지 않은 이유든 지구상에 전쟁이 없어지는 날은 오지 않을 거라며.

 

09_안전한 곳으로

최신 기술 도입으로 화면이 너무 맑고 세밀해 영화에 인간적 온기가 부족한 것이 빌리 린 흥행의 실패 원인이었다면 그 화면의 냉랭함이야말로 댈러스 카우보이스 경기의 화려함과 결코 섞일 수 없었던 빌리의 외톨이 마음을 내게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쇼를 끝내고 리무진에 앉아 귀대 길에 오른 부대원들이 하는 소리를 들어 보자. ‘야, 사람들이 우리를 죽이기 전에 빨리 여기를 벗어나자! 안전한 우리 부대로 돌아가자구!’

이 영화의 훌륭함을 나는 글로 다 풀어내지 못했다. 다만 미국의 부를 상징하는 미식축구 경기장에서 길을 잃은 아이 같은 빌리의 고독한 표정만으로도 영화는 할 몫을 다 해냈다.

‘내게 가장 참혹했던 날로 사람들이 열광한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린 병사와 브라보 팀원들은 자기들을 추켜세우는 미국인들을 바라보는 것이 고단하다.

 

글 / 박해선 (글벗세움 회원·사진작가)

Previous article박해선의 영화, 살아가는 이야기 ③ 룸
Next article박해선의 영화, 살아가는 이야기 ⑤ 무한대를 본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