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테리아 이야기 ①

박테리아야, 너는 내가 어떤 음식을 먹어야 행복하겠니?

수 년 전, 마당 한 켠에 있는 텃밭에서 좋지 않은 자세로 호미질을 하다 허리를 삐끗하여 기어서 방으로 들어온 적이 있었다.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허리를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어 성분이 강한 근육이완제를 먹었다. 곧 허리는 나아졌지만 그 약 복용으로 인해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난을 당해야 했다.

 

01_엔드류 귀에 농이 차 있는 걸 발견한 의사는 항생제를…

독한 약제로 인해 우선 소화기관 내 좋은 박테리아와 나쁜 박테리아 사이에 존재하던 세의 균형이 깨진 것이다. 조용히 지내던 헬리코박터균이 활성화되어 위궤양을 유발시켰고 또 이 헬리코박터균을 잡는다고 항생제를 복용했더니 바로 피부습진이 생겼다.

예기치 못한 이들의 출현으로 나에게 찾아온 고통은 어쩔 수 없이 관심으로 발전하였고 급기야는 관련서적을 지속적으로 찾아보며 위로의 처방전을 스스로에게 발급할 수밖에 없었다.

엔드류 (Andrew)가 미국 코네티컷 (Connecticut)주의 브리지포트 (Bridgeport)에서 1992년 에 태어났을 때 엘렌 볼트 (Ellen Bolte)는 이미 세 아이의 엄마였다.

여느 가정의 아이들처럼 이 아이도 무탈하게 자라주고 있었다. 엔드류가 태어난 지 15개월 차에 접어들자 엘렌은 아이를 데리고 정기검진을 위해 소아과에 들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소아과 의사는 엔드류의 귀에 농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하였고 의사는 바로 항생제를 처방해주었다. 소아과에 오기 전까지 잘 먹고 잘 놀았으며 특히 염증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열도 전혀 없었으니 엄마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02_모든 항생제 투여가 끝나자 엔드류의 행동장애가 나타나기 시작

열흘간 항생제 치료 후 다시 병원을 찾았지만 귀 안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의사는 다른 종류의 항생제로 다시 열흘 치를 처방해주었고 마침내 엔드류의 소아중이염은 낫게 되었다.

이야기가 여기에서 끝났으면 엘렌이 엄마로서 용감해질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소아과 의사는 이 질긴 중이염의 뿌리를 아예 뽑아야 한다면서 또 다른 종류의 항생제로 20일치의 약을 더 처방해주면서 끝까지 아이에게 먹여야 한다고 강요를 했다.

귀로 인해 더 이상 문제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의사가 이런 식으로 권하니 엄마로서는 아이의 미래를 위해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엔드류의 설사가 시작된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장기간 항생제 복용에서 흔히 나타나는 부작용이 설사인지라 의사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오직 중이염의 세균을 발본색원해야 한다면서 30일치 항생제를 또 처방해준다.

이 모든 항생제의 투여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엔드류의 행동장애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술 취한 것처럼 웃으면서 뒤뚱뒤뚱 걷다가 며칠 뒤에는 하루 종일 소리를 지르고 시묵룩하면서 말을 걸면 격하게 반응을 하는 것이었다.

 

03_25개월 차가 됐을 때 엔드류는 자폐증 진단을

더불어 엔드류의 설사는 점점 심해지면서 먹은 것들이 소화되지 않은 채 배출이 되고 있었다. 꼼지발로 걷기도 하고 엄마나 아빠와 눈도 안 마주쳤다. 그 동안 몇 마디 하던 말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심지어 엄마가 이름을 불러도 전혀 딴 세상에 있는 것처럼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엔드류의 행동은 더 기이해져 갔으며 몸도 점점 여위어져 갔다. 문고리를 잡고 옆에 있는 전등 스위치 켰다 껐다를 30분 이상 하기도 일수였다.

물건에 집착을 보이면서 또래 친구들에게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계속 소리 지르는 것은 특히 엄마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용하다는 여러 의사를 전전하면서 어느덧 25개월 차가 되었을 때 엔드류는 자폐증 (autism)으로 진단을 받게 된다.

당시 의료인을 제외한 일반인들에게 자폐증세에 대한 기억은 1988년 영화 ‘레인 맨 (Rain Man)’에서 더스틴 호프만 (Dustin Hoffman)이 명연기로 보여준 비사교성과 탁월한 기억력… 그것이 전부였다. 그때는 아이들이 자폐증 진단을 받으면 그 아이는 원래 그 증세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 의학계의 정설처럼 믿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엄마인 엘렌의 생각은 달랐다. 내 아이를 누구보다 잘 아니 분명 이 진단은 어딘가 잘못 되었다고 확신했다. 그러면서 엘렌은 온갖 의학서적과 논문들을 읽고 자신의 아들이 왜 이런 상태가 되었는지에 대한 답을 찾기 시작하였다.

 

04_‘중이염 때문에 엔드류가 복용한 항생제가 원인이지 않을까?’

무서운 집념이었다. 무소의 뿔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러면서 ‘중이염 때문에 엔드류가 복용한 항생제가 원인이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갖기 시작할 즈음에 우연히 항생제 복용으로 생기는 설사에 관여하는 박테리아에 대한 연구를 접하게 된다.

그러면서 엔드류에게 처방된 항생제가 대장에 있는 좋은 박테리아를 죽이고 대신 파상풍 (tetanus)을 유발시키는 ‘클로스트리디엄 테타니 (Clostridium tetani)’라는 나쁜 박테리아가 창궐하게 되어 이 박테리아가 만들어낸 독성물질이 한창 자라는 엔드류의 뇌 발달에 악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만들어낸다.

마침 이 가설에 귀 기울어준 의사를 만나 엔드류의 혈액검사를 해보게 되었다. 여느 미국 어린이들처럼 엔드류도 파상풍 예방 주사를 이미 맞아 당연히 혈액 내에 파상풍 항체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음성으로 나와 의사나 엘렌은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엘렌의 가설이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다음 단계로 이 파상풍을 유발시키는 박테리아를 제거하는 항생제를 자신의 아들에게 복용하게 해야 된다고 의사를 설득한다. 당시에는 이 박테리아가 장에서 만들어낸 독성물질이 어떻게 뇌에 들어가는지에 대한 지식이 없을 때였다.

결국 대장에서 발생한 독성물질이 대장과 뇌를 이어주는 미주신경 (vagus nerve)을 타고 갈 수 있다는 이론까지 찾아내게 된다. 드디어 엘렌은 자신의 이론을 이해하고 이 파상풍균 만을 없애는 항생제 치료에 응해준 의사와 함께 치료를 시작하는데 이때 엔드류의 나이가 다섯 살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엔드류의 행동이 모두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엘렌의 모성애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기적이었다.

 

05_대장에 사는 균들의 상호견제 균형 파괴되면 정신질환도

대장에 사는 균들의 상호견제 균형이 파괴되면 비만뿐 아니라 정신질환도 야기된다는 것이 요즘의 연구결과이다. 우울증을 앓아 약을 복용하는 내 연구실 옆방의 교수는 지난 2년 동안 몰라보게 체중이 불었다.

엉망이 된 장내 미생물의 분포도가 비만을 초래한 것이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내 방문에 걸려있는 단체사진 속의 그는 날렵한 몸매로 웃고 있는데 말이다.

우리 몸 속에는 세포 숫자보다 열 배나 많은 박테리아가 살고 있다. 그래서 어떤 과학자는 ‘10%만이 사람이고 나머지 90%는 박테리아로 되어 있는 것이 인간’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대장 속에 있는 수백 가지 종류의 박테리아가 우리 몸 속에서 공생을 하고 있는 셈이다. 외면할 수 없는 박테리아와의 관계, 태어날 때부터 이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 균들과 우리는 친구가 되어 사이 좋게 지낼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그러므로 식생활은 우리의 신체뿐 아니라 인성까지 결정한다. 그래서 나온 영어 격언이 ‘You are what you eat’이다. 즉, 먹는 음식이 유전자 못지않게 우리의 건강을 결정짓는다.

오늘 저녁 요리를 하기 전 반드시 내 장에 있는 박테리아에게 의견을 물어보자. ‘박테리아야, 너는 내가 어떤 음식을 먹어야 행복하겠니?’ 장차 위 영어격언은 다음과 같이 바뀌게 될지도 모르겠다. ‘You are what microbes eat.’

 

 

 

글 / 박석천 (글벗세움 회원·챨스스터트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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