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파 최초의 여성화가 베르트 모리조

끊임없는 도전과 끈기로 자신의 목소리 키워간 의지와 집념의 화가

마네의 ‘제비꽃 장식을 단 베르트 모리조’로 유명한 베르트 모리조 (Berthe Morisot: 1841년-1895년)는 인상파 최초의 여성화가이다. 여인이기에 모네, 르누아르, 드가등 기라성 같은 남성 화가들에 묻혀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화가… 여자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도전과 끈기로 쟁쟁한 예술가들 속에서 부대끼며 자신의 목소리를 키워간 의지와 집념의 화가이다.

 

01_여자를 예술가로 인정하지 않는 기존의 편견과의 싸움

거울 앞에서 1890년, 유화

거친 필체로 빛과 찰라를 표현해 그 누구보다 인상주의적 그림을 그려온 그녀의 삶은 여자를 예술가로 인정하지 않는 기존의 편견과의 싸움이었다. 인상파 그룹의 유일한 여성으로 꾸준히 인상파전에 작품을 내고, 많은 인상파 화가들이 각자의 길로 떠날 때 그녀는 끝까지 남아 자리를 지켰다.

미술사가 아르망 푸로는 그의 저서 <베르트 모리조>에서 “베르느 모리조는 부당하게도 평가 받지 못한 화가였다. 여자라는 이유가 상당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고전미술의 종점이자 현대미술의 출발점이 된 인상주의 미술에서 맡아 했던 선구적 역량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고 말한다.

이제 그녀의 작품은 인상주의의 메카 오르세미술관이나 세계의 유명 미술관에 자리잡아 그 명성을 뽐내고 있다. 남성과는 다른 여성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감성으로 일상을 잡아낸 그녀의 작품에서 우리는 그녀의 속에서 꿈틀거리는 열정과 뜨거운 예술혼을 느낄 수 있다.

 

02_바르비종파 화가로 도시 떠나 자연의 풍광 화면에 담아

다이닝 룸에서 1886년, 유화

모리조는 184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부유한 명문가로 아버지는 도지사였고, 외할아버지는 로코코 시대의 유명한 화가 프라고나르였다.

윤택하고 예술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라난 그녀에게 그림 그리기는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레 다가왔다. 어린 모리조는 외할아버지에게서 이어받은 재능으로 어릴 때부터 그림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다. 또한 그녀의 언니 에드마 모리조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둘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그림을 그리며 자라났다.

여자에게는 정식 미술학교 입학도 허락되지 않았기에, 아버지는 그녀와 언니에게 당시 쟁쟁한 화가 카미유 코로에게 사사를 받게 했다. 코로는 밀레와 마찬가지인 바르비종파 화가로 도시를 떠나 자연의 풍광을 화면에 담아 프랑스 최고의 화가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는 “예술에 있어서 아름다움이란, 자연에서 느껴지는 인상 속에 감싸인 진실이다. 의식적으로 주제를 따라 그려가지만, 한시도 내가 사로잡혔던 감정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연의 대기와 광선의 효과를 표현하는 것을 중요시 했는데, 그의 이러한 화풍은 모리조 자매의 예술에 근간이 되었다. 모리조는 스승에게서 탄탄한 데생과 풍경에 내려앉은 빛의 흐름을 묘사하는 방법들을 배워 누구보다도 단단한 기초를 쌓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미술을 배우게 된 모리조는 언니와 함께 루브르박물관에서 거장들의 작품들을 모사하며 화가의 꿈을 향한 열정을 불태웠다. 모리조는 1864년 파리 살롱전에 풍경화를 출품해 입선하고 이후에도 6번이나 작품을 출품해 그녀의 실력을 인정받았다.

 

03_막혔던 물꼬 튼 듯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 열정이 화면을…

바느질을 수업하는 베르트 모리조 딸 쥴리 1884년, 유화

마네와 모리조의 운명적인 만남은 루브르박물관에서 이루어졌다. 1868년경 루브르에서 모사를 하고 있던 모리조를 본 마네는 아름답고 기품 있는 그녀의 자태에 첫눈에 반했다. 그는 모리조에게 다가가 자신의 모델이 되어달라 청했고, 그녀도 마네의 명성을 알고 있어 그의 모델이자 제자가 되었다.

마네의 뮤즈가 탄생한 것이다. 모리조는 마네의 예술적 영감을 끌어올렸고, 마네는 그녀로 인해 자신의 예술적 세계를 완성시켜 나갔다. 모리조를 모델로 해 ‘제비꽃 장식을 단 베르트 모리조’, ‘발코니’, ‘베르트 모리조의 초상’등 주옥 같은 작품들을 발표해 화가로서 완성된 경지까지 오르게 되었다. 특히 ‘제비꽃 장식을 단 베르트 모리조’는 시인 폴 발레리가 마네 예술의 정수라 극찬할 정도의 대표작으로 우리에겐 영화 ‘제비꽃 여인: 베르트 모리조’로도 잘 알려진 작품이다.

모리조 역시 이 시기가 고전적인 사실주의에서 벗어나 인상주의적 표현으로 변화해 가는 중요한 시기였다. 1869년작 ‘창가에 앉아있는 화가의 언니’에서 보여주는 차분하고 정적인 터치와 인물의 사실적 묘사가 1874년작 ‘제작되는 배들’에서 얼마나 힘차고 과감한 터치로 사물을 표현했는지, 그 드라마틱한 변화의 과정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막혔던 물꼬를 튼 듯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 열정이 화면을 뒤덮고 있다.

 

04_마네와 모리조는 서로의 가족과도 교류하면서 친밀히

사냥개와 소녀 1893년, 유화

마네와 모리조는 서로의 가족과도 교류하면서 친밀하게 지냈다. 모리조는 마네의 모델을 하면서 그에게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코로의 영향으로 풍경을 주로 그리던 그녀는 인물에 관심을 갖고 주변의 인물들을 그려 나갔다.

마네가 그녀를 뮤즈로 삼고 예술혼을 불태울 때 그들의 관계에 대한 가십도 함께 퍼져 나갔다. 마네가 한 여성을 모델로 삼아 그렇게 많은 작품들을 그린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마네의 마음 속 억눌린 사랑이 있었겠지만, 마네는 그것을 에로스적인 것을 뛰어넘어 예술로 승화시킨 것 같다.

그리고 모리조도 마네를 존경하는 스승으로 여겼고, 그들의 관계는 예술적 동지라는 이상적인 형태로 구축되었다. 그리고 33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마네의 동생 외젠 마네와 결혼함으로 가족이란 울타리 속에 서로의 감정을 갈무리했다.

1875년 모리조가 결혼을 하면서 그린 작품 ‘와이트 섬의 외젠 마네’에는 실내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외젠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름다운 꽃들과 바깥의 평화로운 풍경, 환한 햇살이 작품 전체를 비추어 새색시가 남편을 바라보는 감성이 묻어나는 것 같다.

모리조의 남편 외젠은 그녀를 깊이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열렬한 후원자로 그녀의 화가로서의 길을 도왔다. 모리조가 제한된 환경 속에서도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보살펴준 외젠의 따스한 마음씨의 덕이 컸을 것이다. 1879년 그들의 사랑의 결실인 딸 쥴리가 태어나고 모리조는 엄마로서 화가로서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05_최초의 여성 인상파 화가로 자리매김

사색하는 쥴리 1894년, 유화

마네의 뮤즈로만 남기에 모리조의 재능은 너무도 뛰어났다. 그녀는 실내에서 주로 작업을 하던 마네를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게끔 이끌어 내었을 뿐만 아니라, 아직 무명이었던 인상파 화가들과의 교류를 주선하였다. 마침내 마네가 인상주의전에 합류했을 때 인상파 화가들의 전시는 사회적 주목을 받게 되었으니 실로 인상주의의 출범에 모리조의 역할이 무척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드가와 모네, 르누와르가 주축이 되어 열린 제1회 인상파전은 그 파격적인 시도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드가는 모리조를 참여시킴으로 여성화가의 참여라는 또 다른 이슈를 이끌어 내었다. 사실 모리조는 이미 살롱전에 여 러번 입선해 실력을 검증 받은 작가였고, 야외에서 즐겨 빛과 자연을 그리던 그녀의 화풍은 인상파와도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처음에 마네는 급진적인 인상파 화가들의 전시보다는 살롱전에 출품해 기존 화단의 인정을 받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 모리조의 참가를 반대했지만, 드가의 끈질긴 권유와 모리조의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가려는 단호한 결심은 그도 막을 수 없었다. 마침내 그녀는 ‘요람’을 비롯해 여러 점을 출품해 최초의 여성 인상파 화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06_빛의 흐름 자연스레 표현하고 섬세하지만 힘있는 붓 놀림으로

와이트 섬의 외젠 마네 1875년, 유화

1872년작 ‘요람’은 1874년에 열린 첫 인상파전에 출품된 작품이다. 화면에는 한 여인이 요람 속에 잠들어 있는 아기를 사랑스런 시선으로 내려다 보고 있다. 천진한 아기가 주는 평화와 어머니의 포근한 사랑이 화면 가득 퍼지는 것 같다. 옅은 아마색과 살색, 네이비 계열의 색상의 조화는 전체적으로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요람의 커텐을 향해 비추는 빛의 흐름을 자연스레 표현하고 섬세하지만 힘있는 붓 놀림으로 인물과 배경에 생동감이 넘친다.

여인은 화가의 언니 에드마이고 아기는 그녀의 딸 블랑쉬이다. 에드마와 베르트는 매우 친밀해서 항상 함께 그림을 그리곤 했지만, 에드마는 사회의 관습에 따라 화가의 꿈을 포기하고 결혼해 가정을 이루었다. 안온한 사랑의 감정에 섞여 생각이 많은 듯 보이는 에드마의 눈길은 베르트가 환경에 못 이겨 주저앉아 버린 언니의 심정을 너무도 잘 알기에 자연스레 묻어 나오는 내면의 소리였던 것 같다.

“언니가 그리워하는 이 일, 그림을 그리는 일은 무척 슬프고 힘들어. 여기에 와 봐. 언니가 선택한 운명이 최악은 아니야. 언니가 진심으로 마음을 열면 한 남자는 완전히 언니에게 헌신할 거야… 여자가 자신 안에 혼자 틀어박힌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그녀가 에드마에게 보낸 편지에는 당시의 상황과 그들의 심경이 드러나 있다.

 

07_주부로서의 일상, 파리 부르주아 계급의 일상 그려

요람 1872년, 유화

모리조는 주로 그녀 주위의 인물들과 사랑하는 가족, 주부로서의 일상, 파리 부르주아 계급의 일상을 그렸다. 1886년작  ‘다이닝 룸에서’는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하녀를 그린 작품이다. 식탁과 부엌 사이에 서서 조그만 그릇을 들고 무언가를 섞고 있는 이 젊은 여인의 모습은 열려있는 찬장이나 벽에 걸려있는 후라이팬 등 어수선한 주위의 배경과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와 어우러져 활기찬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여인의 뒤쪽 창에서 환한 햇살이 이 모든 정경을 비추고 있어 평범한 일상에 생기를 더해준다. 모리조는 일상의 순간을 세련된 색채와 거친 붓 놀림의 오묘한 조화로 아름답게 표현해 내었다.

‘거울앞에서’ (1890년)는 평범한 여인의 일상을 보여준다. 여인은 아침에 일어나 흐트러진 옷매무새로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만지고 있다. 커다란 거울과 침대가 이곳이 침실임을 보여준다. 여인의 포즈는 세밀하게 그린 것이 아님에도 아름다운 여인의 곡선을 보여주고, 배경의 투명한 블루와 여인의 살색, 연한 핑크와 상아빛의 조화는 마치 색의 마술사같이 화면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다.

 

08_한 여인의 내면 속에서 꿈틀거리는 열정이 붓끝에서 살아나

자화상 1885년, 유화

1884년작 ‘바느질을 수업하는 베르트 모리조 딸 쥘리’는 사랑하는 딸과 함께 하는 그녀의 일상을 그린 작품이다. 어머니와 딸이 마주 앉아 있는데, 딸은 어머니의 손에서 살아나는 수를 흥미로운 빛으로 바라본다. 입을 살짝 벌리고 바느질에 열중한 베르트는 딸에게 한 땀 한 땀 완성되어가는 천을 보여주고 있다. 어떠한 걱정도 없는 무심하고도 평화로운 한때이다.

작품에서 화면을 흐르는 빛은 거친 몇 번의 붓질로 표현된다. 마구 칠해진 것 같은 선들은 정확한 자리에서 빛과 그림자를 나타내고, 아름다운 푸른색의 옷을 입은 두 모녀는 쏟아지는 태양 아래 찬란하게 빛난다. 몇 개의 선으로 이루어진 정원과 기둥들, 간결하게 디테일이 생략된 배경은 우리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펴게 만든다. 그들의 이 행복한 한때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겠지만, 그 한때를 화면에 캡쳐해 그들의 행복을 영원히 가둔 것 같다.

또한 1885년에 그려진 ‘자화상’을 보면 사방팔방으로 거칠게 휘둘러진 붓 터치가 난무한다. 아무 목적 없이 그려진 것 같은 그것들은 흩어지는 눈발이 설경을 이루듯 서로가 서로에게 결합해 대상을 구축해 나간다. 해가 갈수록 그녀의 붓 놀림은 더욱 자유롭고 힘차게 뻗어나가는 것 같다. 어느 남성 화가의 필력이 이보다 힘있을까? 베르트 모리조라는 한 여인의 내면 속에서 꿈틀거리는 열정이 붓끝에서 살아나 우리에게 부르짖는 것 같다.

 

09_마네는 모리조의 정신적 지주이자 예술적 동지로

제작되는 배 1874년, 유화

1883년 마네가 다리 수술의 후유증으로 51세의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마네는 모리조의 정신적 지주이자 예술적 동지로서 그녀의 삶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마네의 죽음은 모리조에게 커다란 슬픔과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오랫동안 계속된 허탈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가족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었으리라. 그녀는 더욱 딸 쥴리와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많은 쥴리의 초상을 그리며 스스로를 치유해갔다.

모리조는1881년부터 몇 년 간 파리 근교에 위치한 부지바르라는 작은 마을에 살았다. 그곳의 집에 있는 장미정원을 사랑하여 여러 점의 작품을 남겼다. 당시 그려진 ‘부지바르의 정원’은 아름다운 색채의 조합과 잔잔한 붓 터치로 벽을 타고 오르는 장미들과 정원의 정경을 세련되게 표현하고 있다.

1888년작 ‘독서’는 온통 빛으로 가득찬 작품이다. 한 소녀가 뒷뜰 테라스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뜰에는 커다란 잎을 펼친 나무들이 흔들리고 태양은 테라스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소녀는 한여름 오후의 빛 속에서 반짝이고 있다. 살랑이는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아름답고 평화로운 작품이다.

 

10_남녀 떠나 마네와 모네와 드가와 함께 인상주의의 선구자로

창가에 앉아있는 화가의 언니 1869년, 유화

모리조는 런던, 벨기에 등지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하며 열심히 활동하던 중 1892년 파리에서 개인전을 열게 되었는데 갑자기 남편 외젠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평생의 동반자이자 지지자였던 남편의 죽음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웠겠지만, 그녀는 굴하지 않고 작품에 매달려 개인전을 성공리에 치렀다.

남편이 죽은 후 1893년 그린 ‘사냥개와 소녀’에서 짙은 색의 옷을 입은 쥴리는 어느덧 어린아이의 모습을 벗고 숙녀와 아이 사이의 경계에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혼란한 내면의 모습이 멍하니 앉아있는 얼굴 표정에서 느껴진다.

주위의 가구와 침대, 강아지는 옅은 하늘색과 살구빛의 파스텔 톤으로 쥴리를 감싸고 있다. 마치 어머니의 사랑이 감싸고 있는 것 같이…  그리고 1984년작 ‘사색하는 쥴리’에서는 조금 더 성숙해진 쥴리가 흰옷을 입고 몽환적인 표정으로 턱을 고인 채 앉아있다.

쥴리의 내면을 상징하듯 모든 붓 터치는 힘을 절제하고 차분하게 그려져 있다. 모리조가 죽기 1년 전에 그려진 작품이다. 모리조는 폐렴에 걸린 딸을 간호하다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도 큰아버지도 다 떠나 아무 울타리도 남지 않은 열여섯 된 딸을 두고 가는 모리조의 심경이 어떠했을지는 상상할 수도 없을 것 같다.

2019년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에서 모리조의 회고전이 열렸다. 여성화가 최초의 회고전이라는 점에서 그녀가 일생에 걸쳐 여성이기에 겪었던 사회적 편견과 부조리를 꺾고 얻어낸 승리가 값지다. 오늘날 모리조는 남녀를 떠나 마네와 모네와 드가와 함께 인상주의의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다. 세상 사람들 앞에 오로지 예술로 인정받은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가 하늘에서 빛나는 것 같다.

 

*다음 호에서는 절대주의의 창시자인 추상화가 말레비치의 세계로 안내하겠습니다.

 

 

미셸 유의 미술칼럼 (27) 상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환상적 원시회화 창조한 앙리 루소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미셸 유 (글벗세움문학회 회원·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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