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기형에서 온 한과 소외 받은 아픔, 예술에 녹여낸 몽마르트르의 영혼

신체적인 장애를 딛고 새로운 미술의 장을 연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 그는 포스터라는 상업미술을 순수미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려 현대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화가이다. 37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 신체의 기형에서 온 한과 소외 받은 아픔을 예술에 녹여내 ‘몽마르트르의 영혼’이라 불리기도 했다.

 

01_150cm, 상반신은 성인의 몸, 하반신은 아이의 몸…

귀족적이고 자부심이 강한 로트렉의 정신은 그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못 되는 빈약한 신체에 대한 괴리감과 열등감으로 인해 고통 받았지만, 그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킴으로 ‘현대 그래픽 아트의 아버지’라는 칭송을 받게 되었다.

로트렉은 1864년 프랑스 알비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집안은 유서 깊은 명문 백작가이다. 그는 7세 때까지 집안의 작은 보석으로 온갖 귀여움을 독차지했으나 선천적으로 뼈가 약해 병치레가 심했는데 집안의 순수한 혈통을 유지하려는 근친혼으로 인한 유전병이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사촌지간이었다. 12세와 14세에 대퇴골이 부서지는 큰 사고 이후 그의 다리는 아예 성장을 멈추어버렸다. 지팡이가 없으면 앞으로 고꾸라질 정도로 그의 하체는 부실했고, 성인이 되었을 때도 키가 150cm 밖에 안 되는, 상반신은 성인의 몸, 하반신은 아이의 몸으로 살게 된 것이다.

백작인 아버지는 그를 가문의 수치로 여겼고, 성장이 멈춘 귀족 남자아이는 집안의 냉대와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다.

 

02_어머니는 그의 그림 이해하는 로트렉 인생 유일의 등대

그러나 로트렉을 사랑했던 그의 어머니는 그의 안에 잠들어 있는 빛나는 재능을 알아보았다. 그녀는 아들에게 10세 때부터 미술을 배우게 하고, 몽마르트르에 집을 얻어 옆에서 지켜주기도 하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독려하였다.

어머니는 그의 그림을 이해하는 로트렉 인생 유일의 등대가 된 것이다. 1887년 그려진 ‘말롬의 살롱 안의 툴루즈 로트렉 백작 부인’은 로트렉이 존경과 사랑을 담아 그린 어머니의 초상화이다.

꼭 다문 입술과 꼿꼿한 자세로 책을 읽는 모습은 애달픈 자식에 대한 슬픔을 안으로 갈무리한 채 고결하고 당당한 귀족여인의 품위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1884년 그린 ‘커피포트’는 심플한 정물화 안에 20세 젊은 화가의 어두운 내면을 담은 작품이다. 큰 몸통과 짧은 다리를 가진 로트렉은 자신의 생김새와 비슷한 커피포트를 그리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별명이 된 커피포트 안에 비치는 스스로의 모습을 그리며 그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의 자신의 모습과 대면했으리라. 거친 터치와 어두운 색조는 운명에 대한 원망과 분노, 체념으로 가득한 그의 내면세계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03_드가의 영향 많이 받아 작은 드가라고도 불려

스물 두 살이 된 로트렉은 코르몽의 화실에서 고흐와 만나 서로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 받았다. 1887년에 그린 ‘빈센트 반 고흐의 초상’은 파스텔을 이용해 짧은 시간에 그린 그림으로 고흐의 특징과 개성이 잘 살아있는 작품이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가늘고 긴 붓 터치가 교차하며 화면에 거친 양감을 형성해 로트렉 특유의 분위기가 드러난다. 로트렉은 드가의 영향을 많이 받아 ‘작은 드가’라고도 불리었는데, 이러한 붓 터치는 이후 그의 작품에도 약간의 변화와 더불어 계속 나타난다. 이 작품이 마음에든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연결해주었고 테오는 계속 로트렉의 작품을 구입하게 되었다.

고흐, 고갱, 마네등과 후기 인상파 시대를 연 로트렉은 몽마르트르에 화실을 차리고, 그 후 13년 동안 술집, 캬바레, 사창가등 사회의 뒷모습을 그렸다. 상처투성이 로트렉이 귀족들의 살롱이나 무도회를 찾아가는 대신 사회의 소외된 계층, 힘들게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들을 작품에 담은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는 1889년부터 앙데팡 당전에 출품하고 1893년 첫 개인전을 열었는데, 그의 풍자적인 화풍은 사람들의 흥미를 이끌었고, 유화와 더불어 석판화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04_어머니 제외한 3명의 소중한 여인들

로트렉에게는 어머니를 제외한 3명의 소중한 여인들이 있었다. 로트렉의 여인을 이야기 할 때 그의 뮤즈이자 친구, 또는 연인이었던 수잔 발라동을 빼놓을 수 없다.

사생아로 태어나 청소부, 직공, 곡예사 등 사회의 밑바닥에서 험난한 인생을 살던 그녀는 모델 일을 시작해, 드가, 르누아르, 반 고흐의 모델을 하며 그들의 정부 노릇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발라동은 포동포동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르누아르의 작품에도 종종 등장하였는데, 르누아르의 정부이기도 했던 그녀가 르누아르와 헤어진 후 로트렉과 만나게 된 것이다.

발라동은 로트렉을 불구가 아닌 남들과 같은 존재로 편견 없이 대해 로트렉은 그런 그녀에게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었다. 다른 화가들이 자신의 육체가 주는 아름다움만을 표현한 데 비해 로트렉은 인간 자체인 그녀의 모습을 표현했기에, 자신의 밑바닥 인생을 진솔하게 그려낸 로트렉에 의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게 된 그녀는 로트렉과 사랑에 빠졌다.

사회의 멸시 어린 시선과 남자들의 희롱에 웅크리고 있던 자존감을 되찾고 세상을 향해 고개 들고 정면으로 맞서는 그녀의 모습은 로트렉에 의해 화면에 고스란히 살아있다.

‘숙취 (1887~1889)’에는 술병을 앞에 두고 멍한 표정으로 앉아 먼 곳을 바라보는 여인이 있다. 초라한 옷 속에 숨겨진 노동으로 단련된 거친 육체는 피곤에 지친 듯 하지만 그 자리에 절망은 없다. 힘든 일상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삶에 대한 강인한 의지, 펄떡이는 날 것의 생명력이 그 안에 숨 쉰다.

누가 이 세파에 찌든 여인을 르누아르의 ‘부지발의 댄스’에 등장했던 아름다운 레이디와 동일 인물이라 생각하겠는가? 르누아르는 여인의 육체적 아름다움을 추구했지만 로트렉은 수잔 바르동이란 인간 내면을 화면에 드러내고 있다.

 

05_사회 밑바닥에서 안간힘 쓰는 그녀의 처지에서 동질감을

로트렉은 또한 카르망 고뎅이라는 붉은 머리의 세탁부를 모델로 여러 장의 그림을 그렸다. 당시 젊은 로트렉은 가혹한 현실 속에서 허우적대지만 불안과 고통 속에서도 결코 꺼지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카르망에게 첫눈에 반했다.

육체적 결함을 향한 부당한 시선과 조롱 속에 속수무책으로 내던져진 자신과 사회의 밑바닥에서 꿈틀거리며 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녀의 처지에서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카르망을 모델로 한 ‘세탁부 (1889)’라는 작품은 부조리한 사회에서 한없이 착취 당할 뿐인 그녀의 삶에 대한 적나라한 울분과 그럼에도 어찌할 수 없는 체념을 담고 있다.

암울한 환경을 상징하는 듯 어둡게 처리된 배경 속에서 흰 셔츠를 입은 여인이 작업대에 의지해 몸을 앞으로 내밀고 서있다. 걷어 올린 소매 밑으로 작업대를 꽉 눌러 잡은 거친 손에서 고단한 삶의 흔적과 강인한 삶의 의지가 드러난다.

햇빛에 의해 강조된 여인의 옆얼굴과 셔츠는 배경의 모든 어둠을 뚫고 강렬하게 빛나고 있다. 남의 빨래를 해주며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여인은 힘든 일상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바깥의 또 다른 세상을 상징하는 빛을 바라본다. 고개를 쳐들고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여인은 돌 틈에 뿌리내린 잡초마냥 강인한 생명력으로 시궁창 같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06_채색석판화 기법 사용한 거리 포스터로 새로운 예술경지 획득

19세기말 파리는 ‘벨 에포크 (좋은 시절)’라는 찬란한 예술을 꽃피우는 문화의 정점을 누리고 있었다. 문인과 예술가들이 살롱이나 몽마르트르 언덕에 모여 회화, 연극, 음악, 문학을 창조하고 향유하는, 파리 전체가 예술과 향락의 중심이 되었다.

로트렉은 이러한 화려하고 향락적인 밤 문화를 화폭에 담으며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1889년 개장한 캬바레 물랭루즈는 몽마르트르의 명소가 되었고, 로트렉이 1891년 제작한 ‘물랭루즈에서, 라 글뤼’라는 포스터는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이것은 다색 석판화 포스터로 3000장을 찍었는데 하도 인기가 좋아 벽에 붙이자마자 사람들이 떼어가곤 했다고 한다. 주인공을 살리기 위해 관중들은 검은 실루엣으로 처리되었고, 몇 개의 심플한 검은 선으로 이루어진 댄서의 하얀 페티코트는 춤추는 댄서의 생동감을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공중으로 높이 들린 라 글뤼의 다리는 탐욕스러운 대중의 입맛을 자극한다. 댄서의 선정적인 자세를 간결한 선으로 깔끔하게 그리고, 높은 모자를 쓴 그녀의 파트너는 캐리캐추어식으로 과장된 형태와 포즈로 표현해 서로의 대비로 인한 효과가 명쾌하게 드러난다.

채색 석판화라는 기법을 사용해 포스터를 제작한 로트렉에 의해 거리의 예술 포스터는 새로운 예술의 경지를 획득했다. 그의 석판화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색채와 일본의 회화양식에서 영향 받은 실루엣, 화면분할을 이용해 더욱 독특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보여준다.

그의 다색 석판화로 ‘아스트리드 브뤼앙: 대사 (1982)’가 있다. 샹송 가수이자 작사, 작곡가인 브뤼앙은 로트렉에게 술과 여자를 가르친 악의 길잡이였을 뿐만 아니라, 로트렉의 예술적 동반자이기도 했다.

몽마르트르의 유명인사인 그가 1885년 ‘미를리통’이란 캬바레를 열었는데 로트렉은 이 술집의 단골 손님이자 그의 열성팬이었다. 브뤼앙은 파리의 하층계급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삶 속에 녹아있는 서정과 빛나는 생명력을 노래했다.

이 작품은 브뤼앙의 공연을 위해 제작된 포스터로 빨강, 노랑, 파랑의 원색, 검정색, 단순한 선과 평면적인 색면 분할로 이루어져 있다. 브뤼앙의 트레이드 마크인 붉은 스카프, 챙넓은 검정 모자, 다크 블루의 망토를 두른 주인공의 모습에서 위엄과 존재감이 강렬하게 드러난다.

 

07_카메라로 움직이는 한 장면 찍은 듯한, 로트렉만의 독특한 구도

로트렉은 물랭루즈에서 많은 그림을 그렸는데 ‘물랭루즈에서: 더 댄스 (1890)’는 113cm*148cm의 대형 유화작품이다. 많은 관중들이 들어선 물랭루즈 캬바레에서 두 댄서가 캉캉 춤을 추고 있다.

능숙한 남자 댄서가 새로 들어온 여자 댄서와 합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관중들의 시선 속에서도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열심히 스텝을 배우는 여인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고, 남자댄서는 자신의 숙련도를 과시하듯 오징어처럼 흐느적거리며 발을 꼬아대고 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배경처럼 서있고 녹색 불빛을 받은 밝은 마루바닥에 비친 여인의 흐릿한 그림자가 사실성을 더해준다. 춤추는 두 댄서가 주인공인 이 그림은 주인공들이 마치 스냅숏처럼 정면에 부각되지 않고 군중 속에 위치한다는 것이 특이하다.

오로지 댄서의 빨강 스타킹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아 보는 사람 역시 이 그림 속으로 들어와 군중의 한 사람이 된 것만 같다. 정면에 모자를 쓰고 핑크 빛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주인공인 것 같지만 이 여인 역시 군중 속의 한 사람일 뿐이다. 마치 카메라로 어떤 움직이는 한 장면을 찍은 듯한 이 구도는 로트렉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구도라 할 수 있겠다.

 

08_귀족과 매춘부의 딸이라는 상반된 환경… 상처와 아픔은 동병상련

French Art Poster - Jardin de Paris, Jane Avril, Toulouse-Lautrec ...로트랙의 또 다른 뮤즈 제인 아브릴 역시 다른 여인들과 마찬가지로 밑바닥 인생이었다. 물랭루즈에서 일하는 매춘부의 딸로 태어나 몽마르트르의 인기 있는 무희가 된 그녀는 인생의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와 기어이 성공을 거머쥔 전형적인 19세기 여인의 성공사례라 할 수 있겠다.

제인은 매춘부인 어머니의 학대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마침내 딸마저 매춘부로 팔아버리려는 어머니의 손에서 필사적으로 도망 나와 몽마르트르에 정착하였다.

파리 만국박람회의 매표소에서 일하던 중 고질병인 무도증 (틱)이 심해지자 의사의 권유로 춤을 추게 되었는데, 온 근육을 사용해 춤을 추면 병도 낫는 것 같고 해방감도 느낄 수 있어 그녀는 물랭루즈의 캉캉 댄서가 되었다.

물랭루즈에서 항상 그림을 그리고 술도 마시며 살았던 로트렉은 춤추는 그녀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그녀를 담은 여러 장의 그림을 그렸다. 귀족과 매춘부의 딸이라는 상반된 환경에서 자라왔지만 그들이 겪은 상처와 아픔은 동병상련을 느끼게 해 로트렉은 그녀에게 애정을 느끼게 되었다.

19세기 밑바닥 여인으로는 드물게 책을 좋아하는 세련된 취미와 섬세한 감성, 로트렉의 예술을 이해하는 심미안을 가졌던 그녀는 로트렉의 뮤즈가 되기에 손색이 없는 여인이었다.

1895년 제작된 ‘제인 아브릴, 자댕 드 파리’는 아브릴이 긴 다리를 뻗어 캉캉춤을 추는 모습을 그린 포스터로 그녀의 매력과 밤의 환락을 잘 표현하고 있다. 작품 하단에 있는 악기는 남성의 성기를 닮아 춤추는 여인을 향한 남자의 성욕을 풍자하는 듯 하다.

대담한 구도와 인물의 특징을 잘 잡아낸 작품으로 무채색 속에서 빛나는 노랑이 원색 그대로 빛나고 있고, 이 극단적인 대비가 우리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작품이다.

 

09_날카롭고 유려한 붓 터치, 특징 잡아내는 자신만의 표현방식 창조

로트렉은 날카롭고 유려한 붓 터치와 대상의 특징을 잡아내어 캐리캐추어에 가까운 소묘로 자신만의 표현방식을 창조했다. 특유의 색채 감각과 세련된 레터링으로 유머러스한 장면을 포착해 화면에 담았는데, 어두운 색과 화려한 색이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아름다운 화면 속에 인생에 대한 깊은 고뇌와 우수가 함께 한다.

술과 방탕한 생활로 병에 걸려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유화, 석판화, 드로잉, 수채화 등 5000여점의 작품을 그렸고 비평가와 대중의 입맛을 동시에 만족시켰다.

보들레르의 시 ‘취하라’가 그의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해주기를 바라며… 항상 취하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그대의 어깨를 짓누르고 그대의 허리를 휘게 하는 무서운 시간의 중압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끊임없이 취하라. 그러나 무엇에? 술이건, 시이건, 선이건, 그대가 좋아하는 것에. 다만 취하라. 그러다 때로 궁전의 계단이나 개울가 푸른 잔디 위에서, 또는 삭막하고 고독한 그대의 방에서 깨어나 문득 취기가 어느 사이 사라졌음을 발견하게 되면 물으라.

바람에게, 파도에게, 별에게, 새에게, 시계에게, 달아나는 모든 것, 신음하는 모든 것, 구르는 모든 것, 노래하는 모든 것, 말하는 모든 것에 물으라. 지금 몇 시냐고… 그러면 바람은, 별은, 새는, 시계는 대답하리라. “지금은 취할 시간이다! 시간의 학대를 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라. 쉬지 않고 취하라! 술이건, 시이건, 선이건, 그대가 좋아하는 것에.”

 

* 다음 호에서는 몽마르트르의 보헤미안 모딜리아니와 만나겠습니다.

 

글 / 미셸 유 (글벗세움문학회 회원·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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