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그리는 화가 르누아르

평생 여인의 아름다움, 빛과 색이 주는 황홀한 쾌감 화폭에 담아

‘행복을 그리는 화가’ 르누아르 (Pierre-Auguste Renoir 1841~1919)의 그림을 보면 따스한 봄날 오후,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창밖에 피어난 꽃들을 바라보는, 평화롭고 아늑한 한때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부드럽고 풍성한 칼라로 채색된 청순한 소녀나 풍만한 여인의 모습에서 어쩐지 인생의 불행과 어두운 면은 저 멀리 사라지고, 청명한 하늘의 양떼구름처럼 행복이 퐁퐁 솟아나올 것만 같다.

 

01_주제는 모든 현실 불행 잊게 하는 행복하고 화려한 것들

프랑스의 대표적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는 빛나는 색채로 여성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특별했다. 인상파 중 세잔이 엄격하게 자연의 정취를 묘사했다면, 르누아르는 뛰어나게 화려한 색감과 터치로 여인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인상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겠다.

“왜 미술이 아름답지 않아야 하지? 세상에는 불쾌한 것들이 천지인데 말이지”라고 말한 르누아르는 평생에 걸쳐 여인의 아름다움과 빛과 색이 주는 황홀한 쾌감을 화폭에 담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들을 남긴 화가이다.

그의 작품의 주제는 아름다운 여인, 꽃, 귀여운 아이들, 화창한 야외 풍경, 파티 등, 생활고나 육체적인 아픔 같은 모든 현실의 불행을 잊게 하는 행복하고 화려한 것들이다.

 

02_13세부터 도자기 공방에서 견습생으로 도자기에 무늬 그려

그는 1841년 프랑스 리모주 출신으로 재단사인 아버지와 여직공인 어머니 사이에서 7 남매 중 여섯 번째로 태어났다. 전형적인 노동자 가정으로 형편이 어려웠던 가족은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해 1844년 파리로 이주했고, 르누아르는 그곳에서 학교에 들어갔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뛰어난 재능을 나타낸 르누아르는 13세부터는 도자기 공방에서 견습생으로 도자기에 무늬를 그리는 일과 조각 장식을 배우고, 17세부터는 돈을 벌기 위해 부채에 그림을 그리거나 장롱을 채색하는 일을 하였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산업화로 도자기에 그림을 찍어내는 기술이 발명되자 수많은 도자기 화가들이 일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르누아르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계속 그리기 위해 노력했고, 마침내 1862년 파리 에콜 데 보자르 입학시험에 합격, 샤를 글레예르의 공방에서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하게 되었다.

이 곳에 다니며 르누아르는 모네, 바지유, 피사로, 시슬리와 만나 함께 그림을 그리며 교류를 나누었다. 후에 미술사를 수놓을 이 젊고 혁신적인 화가들의 만남은 르누아르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여진다.

젊은 그들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바지유의 집에 얹혀 살며, 물감을 살 돈조차 어려운 가난함 속에서도 야외로 나가 빛과 색으로 물든 자연을 화폭에 담으며 꿈을 키웠다.

 

03_검정과 흰색의 대비, 빛의 밝음과 어두움이 주는 극적 효과

1870년부터 2년간 보불전쟁에 참전하고 돌아온 르누아르는 인상주의 동료화가들과 함께 1874년 첫 전시회를 열었다. 그러나 이 전시회에 출품되었던 모네의 ‘인상-해돋이’와 르누아르의 ‘특별관람석’ 등 새로운 시도의 인상파전은 사람들의 야유와 비평가들의 혹평 속에서 처참하게 막을 내렸다.

제1회 인상파전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모네가 풍경에서 빛의 변화를 표현했다면, 르누아르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표현하는 것에 흥미를 느껴 여인의 모습에서 빛의 변화를 추구했다.

이때 출품된 ‘특별관람석’은 오페라 극장 관람석에 앉아있는 여인과 남성을 클로즈업 시켜 그린 작품으로, 여인의 검정과 흰색 줄무늬 드레스가 흰 얼굴과 흰 장갑을 낀 손과 더불어 강렬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고, 뒤편에 앉아 쌍안경을 들고 있는 남성은 상대적으로 어둡게 표현되어 배경과도 같은 역할에 머무른다.

이 작품에서 르누아르는 검정과 흰색의 대비, 빛의 밝음과 어두움이 주는 극적인 효과를 노린 것 같다.

 

04_1876년 인상파 대표작 물랭 드 라 걀레트의 무도회 제작

계속되는 어려움 속에서도 르누아르는 1876년 인상파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물랭 드 라 걀레트의 무도회’를 제작했다. 1877년 제3회 인상주의 전에 출품했던 이 작품은 현장의 생생한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대형 캔바스를 아틀리에에서 몽마르트의 무도장까지 매일 가져가 그렸다고 한다.

작품에서 화가는 나뭇잎 사이로 비쳐진 빛이 사람들 몸에 드리우는 기법을 통해 빛과 그림자라는 주제를 잘 표현하고 있다. 전체적인 어두운 색조 속에 언뜻언뜻 비추는 빛은 마치 떠돌아다니는 반딧불마냥 반짝이며 인물들에게 생명력을 부여한다.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표정과 포즈로 살아 움직이는 듯 개별성을 지니고, 일요일 오후의 떠들썩하고 즐거운 파티 분위기가 화면 전체에 퍼져 나간다. 웃음과 샴페인, 음악과 댄스가 어우러지고 자유와 낭만이 울려 퍼지는 일상의 한때는 그렇게 화면에 캡쳐되어 100년이 넘도록 우리에게 행복감을 나눠준다.

같은 해에 그려진 ‘그네’ 역시 인상파의 전형적인 기법으로 그려졌다. 여인의 얼굴과 드레스, 신사의 뒷모습에 비추는 빛과 어느 것이 빛이고 어느 것이 꽃인지 모호할 정도로 들판에 펼쳐진 빛과 꽃들의 향연, 나무 그림자 사이로 일렁이며 내려앉은 햇살, 말을 건네는 신사와 여인의 달콤하고 간질간질한 순간이 밝은 햇살아래 수줍게 얼굴을 붉히는 여인의 모습에서 느껴진다. 햇살 가득한 르누아르의 화실 정원에서 펼쳐지는 일상의 모습이 따스하게 다가온다.

 

05_모네가 노란색의 화가라면 붉은 색은 르누아르의 시크니처

제1회 인상파전 후에 아무도 작품을 사주지 않았고 계속되는 생활고로 어려운 때 다행히 그에게 빛을 준 이는 모네와 시슬리를 후원하던 화상 뒤랑-루엘이었다. 그를 통해 여러 화상들을 만나고 후원자들을 조직해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1877년 ‘잔느 사마리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그 당시 유명한 여배우였던 그녀의 초상화를 그려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초상화 의뢰도 여럿 받게 되어 돈을 벌게 되었다.

모네가 노란색의 화가라면 붉은 색은 르누아르의 시크니처라 볼 수 있겠는데 이 ‘잔느 사마리’라는 작품은 르누아르가 어떻게 붉은 색을 조화롭게 잘 다루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름다운 여인이 한 손을 턱에 괴고 있다. 사연을 간직한 듯 우수에 찬 눈빛과 촉촉히 젖은 입술은 보는 이에게 무언가를 호소하는 듯 묘하게 관능적이고,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듯 매력적이다.

뺨에 얹은 홍조와 붉은 입술, 어깨 위의 붉은 꽃, 여인의 밝은 핑크색의 살결, 이 모든 것을 감싼 배경의 좀더 짙은 붉은 색은 모두 한 톤의 색깔이면서도 그 오묘한 색감의 차이로 여인에게 생동감과 생명력을 부여한다. 그리고 보색인 그린 칼라의 드레스로 나머지 붉은 색은 더욱 돋보이게 되는데, 이쯤 되면 가히 색채의 마술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06_순수하고 청초한 소녀들 그리며 인생의 가장 이상적인 즐거움을

르누아르는 긴 세월에 걸쳐 ‘책 읽는 소녀, 부채를 든 소녀, 밀집모자를 쓴 소녀, 피아노 치는 소녀들, 두 소녀의 초상’ 등 많은 소녀상들을 그렸다. 순수하고 청초한 소녀들의 모습을 그리며 그는 인생의 가장 이상적인 즐거움을 느꼈을 것 같다.

1880년 제작된 ‘이렌느 깡 단베르 양의 초상’은 파란 리본을 머리에 달고 먼 곳을 향해 살며시 미소 짓는 소녀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따스한 햇살 아래서 행복한 한때를 보내고 있는 듯한 소녀의 모습은 우리에게 어린 날의 부드럽고 따스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하얀 얼굴과 풍성한 붉은 머리카락의 대비, 배경의 짙은 녹색 수풀과 흰 드레스의 콘트라스트가 가운데 자리 잡은 인물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특히 머리칼 한 올 한 올이 빛을 머금고 있는 듯한 섬세한 터치는 인물의 생동감을 높여주는데, 마치 얌전하게 앉아있던 소녀가 언제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밝은 햇살을 향해 웃음 지으며 기지개를 펼 것만 같다.

또한 ‘두 자매’는 비슷한 시기인 1881년의 작품으로 화려한 색상과 자유분방한 붓 터치로 마음껏 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다. 화려한 모자와 드레스를 갖추어 입고 센강 옆 레스토랑 테라스에 앉아있는 두 자매의 모습은 전형적인 브루주아의 유복한 모습이다.

찬란한 태양아래 만발한 꽃들에 둘러싸인 정원과 테이블 앞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소녀, 그리고 그 옆에 서서 푸른 눈을 빛내며 우리를 바라보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르누아르 특유의 화사한 색채로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07_’샤르팡티에 부인과 자녀들의 초상은 그에게 부와 명성을

르누아르는 1878년과 1879년에 살롱에 작품을 출품해 심사를 통과하였다. 특히 ‘샤르팡티에 부인과 자녀들의 초상’은 커다란 찬사를 받고, 이때부터 그려진 작품들은 세계적으로 뻗어나가 그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주었다.

1880년 르누아르는 평생의 반려이자 뮤즈인 운명적 여인, 아리네 샬리고트를 만나게 된다. 39살의 화가와 19세 연하인 20세 풋풋한 여인의 결합이었다.

함께 살며 아들도 낳으며 사랑을 키워나간 그들은 10년 뒤인 1890년 혼인신고를 하고 아들도 호적에 올리며 결혼을 하였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들, 그리고 세계적인 명성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며 르누아르는 여행을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더욱 발전시키게 된다.

이 시기에 그려진 ‘뱃놀이 일행의 오찬’ (1880~1881)은 배를 타러 온 사람들이 샤투의 시아르 섬의 명소 푸르네즈 레스토랑 테라스에 모여 음식을 먹으며 떠들썩하게 놀고 있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물랭 드 라 갈레트’와 맞먹는 크기인 130cm*173cm 의 대작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후에 아내가 된 아리네 샬리고트와 배우, 화가 등 그의 친구들이다. 젊은이들이 모여 야외에서 여가를 즐기는 모습에 인생의 기쁨과 행복이 모두 담겨 있는 듯, 이 찬란한 순간은 화가의 붓끝에서 반짝인다.

화가는 멀리 보이는 풍경은 단순화시키고 각 인물의 특징을 섬세한 묘사로 살렸는데, 각기 다른 표정과 자세로 현장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또한 짙은 색과 흰색계열의 밝은 색의 색상대비로 보다 밝고 뚜렷한 화면을 창조하였다.

 

08_인상파 한계성… 고전주의의 명확한 선과 견고성에서 답 발견

1881년 알제리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르누아르는 라파엘과 앵그르의 작품에 매료되었다. 아마도 그가 느끼던 인상파가 가지는 한계성에 대한 답을 고전주의의 명확한 선과 견고성에서 발견한 것 같다.

그는 인상파적인 자신의 작품에 좀더 견고한 형태를 가미해 새로운 작품세계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1883년 그린 ‘도시의 무도회’는 이러한 작품의 변화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이 작품은 ‘시골의 무도회’와 쌍으로 주문 제작된 작품인데, 화면 가운데 커다랗게 자리 잡은 커플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시골의 무도회’가 활기차고 정겨운 서민들의 무도회라면 ‘도시의 무도회’는 상류사회의 고급지고 세련된 무도회이다.

르누아르는 색감과 붓터치, 인물들의 자세를 통해 이러한 차이를 잘 드러내고 있다. ‘도시의 무도회’를 보면 배경의 은은한 파스텔 톤이 두 주인공을 감싸고 있고, 신사가 입은 검정 양복과 여인의 흰색 드레스가 강렬한 대비를 이루어 도시의 우아하고 기품 있는 무도회의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인물들은 명확한 선으로 표현되고 인상파의 거친 터치는 여인의 드레스 안에 살짝 숨겨져 그의 새로운 화풍을 느낄 수 있다.

 

09_인상주의 화가 중 유일하게 여성 누드에 관심 가져

인상주의 화가 중 유일하게 여성의 누드에 관심을 가졌다고 알려진 르누아르. 그는 “나는 누드를 사랑한다. 누드에는 무한한 색 변화가 있다. 나는 화폭 위의 살결이 살아서 진동하는 듯한 효과를 낼 때까지 계속 붓을 움직인다.”라고 말했다.

그의 누드화를 보면 붉은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데, 그는 건강한 살결의 색을 표현하기 위해 “나는 붉은 색이 종처럼 울려 퍼지도록 그리고 싶다.”며 붉은색이 가지는 무한한 가능성과 미묘한 차이에서 오는 효과를 집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붉은 빛이 도는 살색을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으로 ‘잠든 나부’ (1897)를 들 수가 있다.

소파에 기대 나른하게 눈을 감고 있는 여인은 그 풍만함과 신비로운 여체의 곡선으로 아름다운 관능미를 나타낸다. 마치 앵그르의 작품을 보는 듯 고전적인 이미지로 표현된 이 작품에서 우리는 시기적으로 변해가는 르누아르의 화풍을 읽을 수 있다.

1879년 그려진 ‘푸른 옷을 걸친 나부’에서 보여지는 흐릿한 윤곽선, 거친 붓 터치로 자연광 속에 드러나는 빛을 잡아내던 인상파의 기법은 붉은색 모노톤의 안락함과 세밀하고 부드러운 붓 터치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또한 그는 다양한 방식으로 목욕하는 여인들에 관한 작품들도 많이 남겼는데 ‘목욕하는 여인들’ (1887), ‘긴 머리의 목욕하는 여인’ (1895), ‘숲속의 목욕하는 여인들’ (1897)은 여체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들어낸 아름다운 작품들이다.

 

10_이 색조에서 저 색조로 변화시켜가는 색조의 명쾌한 저울질

에밀 졸라는 “르누아르는 무엇보다도 사람을 그리는 화가이다. 그의 주 무기는, 놀라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이 색조에서 저 색조로 변화시켜가는 색조의 명쾌한 저울질에 있다. 마치 벨라스케스의 강렬한 태양빛에 비친 루벤스의 작품을 보고있는 것 같다”고 말하였다.

나비파 화가 모리스 드니 역시 “이상주의자? 자연주의자? 뭐가 되도 좋다. 그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모든 자연과 환영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눈에 비친 즐거움을 매개로, 그는 여인과 꽃으로 만든 멋진 부케를 창조해냈다”고 찬양했다.

르누아르는 1900년 프랑스 최고의 영예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고, 63세이던 1904년 ‘살아있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화가’라는 칭호를 얻었다. 말년에는 심한 관절염으로 고생했으나, 손가락이 변형되고 고통이 심해 붓을 잡을 수 없게 되자 붓을 팔에다 고정시키고 무릎에 팔레트를 놓고 작업을 계속했을 정도로 그의 그림에 대한 열정은 끝이 없었다.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생전에 5000여점의 작품을 남긴 화가 르누아르. 인상주의에서 시작해 인상주의를 뛰어넘은, 회화의 가장 위대한 시인 르누아르에게 헷세의 ‘봄’을 바친다.

 

어스름한 동굴 속에서 나 오랫동안 꿈꾸었네,

너의 나무들과 푸른 바람,

 

너의 향기와 새들의 노래를.

이제 너는 광채를 띠고, 화려함으로 열려,

빛을 듬뿍 받으면서 마치 기적인양 내 앞에 있네.

 

너는 나를 다시 알아보고, 부드럽게 유혹하니,

너의 복된 모습 앞에서

나의 온몸이 떨리는구나.

 

* 다음은 타이티의 전설 고갱과 만나겠습니다.

 

글 / 미셸 유 (글벗세움뭄학회 회원·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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