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의재판

침팬지우리 같은 감방이었지만 오후가 되면 감방 벽 높게 자리잡은 손바닥만한 철창으로 햇빛이 짧게 스며들었다. 햇빛은 서너 줄기로 갈라져 감방 바닥으로 기어들었다. 그 햇빛 줄기를 가슴으로 받으려고 나는 자리를 움직이곤 했다.

나는 교도소에 들어와 이틀간은 거의 먹지 못했다. 까칠한 깡보리밥과 엄청나게 짠 무말랭이 무침이나 시꺼먼 무장아찌와 심심하고 희멀건 된장국은 입에 맞지 않았다. 서너 숟갈 뜨다가 마는 내 밥을 명환이는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그러면서 명환이 그랬다. “고맙다. 근디 니도 쫌 있으면 없어서 못 묵을 꺼다. 첨엔 다 그런다. 나가 알제.”

그랬다. 나는 감방에 들어 온지 사흘째 되는 아침식사부터 밥그릇을 다 비웠다. 나는 서서히 징역살이에 젖어 들고 있었다. 명환이는 프로였다. 감방에 신참이 들어오면 신고식으로 한두 대 쥐어박으며 한두 마디 건네고 초범인지 전과자인지 금방 알았다. 초범이라고 판단되면 식사할 때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명환이 말대로 초범은 백발백중 두 세끼는 관식을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명환이 그걸 자연스럽게 먹었다.

감방의 하루는 길기만 했다. 기상나팔소리에 일어나 인원점검을 받고, 삼시세끼 취사담당들의 “식사준비!”라는 반가운 외침을 기다리고, 호식이가 나눠주는 밥그릇을 받아 빙 둘러앉아 게걸스레 식사를 하고, 눈치껏 감시통의 사각지대를 찾아서 기대거나 눕거나 뒹굴다가 취침나팔소리에 잠을 잤다. 먹고 싸고 자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는 미결수들의 하루는 시간이 주는 망상과 분노와 한숨의 고문이었다.

그날은 바깥세상 기온이 올라갔는지 감방도 따스했다. 전날 밤에 들어온 2명의 신참도 식판을 밟고 서있었지만 내가 동료들에게 때리지 말라고 했다. 명환이가 아무 말없이 내 손을 꽉 잡아주었다.

아침을 먹고 신참들의 신상털기가 있은 후 모의재판이 벌어졌다. 모의재판은 시간땜질하기 좋은 재판놀이였다. 뭔가 터질 것처럼 답답하고 불안하고 두렵고 서글픈 죄수들의 그냥 그런, 설명하기 아픈 자신의 존재 확인 같은 것이었다. 아무나 묻고, 아무나 대답하고, 아무나 말하는 논고, 변론, 언도가 제 맘대로 떠돌아다닌다. 그들은 자신이 판검사나 되는 듯 단정적이었다.

 

“니 죄명이 뭐냐?“

“잘 모르겠다.”

“너 사회에서 뭔 일했냐?”

“호텔에서 일했다.”

“호텔? 쓰벌, 거기 돈 많은 새끼들 지랄하는 데지? 펜대 굴렸냐?”

“룸 서비스 담당했다.”

“근데 왜 달려왔냐? 손님 지갑 슬쩍 했구나?”

“아니다. 여자 소개해줬다고 잡혀왔다.”

“고급 똥치 소개해줬구나? 새끼야, 내가 안다고. 그게 윤락행위방지법위반 이야. 너 양쪽에서 삥땅 뜯었지? 똥치한테서도 뜯었지?”

“걔가 수고했다고 준거다.”

“뻥치지마 새끼야. 니는 여자 델꼬 몰래 장사한 거야. 몇 명이냐? 니는 야매 포주야. 니는 징역1년이다.”

“니 새끼는 손님 안내하라는 일은 안하고 어먼 짓을 했으니 좆 된거야.”

“그게 뭔데?”

“무허가로 돈 받고 몸 팔면 법에 걸리는 거라고. 돈 받고 소개해준 새끼도 달려.”

“웃기네, 내 몸뚱이 갖고 내가 돈 버는데 그게 왜 죄가 되냐?”

“굶어 죽게 생겼승께 몸땡이 폴은건디, 진짜 좆같은 법이네이.”

 

제법 나이 들어 보이는 신참은 자신의 신상털기를 우물우물했다. 박종길이는 이틀을 굶어 억수로 배가 고파 설렁탕 한 그릇, 수육 한 접시, 소주 2병 시켜먹고 도망치다가 주인한테 붙잡히자 주인 팔뚝에 칼침을 놓고 잡혀와 스스로 자긴 징역 5년이 확실하다는 별2개다. 종길이가 신참에게 욕을 했다.

 

“야, 너! 속여봐야 공소장 날아오면 다 들통나. 그냥 불어!”

“죄명이 뭐여?”

“폭행죄다.”

“사회에서 뭐했는데?”

“어려운 사람한테 돈 빌려주는 일 했다”

“이 새끼! 사채업자구나. 어려운 사람한테 돈 빌려주는 거 좋아하네. 이자 수십 배 받아먹었지? 안 봐도 삼천리야. 넌 씨팔놈이야. 뒤지게 맞아야 돼. 이런 씨팔놈은 무기 때려야 돼!”

“비싼 이자 못 낸다고 작살낸 거지? 죽었어? 너 별 있어?”

“전치 5주 나왔어. 별 없어”

“이런 새끼는 사식만 시켜서 묵는다고. 개새끼! 넌 2년이다!”

 

감방동료들은 내 사건에도 말들이 많았다. 특히 전과자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징역 1년이 확실해.”

“개소리 치네. 초범이라 좀 봐준다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다.”

“웃기네, 특수야, 특수. 봐주고 싶어도 시계 턴 새끼땜에 못 봐줘.”

“그러게 작살만 내지 왜 시계를 터냐? 빙신!”

“1년 좋아하네. 좆도 모르면 째져. 강짜 붙으면 기본 5년이야.”

“좆까네, 후진 시계 하나에 5년이라고? 것도 주섰다잖여?”

“뺏고 나서 오리발 아냐?”

“니기미, 검사 새끼가 뺏었다잖어. 검사 새끼가 뺏었다면 뺏은 거라고.”

 

그들은 자기 판단이 맞다면서 싸울 듯 목소리가 커졌다. 감시통으로 감방을 들여다본 교도관이 듣고 있었던 듯 소리질렀다. “재판하냐? 지랄들 하네. 그만해!” 그제서야 입들을 다물었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색다른 세상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이 두려웠다.

 

 

왜들 이러시나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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