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기네 가족

깜짝 놀랐습니다. 오리 한 마리가 갑자기 날개를 활짝 펴고 입을 쩍 벌린 채 있는 힘을 다해 저한테 달려들었기 때문입니다. 녀석이 어찌나 입을 크게 벌렸던지 빨간 혀는 물론, 목구멍까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였습니다. 저도 모르게 주춤하고 있는데 옆에서 또 한 마리가 똑같은 표정, 똑같은 포즈로 저한테 달려들었습니다. 이런… 제가 아무리 찌질하다 해도 오리까지 만만하게 보고 달려들다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테러는(?) 알고 보니 저만 당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레인코브내셔널팍 트레킹코스 초입을 지나다 보면 예쁜 아기오리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림잡아 열 마리가 조금 넘을 듯싶은 아기오리들은 어린 시절 초등학교 앞에서 팔던 아기병아리만큼의 크기입니다. 아장아장 뒤뚱뒤뚱 걷는 게 너무너무 예뻐서 그곳을 지나던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녀석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곤 합니다.

그날도 저는 녀석들의 귀엽고 앙증맞은 모습에 넋을 놓고 있었던 건데 녀석들의 엄마 아빠는 혹시라도 지 새끼들이 해코지라도 당할까 싶어 죽을(?) 힘을 다해 저한테 겁을(?) 줬던 겁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한참을 웃었지만 사람이나 오리나 부모의 마음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기오리들은 그리 빨리 성장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도 녀석들의 몸집에는 변화가 거의 없고 여전히 작고 귀여운 모습으로 엄마 아빠 형제자매들과 물가 산책을 즐기곤 합니다.

“쟤네들, 새끼 데리고 오면 정말 예쁠 것 같지?” 얼마 전 우리집 둘기가 눈에 띄게 몸집이 뚱뚱해졌길래 아무래도 알을 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와 둘이 나눈 대화입니다. 남친 아니 남편인 둘짝이가 우리집 자카란다 작은 가지를 입에 물고 어디론가로 부지런히 나르는 모습도 그랬습니다. 밥 먹을 때면 늘 함께 오던 두 녀석이 한 놈씩 따로따로 오기 시작했을 때는 아무래도 교대로 알을 품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난 후 둘기 둘짝이 옆에 낯선 비둘기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얼핏 보기에 덩치가 거의 비슷해 처음에는 ‘저놈들이 어디서 친구들을 데리고 왔나 보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두 놈씩 보이기 시작한 새로운 얼굴은 어느새 여섯 마리가 됐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놈들은 친구가 아닌 둘기 둘짝이가 낳은 새끼들이었습니다. 걔네들이 데리고 오는 아기비둘기들도 아기오리들처럼 귀엽고 앙증맞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비둘기는 태어난 지 6주만 되면 엄마 아빠보다 조금 작기는 하지만 덩치가 거의 비슷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녀석들에게서 아기오리들 같이 귀엽고 앙증맞은 모습은 애초에 기대할 수 없었던 거였습니다.

둘기 둘짝이 새끼들은 둘은 엄마를 닮았고 또 다른 둘은 아빠를 쏙 빼 닮았습니다. 나머지 둘도 거의 지 아빠에 가깝습니다. 이 4남 2녀가 지 엄마 아빠를 따라 외가에(?) 밥을 먹으러 오면 우리집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됩니다. 녀석들을 향한 모이의 양도 많아졌지만 여덟 놈이 여기저기 싸놓는 똥은 그야말로 테러 수준에 가깝습니다.

최근 들어 우리는 녀석들에게 밥 주는 패턴을 바꿨습니다. 한동안은 녀석들이 올 때마다 밥을 줬는데 이제는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만 주기로 한 겁니다. 이놈들이 우리한테만 의지해서 비둘기 본연의 의무를(?) 게을리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벌레도 잡아먹고 이런저런 야생성도 지키라는 의미입니다. 외가에서는 아침 저녁 안부인사 겸 간식 정도만 챙겨 먹으라는 겁니다. 요즘은 녀석들도 눈치를 깠는지(?) 엄마 아빠가 교대로 아이들을 한두 놈씩만 데리고 옵니다.

요즘도 둘기와 둘짝이는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합니다. 밥을 다 먹고 나서는 열심히 뽀뽀도 하고 가끔은 그 다음(?)단계도 시도하곤 합니다. “저놈들 저러다가 또 새끼 생기는 거 아니야? 아니, 이놈들이 박씨를 물어오든지 아니면 로또 1등번호를 물어오든지 해야지 맨날 똥만…” 하면서도 살뜰하게 새끼들을 챙기는 녀석들의 모습에 또 다른 우리네 인생을 생각해보게 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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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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