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아이들 앞에서 한번도 불러본 적도, 들려준 적도 없는 애국가를 호주에서 태어나 쭉 자라온 두 딸아이들이 부른다.

오랜 타지생활을 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아이들의 애국가에 뭉클하고 찡한 마음과 동시에 아이들이 애국가를 저리도 또렷하게 부르는 게 신기해 아이들에게 물었다.

“시연아, 소민아, 지금 너희가 부르는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 알아?”

“네! 애국가예요. 한국학교에서 비디오도 보고 같이 따라 불렀어요.”

지난 3년 동안의 다사다난했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신념을 잃지 않고 한국학교에 열심히 보낸 보람과 뿌듯함을 몸서리치게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사실 나에게는 호주에서 대학원과 회사생활을 하는 동안 영어와 한국어 이중언어를 스스럼없이 하는 반면 한국어를 포기(?)하고 영어만 모국어로 사용하는 1.5세와 2세들을 접하게 되면서 결혼과 출산 이전부터 내 아이들은 호주에서 태어나고 자라나는 한국인 2세라 할지라도 한국말을 꼭 해야 한다는 나름의 확실한 신념과 강한 의지가 있었다.

그러한 확고한 신념과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음에도 두 아이들을 3년동안 한국학교에 등 하교를 시키면서 여러 번의 피치 못할 고난과 역경의 시간들이 있었다. (사실 아직까지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첫째가 만 6세가 되던 3년전 처음 호주한국학교를 시작할 때 새로운 선생님, 친구들, 환경에 바짝 긴장해서 내 바지가랑이를 붙잡고 자기와 같이 있어달라고 졸라댔던 아이의 모습이 지금도 또렷이 기억된다.

집에 다시 돌아가지도, 교실에 혼자 들어가지도 않겠다는 아이와 혼자 고군분투하는 나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구세주 한 분이 다가와 아이의 손을 잡고 같이 교실 안으로 들어가주셨다.

그렇게 첫째 딸아이는 호주한국학교 교장선생님과 남다른(?) 인연이 시작되었고 점차 새로운 환경에 천천히 적응하기 시작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한국학교 수업을 받기 시작할 때 즈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권유를 받게 됐다.

“이번에 곧 치르게 될 한국어능력시험에 시연이가 응시했으면 하는데 어머님 생각은 어떠세요?”

한국학교를 행복하게 진심으로 즐기며 다니는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한국어능력시험이라니…  정말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의 의견 또한 중요해 나는 선생님의 의견과 제안을 아이와 같이 상의했고 내 걱정과는 달리 아이는 선뜻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담임선생님의 지지와 도움으로 한국어능력시험 준비를 하게 됐고 딸아이는 한국어능력시험 1급에 합격했으며 이렇게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한국학교와 선생님들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점차 쌓아졌다.

교장선생님과 담임선생님들의 많은 도움으로 첫째 아이가 잘 적응할 때 즈음 둘째 아이도 언니와 함께 한국학교를 시작하게 됐고 1년 동안 언니와 함께 매주 토요일 오전 출석도장을 찍었기에 무리 없이 바로 적응을 잘할 거라는 내 예상을 뒤엎고 첫째 아이보다 그 두세 배 이상으로 적응하는데 힘든 시간이 걸렸다.

선생님과 다른 아이들에게 행여 피해가 갈까 싶어 한국학교 수업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들었지만 그런 나에게 오히려 같이 공감해주고 힘이 돼주는 말씀을 해주시는 교장선생님과 담임선생님 덕분에 지금은 매주 토요일 한국학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두 아이들이다.

한국학교에서 아이들이 수업시간 때 경험하는 줄다리기, 가마타기와 같은 한국전통놀이와 3.1절, 임진왜란과 같은 한국역사 그리고 한국전통의상 한복 입기와 같은 한국문화체험을 통해 우리 부부는 두 딸아이들과 좀 더 끈끈하고 돈독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고 보다 다양한 대화소재를 가질 수 있었다.

단지 한국어를 읽고 쓸 수 있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부모의 나라이자 아이들의 뿌리인 한국에 대한 좀 더 나은 이해와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호주한국학교의 도움 없이는 가능하기 힘든 일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엄마, 저는 K-Pop 이 좋아요.”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는 영어를 잘 모르시니까 우리가 한국말을 하고 쓸 수 있어야 해요.”

이렇게 말해주는 딸아이들을 보면서 먼 타국에서 살고 있지만 한국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호주한국학교 선생님들께 감사한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다.

 

 

글 / 김태언 (호주한국학교 박시연·박소민 학생 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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