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감자

하늘은 검은 먹구름이더니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한다. 채반에 썰어 놓은 돼지감자가 걱정이다. 6개월전 암 수술한 친구가 소화가 안되어 속이 더부룩하다고 해서 돼지감자 말린 것을 갖다 주었다. 친구는 차를 만들어 마신다면서 숭늉처럼 구수하고 부담감이 없다고 한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그녀 말에 마음이 급해진다. 아무래도 올케한테 건조기를 빌려와야 될 것 같다.

두 해 전에 어느 지인이 돼지감자 씨앗을 주었다. 남편의 지병인 당뇨 치료에 좋다고 하면서, 냉장고에서 한 겨울을 보내고 봄에 심으라고 했다. 뽕나무 줄기마디가 도톰하게 올라온 이른 봄에 남편은 땅을 깊숙이 파고 감자 종자를 심었다.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없는 나였지만 왠지 깊이 심는 것 같았다. 늦게 심은 상추와 깻잎이 하루가 다르게 무성해지는데, 돼지감자는 집 나간 고양이처럼 소식이 없었다. 남편은 작은 삽으로 땅을 쑤셔보며 머리를 갸우뚱 했다. 뜨거운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여름이 와도 돼지감자는 깜깜이었다.

이듬해 봄에 채소를 심기 위해 뒤뜰에서 흙을 고르던 남편이 빨리 나오라고 한다. 베란다에 나가니 남편의 손짓이 바쁘다. 여기저기 올라온 초록색 순이 보였다. 일년 동안 깜깜한 땅속에 있었으니 얼마나 햇빛이 그리웠을까? 어둠을 뚫고 힘들게 올라온 새 순을 우린 자주 들여다보며 인사를 아끼지 않았다.

어깨 위로 부드러운 봄 햇살이 내려앉고 비가 온 땅은 촉촉했다. 며칠 사이에 잎사귀가 활짝 열렸다. 줄기가 굵어지고 어른 키만큼 자라더니 노란 꽃이 피었다. 크기만 다를 뿐 시골 장독대 옆에 있던 해바라기 꽃을 보는 것 같았다.

서리가 내리자 잎은 다 떨어지고 옷 벗은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그 해 가을, 남편이 울타리 밑에 엎드려 뭔가 하고 있다. 모자는 반쯤 벗겨지고 작업복 바지 엉덩이는 흙 범벅이다. 가까이 다가오는 나를 보더니 옆에 있는 통에서 돼지감자 하나를 꺼내 보인다.

손주 주먹 만한 돼지감자가 흙을 잔뜩 뒤집어쓰고 있다. 나는 못생긴 돼지감자보다는 남편의 얼굴을 보고 픽 웃음이 나왔다. 마치 아이들이 상장 들고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은 얼굴이다. 생강보다 더 울퉁불퉁한 돼지감자를 버켓에 담아보니 두 통하고 반이나 되었다.

하루 종일 감자와 씨름한 남편은 허리를 펴지 못하면서도 연신 “와, 와” 감탄했다. 과일 열매는 수확해보았지만 땅속 열매는 처음이었다. 가을 수확기에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농부의 심정이 되어 크기 별로 나눠놓았다.

돼지감자의 원산지는 북아메리카이다. 영어 이름은 예루살렘 아티초크 (Jerusa;em Artichoke)라고 한다. 시골에서는 이 맛도 저 맛도 아니어서 ‘뚱딴지’라 부르고, 주로 하천에서 자라서 사람은 못 먹고 돼지들이나 먹는다 하여 ‘돼지감자’ 라고도 부른다.

주로 말려서 차로 사용하고 피클, 장아찌로 만들어 먹는다. 당뇨에 특히 좋고 변비와 면역력 강화에 좋다고 한다. 우리만 먹기에는 수확한 양이 많다. “당신 친구 남편이 인슐린 주사 맞는다고 들었는데 그 친구하고 나누면 되겠네.” 주는 것 좋아하는 남편의 말이다. “그래야겠어요” 맞장구를 치고 생각해보니 최근에 그녀에게 소식이 없었다.

웬일이지? 휴대 을 들었다. 왜 전화했느냐고 묻는 친구 목소리가 냉랭했다. “무슨 일 있니?” 차가운 기운이 전해왔다. 내가 무슨 실수를 했나? 생각만 맴돌 뿐 답이 나오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서 담은 피클 한 병을 들고 그녀 집을 방문했다. 분위기는 서먹했지만 그녀 남편이 반겨주었다. 유방암 수술을 했다고 남편이 조심스레 말한다.

그녀는 눈을 감고 소파에 앉아 있다. 염색을 한지 오래된 머리는 가르마 부분이 하얀색 검은색으로 길이 나 있다. 통통하던 얼굴은 광대뼈 밑으로 그늘이 졌고 눈자위는 움푹 들어갔다. 그녀가 많이 늙어 보여 마음이 먹먹했다. 차를 준비한다고 남편이 자리를 뜬 사이에 나는 그녀 옆으로 가서 가만히 두 손을 잡았다. “힘들었겠네 내게 알리지.” 그녀는 한숨을 쉬고 눈을 힘겹게 뜬다.

수술하기 며칠 전에 우연히 한인식품점에서 나를 만났을 때에 수술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어찌 내가 못 들었을까? 그녀는 내가 알고도 연락이 없는 줄 알고 잔뜩 구름이 끼어 있다. 다행히 암은 초기에 발견해서 수술하고 회복도 좋은데, 영국에 사는 아들이 갑자기 이혼소식을 알려왔단다.

벌에 쏘인 것처럼 아픈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사십이 넘은 아들이 자식도 없이 혼자 된 것에 가슴이 쓰리다고 한다. 그녀를 살짝 안았다. 등줄기의 앙상한 뼈가 내 팔에 닿는 순간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이민 초기에 영어공부반에서 그녀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나보다 한 살 어리다. 정확히 말하면 8개월 차이다. 처음엔 언니라고 부르더니 언니는 너무 많다면서 친구하자고 했다. 나도 그녀의 친구됨이 싫지 않았다. 영어도 잘하고, 그림 그리는 게 취미인 그녀의 고상함이 나는 부러웠다.

그녀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처럼 밝고 마음의 창이 열려 있는 아름다운 여자이다. 공부가 끝나면 가끔 자기 집에 몇 명씩을 초대하곤 했다. 그녀가 그린 그림들이 흰색의 벽면과 조화가 되어 집이 세련되게 보였다. 그녀는 성격도 깔끔하고 사는 것도 깨끗했다.

비가 많이 온다. 빌려온 건조기에 돼지감자를 말린다. 한번 볶아서 유리병에 담아 친구 몫을 만들어놓고, 뜨거운 물을 부어서 차를 만들어 마신다. 숭늉처럼 구수하면서 은은 하다. 어린 시절에 숭늉이 최고라며 엄마가 떠다 준 그 맛이다. 할머니가 된 지금도 숭늉 맛은 차이가 없고 변함이 없다. 하얀 서리가 머리에 내려앉고 굽어진 허리를 지팡이에 의지하는 노년이 되어도, 숭늉 맛의 우정으로 그녀 옆에 있으면 어떨까? 생각에 잠긴다.

 

 

글 / 이정순 (글무늬문학사랑회 회원)

 

 

 

Previous article봄의 칸타타
Next article큰 보람 느낀 카스 자원봉사활동… 취업까지 이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