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안 되는 일?

팔면 팔수록 손해였습니다. 매월 500페이지에서 600페이지는 기본이었고 어떨 때는 1000페이지에 육박할 정도의 엄청난 분량으로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베개로 써도 되겠다” 혹은 “무기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겠다”며 우리 스스로도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정말 대단한 사이즈였습니다.

그런 걸 많게는 매월 10만부씩이나 찍어냈습니다. 게다가 거의 빠짐 없이 이런저런 ‘부록’이라는 타이틀의 소책자들과 화장품, 생필품 등까지 선물로 주어졌으니 구독자들은 몇 천원을 주고 여성지 한 권을 사도 충분히 남는(?) 장사였습니다. 반면, 그것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제작원가의 5분의 1도 안 되는 여성지는 팔리면 팔릴수록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게다가 여성지들은 그 두꺼운 분량을 거의 올 아트 올 칼라로 제작했기 때문에 엄청난 비용을 들이고 있었는데 편집, 디자인, 광고, 제작, 관리 등 300명 가까운 전문인력을 보유한 ‘여원’은 자타공인 ‘여성지 왕국’이었습니다. 특히 여원은 여원과 함께 신부, 젊은엄마, 직장인, 차차차 등을 비롯한 6개의 매체를 발행하며 팔면 팔수록 손해인 대열의 맨 앞을 거침 없이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무지막지한 제작비를 편안하게 감수할 수 있었던 건 차고 넘치는 광고수입 때문이었습니다. 광고 한 면에 최소 100만원, 200만원 혹은 그 이상을 넘나들었고 당대 최고의 여성지 여원과 그 자매지들에 광고를 싣고 싶어하는 크고 작은 광고주들이 줄을 서 있는 상태였습니다.

광고국 사람들도 회사에서 좋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늘 정장을 쫙 빼 입고 한껏 멋을 부리며 법인카드를 자기(?)것처럼 쓰고 다녔습니다. 광고수주도 크고 작은 회사나 숍들을 찾아 다니며 직접 광고를 따오는 시스템이 아니라 대부분 제일기획, 엘지애드, 대홍기획 등 재벌그룹 계열 광고대행사들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물론, 광고국 사람들도 나름대로의 사정과 어려움이 있긴 했겠지만 야근할 때 끽해야 회사 앞 중국집에서 짜장면이나 짬뽕을 시켜 먹는 게 전부였던 편집국 사람들로서는 부럽기 짝이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편집국 기자들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쓰는 사람들’이라는 인식도 사실은 많이 억울한 부분이었습니다. 월급도 월급이려니와 취재비를 비롯해 패션촬영 진행비, 원고료 등 각종 비용지출이 있긴 했지만 솔직히 편집국이 좋은 책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광고도 따라 붙고 회사가 돈을 버는 거였는데 그 부분을 간과하고 있었던 겁니다.

책이 잘 팔리면 당연한 거고 어쩌다 판매부수가 좀 떨어지기라도 하면 영업국 사람들은 예외 없이 편집국에 화살을 돌렸습니다. 광고수주가 조금 낮아져도 광고국은 “편집이 어쩌구…” 하며 핑계 아닌 핑계를 대곤 했습니다. 온종일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니고 밤잠도 제대로 못 자며 기사를 쓰는 데도 편집국은 한 마디로 동네북 같은 존재였습니다.

정년퇴직 후에도 사진기자들은 개인 스튜디오를, 편집디자이너들은 개인 디자인사무실을 차릴 수 있었지만 기자들은 몇 푼 안 되는 외부 원고료에 의존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제가 후배기자들에게 여건이 되는 대로 사진을 배우고 편집디자인에도 관심을 가질 것을 강하게 주문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글을 잘 쓰는 건 기본, 사진도 잘 찍고 디자인 감각도 뛰어난 팔방미인(?) 기자의 모습을 강조했던 겁니다.

글쟁이 일을 시작한지 올해로 39년… 이곳 시드니는 한국과는 여러 가지로 많이 다른 상황이긴 하지만 저는 지금도 돈도 안 되는 일에 매일매일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그까짓 것 뭐, 대충하지’ 싶다가도 막상 일을 시작하면 그렇게 되질 않습니다. 문장 한 줄, 토씨 하나에도 생각과 고민을 거듭하며 어깨가 뻐근하고 허리가 결리고 눈도 아픈 일상의 반복입니다.

돈도 돈이지만 답답함까지 더해지고 있는 요즘 상황… 항상 온몸이 찌뿌둥하고 마음도 살짝 우울합니다. 코리아타운이 2주 후면 창간 22주년을 맞습니다. 지긋지긋한 이놈의 코로나19… 이젠 그만 우리 곁에서 멀리멀리 떠나가고 돈 되는 일, 기분 좋은 들이 많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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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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