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지난주 일요일 아침 아홉 시가 조금 넘은 시각… 진작에 눈은 떠졌지만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어서 침대 위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고 있는데 인터폰 벨 소리가 들렸습니다.

후다닥 일어나서 나가보니 노스라이드에 사는 선배지인 부부였습니다. 그분들은 자기네 텃밭에서 키운 거라며 길쭉길쭉한 가지 다섯 개와 큼지막한 호박 한 개를 들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농사를(?) 지어봐서 알지만 채소나 과일을 그렇게 키워내기가 쉽지 않은데 그걸 일부러 들고 온 겁니다.

꼭 그래서인 건 아니겠지만 전날 아내가 물고기 두 마리를 드린 게 그분들로서는 많이 고마웠던 모양입니다. 그 며칠 전, 딱 하루 날씨와 파도가 좋길래 세 부부가 모처럼 낚시를 갔습니다.

아직은 본격적인(?)시즌이 아니었는지 기대보다 많은 마리 수가 나오지는 않은 가운데 두 집은 그래도 몇 마리씩을 챙겨왔지만 공교롭게도 그분들만 빈 통으로 온 겁니다. 우리보다 먼저 자리를 뜬 그분들에게 다른 선배지인 부부는 그날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쥐어줬고 아내는 깨끗이 손질한 물고기 두 마리를 나중에 드렸던 겁니다.

별 것 아닐 수도 있겠지만 물고기 두 마리가 가지 다섯 개와 호박 한 개를 불러왔고 유독 정이 많은 우리 곁의 좋은 사람들은 뭐든 나눠 먹는 걸 참 좋아합니다. “토니 씨, 이거 내가 직접 담근 막걸리인데 테레사 씨랑 한번 마셔봐요.” 얼마 전에는 윈스턴힐즈에 사는 선배지인 부부가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를 일부러 달려와 우리에게 막걸리 감동을 주고 갔습니다.

“테레사! 우리, 지금 자기 집 쪽으로 가는 중인데 방울토마토랑 상추, 치커리 모종 좀 주고 가려고…. 지금 집에 있는 거지?” 이스트우드의 선배지인 부부는 특히 아내에게 이것저것 주는 걸 좋아합니다. 가끔씩은 본인이 직접 부친 전을 비롯한 맛있는 음식들, 텃밭에서 키운 야채들을 우리 집 문 앞에 놓고는 벨을 누른 후 그대로 가버리기도 합니다.

아내 또한 남한테 퍼주는(?) 데에는 둘째 가면 서러워할 사람입니다. 뭐가 됐든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는 이것저것 나눠주기를 정말 정말 즐겨 합니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구하기 쉽지 않은 한국 부추와 상추를 비롯한 쑥갓, 갓, 고추 등 각종 채소들이 우리 집에서 퍼져나간 게 참 많습니다. 심지어는 무화과나 비파 모종을 조심스럽게 키워내서 나눠주기도 합니다.

한국에서야 아파트에 살더라도 이웃들과 가깝고 친하게 지낼 수 있지만 이곳 이민생활에서는 그게 쉽지를 않습니다. 우리도 지금 이 집에서 13년째를 살고 있지만 이웃들과의 왕래는 거의 없는 편입니다. 처음 이사 왔을 때 우리와 이웃하고 있는 호주인, 중국인, 홍콩인 세 가족을 초대해 한국식 집들이를 했지만 다른 집들과는 그야말로 이웃이라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교류입니다. 어쩌다 마주치면 “하이!” 인사 정도만 나눌 뿐입니다.

바로 옆집에 살던 호주인 노부부는 갑자기 두 사람 모두 건강이 안 좋아져서 2년 전 집을 팔고 너싱홈으로 들어갔고, 홍콩에서 가져온 거라며 매콤달콤한 생강과자를 담 너머로 종종 건네주곤 하던 뒷집 홍콩인 미셸도 친정엄마 케어 때문에 엄마네 집으로 옮겨갔습니다. 지금은 그 자리에 들어온, 이 동네에서 유일한 한국인 이웃이 상냥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곤 합니다. “미나리 좀 드릴까요?”에 이어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는 예쁜 컵 받침 세트를 선물로 주기도 했습니다.

뭔가를 서로 주고 받고 살뜰히 챙기는 것… 정 많은 한국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덕목일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가 가끔씩은 시드니를 한 시간쯤 벗어난 시골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가도 이내 접어버리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이 그리워지는 나이… 이제 코로나19가 더 잠잠해지고 함께 모일 수 있는 범위가 커지면 우리 집 뒷마당에서 좋은 사람들과의 기분 좋은 삼겹살 파티를 한번 가져야겠습니다. 좋은 사람들, 고마운 사람들과의 자리는 언제 가져도 좋고 그분들 ‘덕분에’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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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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