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마리?!

그럴 때 보면 우리도 영락없는 할머니 할아버지입니다. 아이들이 도착할 시간이 되면 우리는 늘 거실에서 바깥쪽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이내 딸아이네 차가 도착하고 에이든은 앞마당에서 할머니와 뜨거운 조우를 합니다. 할머니한테 와락 안긴 녀석은 뭐가 그리 좋은지 재잘재잘을 멈추지 않습니다. 아빠 품에 안겨 차에서 내린 에밀리는 목을 쭉 빼고 그런 오빠와 할머니의 반가운 만남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집안으로 들어선 녀석들은 지들 놀이방으로 쏜살같이 달려갑니다. “어? 하부지, 이거 뭐야?” 에이든 입이 함박만해졌습니다. 설 명절 선물로 준비해둔 조그마한 장난감을 발견한 겁니다. “이건 뽐이꺼네?” 녀석은 옆에 나란히 놓여 있던 인형을 집어 들어 에밀리에게 건네줍니다.

조용하던 집안이 시끌벅적해졌습니다. 남들은 다하는 세배… 우리 집에는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의상을 갖춰 입고 앉아 세배를 받으면 왠지 더 늙어질(?) 것 같아서…. 딸아이 결혼식장에서도 별 의미 없는 ‘신부부모에게 큰절’ 대신 가벼운 ‘꾸벅’ 인사만을 시킨, 조금은 별난 우리였습니다.

뒷마당 데크로 자리를 옮긴 우리 일곱 식구는 떡국과 함께 삼겹살 파티를 시작했습니다. 에밀리와 에이든 두 녀석은 지네 집보다 조금 더 넓은 우리 집에 오면 언제나 신이 납니다. 25개월 된 에밀리까지도 이젠 뒷마당 잔디밭엘 아주 잘 내려갑니다. 57개월짜리 에이든은 이제 제법 의젓해졌습니다. 나름 오빠라고 지 동생을 살뜰히도 챙깁니다. 뽀로로 음료수 두 병을 주면 지 동생한테 먼저 한 병을 건네줍니다. 어느덧 뭐든 두 개를 받으면 항상 동생을 챙겨주는 의젓한 오빠가 된 겁니다.

본채와 별채, 뒷마당을 누비며 신나게 뛰놀던 녀석이 문득 다가와 제 손을 잡으며 “하부지, 같이 놀자!” 합니다. “에이든, 너 할아버지 싫다며?” 갑작스런 저의 공격(?)에 녀석이 순간 주춤합니다. ‘든이는 엄마랑 할머니가 좋고, 뽐이는 할아버지만 좋대.’ 딸아이에게서 얻은 사전정보(?)에 의한 기습질문에 에이든이 당황한 겁니다.

아까도 집안에서 녀석에게 “에이든, 너, 할아버지 진짜 싫어?” 하자 “응, 나는 엄마랑 할머니 두 개 좋아” 했던 녀석입니다. 하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인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못지않게 곤란한 질문이 “할머니 할아버지 중 누가 더 좋아?”일 겁니다. 녀석들도 이젠 약아져서 때론 엄마보다 아빠가 더 좋고 또 어떨 땐 할아버지가 최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참 많이 억울한(?) 게 에이든이 어릴 때, 아직 ‘할아버지’ 소리를 못할 때는 저를 세상에서 가장 좋아했고 단 한시도 지 곁에서 못 벗어나게 했습니다. 회사 일 때문에 녀석을 속이고(?) 몰래 빠져나가던 제 차를 뒤늦게 발견하고 “아빠! 아빠!”를 외치며 대성통곡을 하는 녀석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저는 지금도 아주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때는 녀석과 매일매일 8개월여를 함께 생활했던 시절이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제 와서 할아버지가 싫다? 괘씸하기 짝이 없는 녀석입니다. 반면, 에밀리는 할아버지가 참 많이 좋은가 봅니다. 언젠가는 이놈도 배신(?)을 때리겠지만 당장은 기분 최고입니다. “아부!” 힘차게 저를 부르는 녀석에게 “뽐이, 뽀뽀!” 하면 입을 함박만하게 연 채 달려들고 “뽐이, 한번 더!” 소리에 녀석의 뽀뽀가 다시 한번 터프하게 얹어집니다.

안되겠다 싶었던지 에이든이 제 손을 꼭 잡은 채 특유의 눈웃음을 치며 “나, 하부지 좋아!” 합니다. “진짜?” 하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는데 이어진 녀석의 한 마디가 우리 모두를 뒤집어지게(?) 만들었습니다. “하부지! 나, 다섯 마리 다 좋아!” 잠시 자리를 비운 지 삼촌을 제외한 나머지… 엄마, 아빠, 에밀리, 할머니 그리고 할아버지까지를 전부 좋아한다는 표현에 난데 없이 ‘마리’가 얹어진 겁니다. 아까 ‘엄마랑 할머니 두 개 좋아’라는 말에 ‘뭐지?’ 싶었는데 결국 대형사고(?)로 이어진 겁니다.

아직 ‘명’과 ‘개’와 ‘마리’가 헷갈리는 귀여운 녀석… 앞으로 어쩌면 더더욱 한국말이 헷갈려질 수도 있는 녀석이지만 에이든 덕분에 설날 오후, 그렇게 우리 ‘일곱 마리’는 웃음과 행복이 넘쳐나는 시간을 즐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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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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