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편, 무심한 아빠의 ‘껄껄껄’

아주 드물게는,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이’는 식구들과 함께 했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필요 이상의(?) 효심이 가득했던 우리는 여름휴가를 가든, 맛있는 걸 먹으러 가든, 쇼핑을 가든 늘 어머니를 포함한 다섯 식구가 함께 움직이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꼭 그렇게 하는 것만이 효도는 아니었을 텐데, 마음 착한 아내는 가끔씩이라도 그냥 우리 둘만 혹은 아이들만 데리고 하는 외출을 원했을 텐데… 찌질하기 그지없는 저는 거기까지는 헤아리지를 못했습니다. 지금 들어, 딸아이부부가 우리한테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고 해도 가급적 끼지 않으려 하는 건 그때의 그 기억들 때문일 터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네다섯 살 무렵, 우리 아파트 근처 ‘겨울나그네’라는 나름 분위기(?)있는 경양식집에서 ‘칼질’을 했던 기억 그리고 딸아이가 여섯 살 때쯤 동네 포장마차에서 노래를 앙증맞게 잘 불러 손님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밖에도 식구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더러 있긴 했겠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면 아이들이 한창 아빠와의 시간을 필요로 할 때 저는 참 많이 무심하고 부족한 아빠였습니다. 특히 세상을 향해 ‘아내를 사랑하라’고 외친 여성지 <여원>에 몸담고 있는 동안 저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남편은 남의 편’이라는 말을 앞장서 실천에 옮긴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아파트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9만평에 이르는 드넓은 중앙공원이 펼쳐져 있었음에도 그곳에서 우리 아이들과 함께 했던 기억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주말도 휴일도 없이 일과 사람에 미쳐 밖으로 나돌다 보니 어느새 두 아이는 고등학교 2학년, 중학교 3학년으로 훌쩍 자라 있었습니다.

나름 인정받는 기자와 데스크로, 제법 인기 있는 칼럼니스트로, 방송 출연자로, 성공학 강사로 주가를 높였고 남들에게는 한없이 좋은 선후배, 동료로 인정받고 지냈지만 아내와 아이들에 관한 한 저는 완벽한 빵점 짜리 남편, 빵점 짜리 아빠였습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데 ‘그 중요한 시기에 아이들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지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가득하지만, 지금이라도 어찌해보고 싶고 뭐라도 해주고 싶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모든 것들이 너무 많이 늦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남자들이 대부분 다 그랬잖아. 먹고 살기에 바쁘고 새벽에 나갔다가 밤 늦게 들어오고…’라는 말로 위안을 삼아보려 해도 아쉬움과 미안함은 지울 수 없습니다. 제가 그렇게 남의 편, 무심한 아빠로 지내는 동안에도 그렇지 않은 아빠들은 얼마든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 중인 호주출신 아빠 샘 해밍턴 그리고 귀여운 두 아들 윌리엄과 벤틀리가 만들어내는 그림을 보면 한없는 부러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토요일 아침 산행에서 초등학생 또는 대여섯 살 된 아이들을 데리고 트레킹을 하는 호주인 부부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어떤 아빠는 채 걸음마도 안 뗀 아이를 둘러 업고 산길을 걷기도 합니다. 낚시터에서 아빠와 함께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꼬마의 모습을 보면 귀엽고 사랑스럽기가 그지 없습니다.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상황이 달라졌지만 그전에는 주말이나 여유시간이 생기면 딸아이 부부가 에이든과 에밀리를 데리고 여기저기를 많이 다니곤 했습니다. 속마음으로는 ‘좀 더 자주’를 생각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대견하고 뿌듯합니다. 아빠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은 아이들일수록 성장의 크기와 폭이 훨씬 넓고 깊어지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이 들어 있는 한국의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호주에서도 5월 둘째 주 일요일이 어머니 날입니다. 평소에도 그래야겠지만 5월에는 세상의 모든 아빠들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마음 깊숙이 새겨, 훗날 저처럼 ‘그때 조금 더 잘해줄 걸, 그때 조금 더 함께 있어줄 걸, 그때 조금 더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돼줄 걸’ 하는 ‘껄껄껄’의 후회를 느끼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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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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