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의 미학

날씨도 좋고 바람도 좋고 파도도 좋은데 입질은 없고… 모래사장에 벌렁 드러누웠습니다. 조금 전까지는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기만 하던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예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늘을 찌르듯 높이 솟아있는 낚싯대 끝을 스쳐 날던 갈매기 한 마리가 흠칫 멈춰섭니다.

그렇게 한참을 누워있다 고개를 들어 왼쪽을 보니 성산 일출봉을 닮은 무인도가 온화한 미소를 보내고 있습니다. 오른쪽 끝 저만 치에서는 하얀 등대와 빨간 기와집 두 채가 반갑게 손짓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우리 여행멤버들과 함께 스톡튼 비치를 다녀오다가 잠시 들러 117살짜리 등대 아래에서 와인 잔을 부딪쳤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동화책에나 나올 법했던 빨간 기와집 두 채에서는 등대지기들이 살았었다고 합니다.

전문 꾼들은 낚시도 아니라고 치부해버리겠지만 그곳은 우리의 최애 (最愛) 낚시터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바다… 그곳에서 풍겨 나오는 바다내음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줍니다. 물론, 그곳에 가는 최대목적(?)은 연어이겠지만 비치에 낚싯대를 꽂아놓고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바다를 걷는 게 어쩌면 더 큰 행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태평양 한 가운데(?) 깊숙이로 낚싯대를 던져 넣는 기쁨은 덤입니다.

코로나19로 어디든 쉽게 갈 수 없는 요즘이지만 낚시가 외출허용 범위 안에 들어있는 게 우리로서는 참 다행스럽습니다. 아내와 저의 거의 유일무이한 취미가 낚시입니다. ‘바위낚시는 하지 않는다’는 철칙에 따라 우리는 어디를 가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비치에서 하는 연어 낚시 외에 오징어 낚시와 갈치 낚시도 모두 평평한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합니다. 잡으면 더 좋고 못 잡아도 그만이지만, 어복이 있는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물고기를 잘 잡는 편입니다.

화끈하게 미끼를 물어주는 탓에 갈 때마다 고등어 30마리 이상을 순식간에 담아오던 클립튼 가든 와프의 추억도 있고, 완벽하게 미끼를 물고 늘어지는 힘센 놈들 덕분에 낚싯대가 쉴 틈 없이 활처럼 휘던 연어 낚시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물고기들도 약아져서 어떤 녀석이든 미끼를 확 물지 않습니다. 속된 표현으로 깔짝깔짝 대다가 미끼만 속 빼먹고 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어찌 보면 물고기는 진화하는데 인간은 그대로인 것 같기도 합니다. 애꿎은 낚싯대 끝만 노려보다가 혹은 야광 찌만 뚫어지게 째려보다가 돌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어쩌다(?) 운 좋게 잡은 물고기를 좋은 사람들과 나눔 할 때는 또 다른 행복이 더해집니다.

최근에는 혹스베리 리버에서 하는 장어 낚시가 재미도 있고 수확도 좋은 편입니다. 이놈들도 많이 약아지긴 했지만 힘 좋은 녀석들과의 한판을 치르고 나면 후끈후끈해집니다. ‘낚시는 물고기를 낚는 게 아니라 세월을 낚는 것’이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낚시를 하면 몸도 마음도 편안해짐을 느낍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모든 것들이 엉망진창이 된 요즘은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얼른 이 혼란하고 정신 사나운 혼돈의 시기가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몇 달 동안 산불 때문에 뿌옇던 호주의 하늘이 다시 푸르름을 되찾았듯이 코로나19로 피폐해진 우리의 몸과 마음이 얼른 정상을 회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페이스북 친구가 보내준 재미있는 글 한 토막을 소개합니다. 자신에 걸맞지 않게 지나친 욕심을 부리는 인간들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결혼 30주년을 맞은 60세 동갑내기 부부의 결혼기념일에 천사가 나타나 소원을 한 가지씩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아내가 먼저 “그 동안 워낙 가난하게 살다 보니 여행을 못했는데 남편과 세계일주를 한번 해봤으면 좋겠네요”라고 했더니 천사가 항공권과 여행경비를 건네줬습니다.

소원을 말하자 이뤄지는 것을 본 남편이 아내의 눈치를 슬쩍 살피더니 멋쩍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저보다 서른 살 젊은 여자와 살아봤으면 좋겠습니다.” 천사가 당황하며 “그 동안 두 분이 열심히 사셔서 드리는 혜택인데 소원을 안 들어드릴 수도 없고… 아무튼 그렇게 원하신다면 이뤄드려야겠지만… 참 이상한 소원도 다 있네요”라면서 남편을 향해 날개를 폈습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는 30살 어린, 젊고 예쁜 여자가 나타난 것이 아니라 남편이 폭삭 늙어 90세 노인이 돼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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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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