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떠나가는 것들

하늘이 푸르고 햇살이 따갑다. 하늘이 푸르고 햇살이 따가운 날이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되풀이되는 날이지만, 거센 바람이 불어 으스스한 다음날의 푸른 하늘과 따가운 햇살이 가져온 가벼운 더위는 유난히 반갑다.

마당 한가운데 서있는 체리나뭇잎이 무성하다. 기분 좋을 만큼의 더위를 맞아 체리나무 그늘아래 앉아 가슴을 열어 젖힌다. 체리나무는 사계절을 살아가면서 몸뚱이를 감싼 잎새를 벗어내고 두르기를 거듭하더니 어느새 세월의 훈장처럼 무성한 잎으로 늠름하다.

그렇게 벗고 입기를 되풀이하더니 이젠 풍성한 나뭇잎으로 온몸을 감싸고 따가운 햇살도 거센 바람도 넉넉하게 막아준다. 그것이 체리나무의 삶인가 보다. 나를 떠나가는 아픔과 지키는 고통을 되풀이하면서 참고 견뎌 단단해지고 풍성해지고 익어가는 우리네 삶 같다.

체리나무 그늘아래 앉으면 살아온 세월에 대한 열정 순수 번뇌 방황 회한 같은 것들이 잔잔함으로 찾아와 편안함을 느낀다. 편안함과 어울려 나뭇잎 사이로 언뜻 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항용 그러하듯 상념에 젖는다.

어느 노래하는 사람이 나를 떠나가는 것들, 그것은 젊음 자유 사랑 같은 것들이라며 잘 가라고 노래했다. 그러면서 또 나를 지켜주는 것들, 그것은 열정 방황 순수 같은 것들이라며 가슴을 후볐다.

그럴까? 젊음 자유 사랑 같은 것들이 나를 떠나가는 것들이었을까? 그리고 정녕 나를 지켜준 것들은 열정 방황 순수 같은 것들이었을까? 그것들이 진정으로 나를 지켜준 것들이었을까? 그렇게 믿었다가 다친 것들은 어찌해야 하는가. 그럴지라도 그냥 믿어야 하는 건가. 그렇게 믿고 사랑하다 다치고 아파했는데 다시 또 누굴 믿고 사랑해야 하는가.

몸뚱이가 새까만 기차는 한낮의 고향을 등지고 어둠 속을 헤치며 밤새워 달렸다. 기차가 거친 숨을 토하며 멈춰선 대도시의 새벽 불빛은 꿈이었고 희망이었다. 시간들이 달려와 던져주는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이 아니어도 춥고 배고프고 지친 소년에게는 새벽잠을 깨우는 교회 종소리는 감사가 아닌 방황이었다.

신문배달소년은 늘 즐거운 듯 뛰어다니며 배달했다. 그것은 소년에게는 의식되지 않은 삶에 대한 열정이었다. 소년은 소낙비가 내리면 배달하는 신문이 젖을세라 신문을 가슴에 품어 안고 등을 웅크리고 뛰어다녔다. 소낙비가 멈추면 뭉게구름 반짝이는 햇살을 올려다보면서 젖어버린 몸뚱이에 개의치 않고 행복한 미소를 짖곤 했다. 그것은 소년의 순수함 이었다.

청년은 잠잘 곳이 마땅치 않았다. 사설독서실의 의자를 이어 붙이고 그 위에서 잠잤다. 하루를 견디는 몸뚱이는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지친 잠결에서도 꿈을 꿨다. 그것은 열정 순수가 아니라 삶을 지탱해주는 젊음 아픔 같은 것이었으리라. 그건 두렵지 않고 슬프지 않고 날고 싶은 곳으로 언젠가는 날아갈 수 있는 자유였을지도 모른다.

나쁜 놈들과 싸움을 하고 교도소에 끌려갔다. 증오 저주에 휩싸여 강도 사기 도둑질 폭력을 일삼는 어둠의 자식들만 득실거렸다. 녀석들은 매일 배가 고팠다. 차입 받은 건빵 100봉지를 쌓아두지 않고 모두에게 골고루 나눠줬더니 건빵 몇 봉지에 말투가 달라졌다. 하루아침에 7사19호실 감방의 실세가 됐다. 그건 당황 서글픔 분노였다.

흰 눈이 펄펄 내렸다. 만삭의 여인은 색 바랜 연두색 쉐타를 걸치고 어깨를 움츠리며 눈 맞이를 했다. 눈 내리는 하늘을 향해 희망을 쏘았다. 가녀린 여인의 어깨를 감싸며 살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겨울을 견디는 나목 (裸木)일지언정 잎은 다시 돋아날 거라고 다독였다. 그것이 삶이라 믿었다. 삶은 그런 것인 줄 알았다.

그랬다. 젊음 자유 사랑, 열정 순수 방황 같은 것들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그것들은 꿈, 희망이었고, 고통, 아픔이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그러니까 너에게 또 나에게 잘 가라는 인사는 해야 했다.

누구나 그렇진 않지만 내가 만난 세상은 나를 지켜주는 것보다 떠나가는 것이 더 많다. 믿음 사랑이 되레 아픔을 남기고 떠나간다. 그러나 나는 또 누굴 만나고, 술잔을 부딪치며 얘기를 나누고, 사랑을 한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나를 떠나간 것들은 돌아올 것이며 그렇게 모든 건 나아지리라 생각했다. 그 또한 내 삶일 터.

나는 이제 많이 늙었다. 가슴을 저리는 글을 얼마나 더 쓸 수 있을지, 목청이 터질 듯 소리지르며 노래를 얼마나 더 부를 수 있을지, 한서린 눈물 고인 술잔을 얼마나 더 기울일 수 있을지 나는 모른다. 그렇지만 남아있는 세월 나를 지켜준 소년의 열정 순수함을 안고 살고 싶다. 결국 그것조차 떠나갈 것들이지만.

어쨌거나, 그럴지라도 나를 떠나가는 것들에 잘 가라는 인사 같은 건 해줘야겠다.

 

 

왜들 이러시나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Previous articleThe Jungle Bunch World Tour
Next article뉴스탈출 (歸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