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꽃병

주인여자는 손짓으로 가라는 시늉을 했고 친구는 무릎을 꿇더니…

분노에 찬 목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너는 누구니?”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가슴까지 화끈거림이 울렸다. 오래 전 일이지만 그때 그 일만 생각하면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가 몸서리쳐진다.

 

01_짧은 영어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긴 한숨만

호주에 정착한 지 3개월이 조금 지날 무렵, 이곳에 사는 교민 한 분이 청소를 해야 돈을 벌 수 있다며 우릴 부추겼다.

그 달콤한 유혹에 청소가 평생 내 발목을 잡는 영원한 직업이 될 줄이야…. 새벽부터 두 부부가 열심히 뛰어도 주 $350정도였으나 청소를 하면 주 $500은 거뜬히 벌 수 있다는 달콤한 말에 직장을 그만두고 청소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일한 것만큼 대가가 있으니 힘들어도 힘든지 몰랐다. 같은 동네 사는 친구가 매일 현찰이 들어 온다는 소리에 자기네도 청소를 해보겠다고 나섰다.

어느 날 다급하게 친구가 날 찾아 왔다. 신문지를 펼쳐 보여줬다. 그건 깨진 꽃병이었다. 자초지종을 묻기도 전에 내 손을 잡아 차에 태웠다. 집주인한테 이야기해야 하는데 같이 가서 자길 도와달라고 했다.

나 역시 황당했다. 짧은 영어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긴 한숨만 나왔다. 그 집에 도착하니 일 나갔던 가족들이 왔는지 집안이 훤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저녁을 준비하는지 문 앞까지 고기 냄새가 입에 침이 고이게 했다.

 

02_짧은 영어로 설명하기보다 실제상황 재현하고 싶어…

문을 두드리니 주인여자가 나와 무슨 일이냐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친구는 싸 온 신문지를 펼쳐 보였다. 그걸 본 주인여자는 어디 있던 거냐고 물었다. 친구는 손가락으로 선반 위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똑같은 꽃병이 하나 더 있었다. 두 개 중 한 개를 깬 것이었다.

나는 선반 위에 남아 있던 꽃병을 집어 들어 내 가슴에 문지르기 시작했다. 주인에게 짧은 영어로 설명하기보다 실제상황을 재현하고 싶었다. 티셔츠를 걷어 올려 꽃병을 닦아 올리는 순간 그만 꽃병이 내 손에서 미끄러져나가 타일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친구가 깬 것보다 더 처참하게 형체조차도 없이 박살이 나버렸다. 세 사람은 동시에 “Oh my god!”을 외쳤다. 멀쩡했던 꽃병까지 주인이 보는 앞에서 깨버렸으니 우린 할 말을 잃었다.

 

03_무릎까지 꿇고 빌고 싶진 않아 친구의 손을 뿌리치고 밖으로

주인여자는 손짓으로 가라는 시늉을 했다. 그 순간 친구는 그 주인 앞에서 무릎을 꿇더니 두 손을 비비며 빌기 시작했다. 정신이 나간 나에게도 빌라며 내 바지를 몇 번이고 힘있게 잡아당겼다.

그러나 나는 무릎까지 꿇고 빌고 싶지 않았다. 나는 친구의 손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친구는 얼마나 더 빌었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자존심도 버린 친구가 불쌍해 보였다. 꽃병 하나 깼다고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꽃병은 주인여자 가족들이 가족이 그리울 때 보라고 40년 전 영국에서 올 때 가져온 뜻이 담긴 꽃병이었다. 그날 나는 그 여자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 슬픈 눈을 보았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귀중한 물건인지 알 수 있었다.

운전하고 집으로 가는 동안 친구도 아무 말이 없었고 죄인인 나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암담했다. 도와주려고 간 게 더 안 좋은 결과를 가져 왔으니 나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04_긴 한숨만 여러 번 쉬더니 독을 품은 눈으로 “미친년…”

친구는 날 쳐다보지도 않았다. 긴 한숨만 여러 번 쉬더니 독을 품은 눈으로 “미친년…”이라며 “도와 달라고 했더니 하나 남은 것마저 왜 깼냐?” 차 안이 쨍쨍 울리도록 소리를 질렀다. 나는 지은 죄가 있어 아무런 대꾸도 못 하고 날 원망만 하는 친구가 서운했다. 나는 분노에 침을 꿀꺽 삼켰다.

집에 돌아온 나를 남편은 잘 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어떻게 해명해주었냐고 몇 번이고 물었다. 그 사건을 물어보는 남편에게 반항이라도 하듯 “하나 남은 것마저 깨주고 왔어!” 그 말을 들은 남편은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구겨진 내 얼굴에 더 대꾸하면 쌈판이라도 벌어질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고개를 돌려 딴청을 피웠다. 그때 생각하면 그래도 나까지 무릎 꿇고 빌지 않은 게 그나마 내 자존심을 지켰다고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도 친구는 전화 한 통 없고 나 역시 ‘미친년’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는데 전화하고 싶지 않았다.

 

05_배려 있는 사람들 때문에 고달픈 삶도 잘 이겨나간다는 생각을

2주가 지나도 친구한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내 머리 속에서 지우고 싶은 사건이라 친구를 보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연락이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깊어질 때 친구가 우리 집을 찾아 왔다.

욕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착한 주인여자는 우리 친구를 오히려 위로해주며 그때 와서 한 개 남은 꽃병마저 깨고 간 여자는 누구냐고 물었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이해가 안 간다며 왜 그 멀쩡한 걸 들어서 깨고 갔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단다.

그때 사건은 영어를 못해 상황을 실감나게 보여주려던 우리 친구의 실수였다며 그 집에서는 그때의 일이 지금까지도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고 했다.

일을 하다 보면 별일도 많지만 우린 이민자로서 이곳에 뿌리를 내린 많은 사람은 따뜻하고 배려 있는 이곳 사람들 때문에 힘들고 고달픈 삶도 잘 이겨나간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이 있어 용기가 나고 감사한 마음이 드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따스한 바람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준다.

 

글 / 변애란 (글벗세움 회원·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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