돗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으시오.” 이보다 완벽한 해결책이 어디 있는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베데스다 연못가를 거닐다가 우연히 환우를 발견하셨다 (요한 5장). 그는 38년이란 긴 세월 동안 이 몹쓸 병으로 고통 당하고 있었다. 환우는, 천사가 가끔 연못에 내려와 연못을 소용돌이치게 할 때 가장 먼저 연못에 들어가는 사람의 병이 나을 수 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는 38년동안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연못에 들어가지 못해 병 고칠 기회를 전혀 얻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01_희망으로 세월을 버티다

그는 그 긴 세월 동안 처절한 고통 가운데 살았다. ‘인간의 삶을 살았다’기보다는 ‘죽지 못해 목숨만 연명하고 있었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의 터널 속에 무려 38년 동안 갇혀있었다. 살려는 몸부림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더 쉬운 인생이었다.

놀랍게도 그는 죽음보다 더 깊은 낙담과 절망으로 점철된 삶을 살면서도 목숨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 ‘희망’이었다. 언젠가 연못에 들어가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그 긴 세월을 버틸 수 있었다. 물론 동시에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절망, 원망, 분노, 비관도 엄청났다.

성경은 그 연못에 들어가서 실제로 병 나은 사람이 있었는지에 대하여는 침묵한다. 사람들의 미신적인 바램일 수도 있다. 그는 기회가 오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에 하루 하루 몸부림치며 버틸 수 있었다. 천사의 소용돌이가 그에겐 유일한 희망이었고, 삶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힘이었다. 그 소용돌이만 바라보고 살았다. 그러나 그 기회조차도 자신의 손으론 잡을 수 없는 비참한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전혀 불가능했다.

 

02_최고의 질문, 최고의 선물

어느 날, 난생 처음 본 사람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분은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한마디로 물으셨다

“당신이 낫기를 원하시오?”

대답은 들으나마나 한 너무도 당연한 질문이다. 38년동안 앓아 누운 사람에게 낫고 싶으냐고 묻는 것은 열흘 굶은 사람에게 먹고 싶으냐고 묻는 질문보다 더 절박하지 않겠는가?

그 동안 그 어떤 사람에게도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 어느 누구도 몹쓸 병에 걸린 환우와는 ‘말을 섞으려’ 하지 않았다. 아예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그에게 친구로 접근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예수님께서는 먼저 찾아오셔서 말을 건네셨다 그리고 그의 필요를 너무나 잘 아시고 단도직입적으로 먼저 질문하셨다. 이미 답변을 다 알고 물어보셨다. 어떤 대가나, 답례나 사례도 원치 않으셨다. 그저 당신의 말에 순종하고 따르기만을 원하셨다. 그렇다고 엄청난 순종의 행위를 원하지도 않으셨다. 그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일어나 당신의 돗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으시오”

이것은 평생 꿈꾸며 소망했던 일–소용돌이 연못에 첨벙 들어가는 일–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쉬운 일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순종이 전제되지 않으면 실천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너무나 쉬워 보이기에 오히려 무시할 수 있다.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인간의 기준으로 본다면 절대 순종하지 못한다. 오히려 의심하고, 의문부호를 붙인다.

환우는 이 질문을 듣자마자 그 동안 가슴 속 밑바닥에 응어리지고 사무쳤던 울분과 하소연을 토해냈다. 복받쳐 오르는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평생의 한을 토해냈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연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03_쉬운, 너무나 받기 쉬운 은혜

예수님께서는 울분, 분노, 한으로 가득 한 한우의 마음의 언어(heart language)를 모두 들으셨다. 이미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듯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으셨다. 인자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일어나 돗자리를 들고 걸어가시오.”

이 말을 듣는 순간 환우는 꼭 자신을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의심의 눈초리로 째려보았다. 걸어서 연못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해서 매일매일 자신의 삶을 한탄하며 살았던 그에게 돗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너무나 쉬워 어처구니 없게 들렸다.

이것이 그를 향한 예수님의 관심, 거부할 수 없는 은혜이다. 그에 대해 모든 것, 가장 필요한 것, 가장 원하는 것을 너무나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한꺼번에 모든 문제를 몽땅 해결할 수 있는 방법(solution)을 제시하신 것이다.

“돗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으시오.” 이보다 완벽한 해결책이 어디 있는가? 38년된 전신마비 환우는 그날 공짜로 얻은 로또가 수십억에 당첨된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위 ‘운수대통’했다. 스스로 찾아오신 예수님께 환우는 요청도 간청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유일한 소원인 병 고침을 순식간에 선물로 받았다. 전혀 예상치 못했다. 이것이 ‘은혜’이다.

 

글 / 권오영 (철학박사·알파크루시스대학교 한국학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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