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

30년도 더 된 일입니다. ‘현재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정상급 댄스가수가 무명시절부터 자신을 위해 헌신해온 여성을 처절하게 배신했다’는 제보에 따라 취재팀을 꾸렸습니다. 다양한 각도에서의 사실 확인에 이어 두 사람이 무명시절 지방업소에서 함께 일하며 동거했던 집을 찾아냈고 동네사람들의 증언까지 확보했습니다.

결정적으로, 두 사람 사이에서 생겨났던 아이를 낙태시켜준 산부인과 의사로부터 낙태수술확인서를 받아 드는 것으로 모든 것은 기정사실화가 됐습니다. 그는 이제 크게 성공해서 정상급 가수로 많은 부와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그에게서 버림받은 그녀는 여전히 서울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디스코 걸로 일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당황한 그와 그의 기획사는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협박과 회유를 계속해왔지만 확실한 증거들이 차고 넘치는 상황이었던 터라 그들로서도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고 했던가… 그렇게 그는 자신이 저지른 몹쓸 짓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습니다.

한편, 우리의 또 다른 취재팀은 이보다 더 큰 메가톤급 폭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민주화 투쟁의 거물로 알려진 한 정치인의 숨겨진 여인과 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우리의 취재로 베일에 싸여 있던 문제의 여인과 아들의 실체가 확인됐고 주변 취재까지 모두 끝나 핵폭탄을 터뜨릴 준비가 완료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발행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긴급간부회의가 소집됐습니다. 실내 회의실이었음에도 발행인은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고 회의 중간중간 가슴을 부여 쥐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곤 했습니다.

그리고 내려진 결정은 ‘그 동안 진행해온 정치인 모씨와 그의 숨겨진 여자 및 아들에 관한 취재는 전면중단 한다’ 였습니다. 우리가 취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야당사람이었던 그 정치인이 갑자기 여당사람으로 변하는 마술(?)을 부린 덕에 상황이 180도 바뀌어버렸던 겁니다.

‘그곳’으로 끌려간 발행인은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지만 그나마 취재를 지휘했던 편집국장과 저 그리고 취재기자들은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세청에 의해 곧바로 세무조사가 시작됐고 회사는 빠르게 공중분해 됐습니다. 30년도 훨씬 지난 일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참 많은 생각이 오갔던 사건입니다.

이후에도 나쁜 인간들의 실체를 밝혀내는 일들도 적잖이 했지만, 저는 자신의 분야에서 수십 년 동안 한 우물을 파온 사람들, 온갖 역경을 딛고 가슴 벅찬 성공을 일궈낸 사람들,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꾸준히 남을 돕는 사람들 등 가슴이 따뜻하고 뭉클해지는 이야기들을 다룰 때 더 큰 보람을 느끼곤 했던 것 같습니다.

시드니에 와서도 저는 <코리아타운>을 20대부터 60대까지의 여성들을 주 독자층으로 하는, 가슴 따뜻한 여성지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교민 밀집지역 곳곳을 누비며 교민들의 삶을 조명했고 여러 명의 기자들이 거리로 나서 생생한 현장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우리네 삶에 도움이 되는 각종 정보들이 그득해 언제 어디서나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는 대표매체로의 자리매김도 확고히 했습니다.

그 동안 가장 두꺼웠던 <코리아타운>은 164페이지였습니다. 이후 200페이지를 목표로 야심 찬 질주를 계속했지만 구글을 필두로 하는 온라인 쓰나미와 예기치 못했던 코로나19의 딴지로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이 바닥 하이에나들의 거친 행보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돌아오는 일요일 (8월 6일)이 코리아타운 창간 24주년 기념일입니다. 하고 싶었던 것, 펼치고 싶었던 꿈이 많았던 시간들을 아쉬워하며 이 나이가 되도록 제가 해왔던 일을 꾸준히 할 수 있음에 한편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10년 전부터 계획했던 은퇴의 꿈을 이제는 더 이상 미루지 않아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이러고 있는 저의 찌질함에 대한 회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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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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