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 일제 강점기로부터의 해방… 빛을 되찾다! 내 나라를 되찾다!

1945년 8월 15일… 서울역 광장과 남대문로 일대에는 조국의 해방을 환호하며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부둥켜 안고 목이 터져라 만세를 외치는 이들로 가득했다. 밤이 돼도 흩어질 줄 몰랐던, 밤새도록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감동의 순간이었다. 돌아오는 화요일(15일)은 일흔 여덟 번째 맞는 광복절이다. 자라나는 어린 세대를 위한 간단한 광복절 역사공부 시간을 가져본다. <구성/정리 김해선 기자>

 

01_제2차 세계대전서 일본군이 연합군에 패망하면서…

광복절 (光復節)은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연합군에 패해 항복하게 돼 한반도가 일제의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광복은 문자 그대로는 ‘빛을 되찾음’을 의미하고 국권을 되찾았다는 뜻으로 쓰인다.

제2차 세계대전은 1943년에 접어들면서부터 점차 연합군측에 유리하게 돼 그 해 11월 말에 미국, 영국, 중국 3국은 ‘카이로 선언’을 발표했다. 이어 1945년 5월에 나치독일이 항복했고 8월 8일에는 미국, 영국, 중국, 소련이 ‘포츠담선언’을 발표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드디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했다. 한민족은 카이로선언과 그것이 다시 확인된 포츠담선언에 의해서 그리고 한민족의 오랜 투쟁을 통한 민족의 극복에 의해서 일제의 학정으로부터 독립을 맞이했다.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대한 법률’에 따라 광복절이 국경일로 지정돼 대한민국에서는 전국적으로 각종 경축행사가 거행되며 각 가정마다 태극기를 게양한다. 북한에서는 이날을 ‘민족해방기념일’로 기념하고 있다.

 

02_8월 15일 낮 12시, 일본 왕 항복방송 라디오 생중계

해방 날 정오에 일본 왕의 항복방송이 라디오로 중계됐다. 당일에 대해 일반적으로는 일본 왕의 항복방송을 들은 군중들이 그날 바로 태극기를 들고 쏟아져 나와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날 거리는 아주 조용했다고 한다.

물론, 그날 중대발표가 있으니 조선인들은 경청하라는 벽보가 나붙었으나 당시 라디오를 가진 조선인들은 많지 않았고 일본 왕의 항복발표 방송은 잡음이 심했고 어려운 한자가 섞여 있었던 데다가 결정적으로 이게 그 당시 쓰던 일본어도 아니고 일본 왕족어로 나왔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였다.

게다가 일제강점기 36년을 거치고 3.1 운동 이후로 태극기를 모조리 압수 당한지 20년이 넘게 지난 상황이었고 일제 말 병참기지화 정책으로 일본군들이 무기를 들고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조선인들을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내로 나와 만세를 부를 생각을 할 형편이 못됐다고 한다. 그렇게 그날은 조용히 지나갔다.

다음 날이 되자 비로소 조항 내용대로 형무소에 있었던 정치범과 경제범이 석방되기 시작했다. 그 때서야 경성 (서울) 시민들은 어제 방송이 일본 왕의 항복방송인줄 알게 됐고 해방을 환호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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