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드라마라고는 하지만 정말 ‘빡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년 전 미국으로 이민을 간 것으로만 철썩 같이 믿고 있었던 아들네 가족이 알고 보니 그 동안 서울 한복판, 그것도 강남의 고급 아파트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었던 겁니다. 강북의 한 동네에 작은 빌라 한 채를 갖고 있는 노모는 거기에서 나오는 월세에 폐지며 박스를 주워 모은 돈으로 아들네 생활비는 물론, 두 손주의 학비까지 꼬박꼬박 ‘미국으로’ 보내주고 있었습니다.
이민 간지 20년이 넘도록 단 한번도 한국에 나오질 않아 늘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손녀가 그리웠던 노모는 자신이 미국에 가서 가족을 만나야겠다며 영어공부까지 시작하던 차였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강남의 고급식당에서 깔깔대며 외식 중인 아들네 모습을 먼발치에서 본 노모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몇 날 며칠을 오열합니다. 그들이 더더욱 못된 건 한 달에 한 번 돈을 받을 때는 꼭 노모에게 전화를 걸어 “샌프란시스코에서 잘 지내고 있다”며 감쪽같이 속여왔던 겁니다.
“어머! 이거 용과잖아? 정말 맛있겠다. 이거, 우리 오빠랑 애들 좀 갖다 줘야겠다.” 모처럼 친정을 찾은 딸은 그렇게 흘리듯 한 마디를 내뱉고는 냉장고에 들어있던 용과를 주섬주섬 비닐봉지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만만치 않은 가격 때문에 몇 번을 망설이다가 남편을 위해 큰맘 먹고 한 박스를 사왔는데 철딱서니 혹은 싸가지 없는 딸이 그 같은 만행(?)을 저지른 겁니다.
같은 시드니에 살면서도 지가 필요할 때만 엄마아빠 집을 찾는 딸은 그날 결국 거의 반 박스에 달하는 용과를 막무가내로 강탈(?)해갔답니다. 그런 딸의 모습을 보며 노부부는 대놓고 말은 못했지만 속에서는 부글부글 끓고 있는 걸 억지로 참았다고 했습니다. 결혼을 하고는 엄마아빠 집에 잘 찾아오지도 않지만 어쩌다 올 때도 그 흔한 삼겹살 1kg도 안 들고 오는 얄미운 딸은 올 때마다 그렇게 엄마아빠 집 냉장고 서리(?)를 해간답니다.
“아무리 내 자식이지만 그럴 땐 정말 미워요. 그래도 손자손녀들 데리고 오면 그 놈들 예뻐하느라 이것저것 도둑맞아도 아무 생각 안 들다가 모두들 돌아가고 나면 둘이 마주보며 허탈한 웃음을 짓곤 합니다. 딸도 사위도 둘 다 돈도 잘 버는데도 엄마아빠한테 용돈 한번 안 주는 아주 괘씸한 것들이에요. 꼭 받아서 맛이 아니라 아들 며느리한테서, 딸과 사위한테서 용돈 받았다며 자랑하는 사람들을 보면 은근히 부럽습니다.”
곁에서 듣고 있던 다른 부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습니다. “아이구! 그 정도는 양반이에요. 우리 아들부부는 멜번으로 이사간 후로는 몇 년 동안 단 한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어요. 가뭄에 콩 나듯 전화나 페이스톡으로 손주들 얼굴 보여주는 게 전부라니까요. 그뿐 아니에요. 우리 작은 딸은 지 남편 사업자금 좀 대달라기에 거절했더니 그때부터 아주 연락을 딱 끊고 살아요.”
긴 한숨과 함께 시작된 그분들의 이야기는 이러했습니다. 사위가 비즈니스를 한다기에 세 차례에 걸쳐 적지 않은 돈을 만들어줬는데 또 다시 돈 이야기를 하길래 상황설명을 하며 더 이상은 내줄 돈이 없다고 했더니 그대로 절연을 당했다는 겁니다. 실제로 작은 아파트 한 채에 펜션을 받아 생활하는 그들 부부로서는 더해줄래야 더해줄 돈이 없었던 겁니다.
한국에서도 돈 때문에 의가 상하는 부모 자식 이야기가 많습니다. ‘죽어서 주느니 살아 있을 때 미리 줘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게 해주겠다’는 마음에서 미리 유산을 준 부모들은 십중팔구 자식으로부터 외면 혹은 배신을 당한다며 ‘절대 미리 주지 말라’는 당부를 한다는 겁니다.
한 지인이 웃으며 던졌던 말이 새롭습니다. “부모의 마음 속에는 항상 천사가 들어있고 자식들 마음 속에는 늘 악마가 도사리고 있답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거의 예외 없이 무조건적일 텐데 자식들이 부모의 그 같은 마음을 헤아리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아빠하고 나하고’라는 TV프로그램을 통해 세상 더 없이 가까운 부녀 사이를 회복해가고 있는 백일섭 씨와 딸 지은 씨를 보면 마냥 흐뭇한 마음이 듭니다. 아빠의 엄마에 대한 일방적인 ‘졸혼선언’으로 7년간 아빠와 연을 끊고 살았던 지은 씨도 그때는 ‘참 매정한 딸’이라는 소리를 들었겠지만 지금 그녀의 온화한 얼굴을 보면 왠지 편안하고 따뜻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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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