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어가는 시간들

손자가 체스를 좋아하여 방학이 되면 여러 시합에 참여한다. 이번 겨울방학은 캔버라에서 시합이 있다고 해서 딸과 같이 동행했다. 딸은 손자와 같이하고, 우리 부부는 산책과 일일관광을 하기로 했다. 밤 늦게 도착한 캔버라는 강한 비바람에 음산하고 추웠다.

아침이 밝기도 전에 산책에 나섰다. 비가 내린 도로에는 떨어진 낙엽들이 그림처럼 붙어 있고, 빛이 바랜 가로수 잎들은 춤을 추고 있다. 안개가 자욱해 멀리 볼 수는 없지만 도로가 반듯하고 집들이 정연하게 들어서 있다. 주택가로 들어서니 주인의 개성 대로 잘 가꾸어진 정원들이 눈에 띈다. 초록색 잎사귀에 조그만 빨간 열매가 달린 휀스 나무가 블록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시드니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나무다.

주택가를 벗어나니 큰 나무들이 들어선 숲 속에 4층짜리 건물이 보였다.  층마다 색깔이 다른 베란다가 보이고, 건물 앞에는 잘 손질된 정원 안에 조그만 분수대가 있다. 분수 가운데에는 두 어린 천사가 마주보며 웃고 있는 조각상이 있고, 고풍스런 벤치도 눈에 띈다. 궁금하여 건물 쪽으로 가까이 갔다. 현관문 유리창에는‘CLOSE’라고 적힌 나무판이 보이고, 위쪽 벽에는 ‘AGE CARE CENTRE’라는 간판이 보였다. 유리창 안을 들여다봤다. 제법 큰 방에는 TV와 조그만 탁자 몇 개가 보이고 한쪽 구석에는 여러 개의 휠체어가 보였다. 저 의자에 앉았던 사람은 누구일까? 무슨 사연으로 이곳까지 왔을까?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하니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삶의 주도권을 남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그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고립된 벽 속에 갇혀 있다가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서 왔을까? 병든 몸으로 인생의 끝자락을 의지하기 위해서 왔을까? 수술하고 회복된 나이 많은 환자를 가족이 데려가지 않아 양로원에 보낸다는 어느 간호사의 말이 생각났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지워진 눈길이지만 서로를 바라보며 정원의 꽃들과 사연을 만들기도 하고, 새순이 돋고 낙엽 지는 자연과 함께 외로움이라는 그늘을 비껴 가겠지. 이곳의 사람들을 마음에 담으며 정원을 한 바퀴 도는데 올라오는 해가 나무 가지에 걸려 있다. 주위가 참 예쁘고 고요하다. 인생의 황혼을 함께 수 놓을 수 있도록 요양 시설이 잘 되어 있는 호주, 사회보장의 울타리 안에 있음이 새삼스레 감사하다.

돌아서 나오는데 잔디 밭 끝에 조그만 다람쥐 두 마리가 보인다. 사람에 익숙한 지 우리가 가까이 가도 도망 갈 기척이 없고 입만 바쁘게 오물거린다. 까만 줄 무늬가 선명한 귀여운 다람쥐에게 아침 인사를 했다. “Good morning! 얘들아, 헤어지지 말고 꼭 붙어 다녀라 외톨이가 되면 슬프단다.”

오후에는 캔버라 국립수목원에 갔다. 돔 같이 생긴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방문자 센터와 카페가 같이 있어 조금은 붐비었다. 안내 책자를 보고 싶어 방문자 센터 앞으로 갔다. VOLUNTEER라고 쓰여 있는 까만 앞치마를 입은 할머니가 미소를 띄며 가까이 왔다. 은색의 머리를 곱게 묶은 그녀는 안내 책자를 주며   수목원에 대해 설명했다. 광대한 언덕에 자리 잡은 수목원은 원래 소나무 조림지 였다고 한다. 2003년 엄청난 산불로 거의 소실이 되었지만 2년후에 새로 만들어 공개되었다고 한다. 세계의 희귀하고 멸종위기에 처한 나무로 이루어진 이곳은 100개의 재배 숲과 100개의 정원으로 디자인 되었다고 했다. 동양인은 첫 번째 방문지로 본자이 (분재) 정원을 간다면서 우릴 안내했다. 센터 밖으로 나와보니 수목원 규모가 어마 어마했다.

시드니에서 십여 년 동안 자원봉사자 (counsellor)로 일했던 나는 그녀가 궁금했다. 이름이 조이스 인 그녀는 일주일에 두 번 이곳에서 봉사한다고 한다. 회계사로 일하다가 은퇴하고, 수목원이 다시 건설된 후 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신이 태어난 지역 (캔버라)을 위해 봉사할 수 있어서 보람되고 즐겁다고 밝게 웃었다.  5년동안 일한 그녀는 칠십이 되는 내년에는 젊은 봉사자에게 이 일을 넘기고 집 근처에 있는 교회에서 봉사할 것을 찾고 있다고 했다. 말 할 때마다 크게 뜨는 파란 눈이 빛이 나고 아름다웠다. 그녀는 지금의 삶을 사랑하며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가진, 행복하게 나이 들어가는 (well aging) 할머니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늙는다는 것은 인간 누구에게나 오는 자연적인 현상이다. 안티 에이징 (antiaging)을 아무리 외쳐도 노화를 거슬릴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떻게 늙느냐가 중요하다. <좁은 문>의 작가 앙드레 지드는 ‘늙기는 쉽지만 아름답게 늙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아름답게 늙는 것은 선택사항이다. 노력 없이는 아름답게 늙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늙음이라는 우물 안에 갇혀 있지 않고, 타인을 위한 삶에 발걸음을 멈춘다면 삶의 질은 윤택해지고 더 나은 인생의 가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늙어 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나이 들음에 안주하지 않고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가며 아름답게 익어가는 조이스, 나도 그녀처럼 되고 싶다.

 

 

글 / 이정순 (글무늬문학사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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