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주의자

정치란 국가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고 조정하고 행사하는 기능 과정 및 제도를 뜻한다. 또한 사회의 가치들을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것도 정치 개념에 포함된다.

더불어 공존 공생하는 지역사회의 구성원들이 이런저런 조직과 단체를 구성하고, 소속된 지역사회의 가치들을 획득하고 행사하려는 행태도 협의의 정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전 육군대장 박찬주는 ‘공관병 갑질 의혹사건’의 당사자다. 그는 부인과 함께 공관병에게 갑질을 일삼았다는 군인권센터의 고발로 체포돼 수갑을 차고 군 유치장에 수감되는 수모를 당하며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유 무죄를 떠나서 별 4개를 달았던 대장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돼버렸다. 요즘 젊은 애들 말대로 ‘똥별’의 상징이 돼버린 거다. 게다가 공관병을 폭행하고 감금한 혐의로 기소된 그의 부인은 아직도 재판에 계류 중이다.

그는 계급 낮은 공관병에게 전자팔찌를 채우고 필요할 때마다 신호해 달려오게 했다. 한 번 누르면 식사당번이, 두 번 누르면 청소당번이, 세 번 누르면 운전병이 훈련 받은 똥개처럼 달려오게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연습으로 친 골프공을 줍게 하고, 감을 따게 하고, 기분 언짢다고 부침개를 날리고, 토마토를 잘못 보관했다고 썩은 토마토를 던졌다. 아들의 빨래와 바비큐파티를 시중들게 했다. 그들 부부에게 있어서 국군 병사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복종해야 하는 숨쉬는 동물일 뿐이었다.

그런 그가, 정치를 하겠다고 나섰다. 아니 정확히 설명하자면 어느 보수정당의 정신 나간 당대표의 표현처럼 ‘정말 귀한 분(?)’으로 국회의원 공천을 위해 영입하겠다고 모신 거다. 그러자 가늘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몇 안 되는, 제대로 된 목소리의 언론이 강하게 지적했다.

마침내 그가 공관병 갑질 의혹사건을 해명하겠다고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의 단호한 어조는 인권을 무시하고 지들 하고 싶은 대로 모든 걸 해치웠던 5공시대에 출세한 똥별다웠다.

“부모가 자식을 나무라는 것을 갑질이라고 할 수 없듯이 사령관이 병사들에게 지시하는 것을 갑질이라고 표현하면 그건 지휘체계를 문란시키는 겁니다. 감은 원래 공관병이 따는 거예요. 갑질은 없었습니다. 이것을 갑질이라고 의혹을 제기한 군인권센터 소장은 삼청교육대에 보내야 합니다. 감을 따고 골프공을 줍는 것은 사령관이 아니라, 당연히 계급 낮은 공관병이 할 일입니다. 아내가 공관병을 폭행하고 감금한 것은 병사들이 잘못해서 야단친 것뿐이에요. 저나 제 아내는 우리 공관병들을 사랑으로 감쌌습니다.”

문맥 하나하나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옹이와 가시가 박혀 있음은 물론 완벽하게 영웅주의에 빠져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공관병들의 인격을 철저하게 무시하면서도 사랑으로 감쌌다고 말한다.

그가 언급한 삼청교육대는 군사독재시절 인권유린의 상징이다. 가난하고 배곯은 수많은 사람들이 외모가 초라하고 거칠다는 이유만으로 끌려가 모진 학대와 구타로 고통 받다가 숨졌다.

그런 삼청교육대를 그는 너무도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거칠고 더럽고 부정하고 부패한 사회를 정화시킨 장본인이라도 되는 듯, 자기가 대단한 영웅이라도 되는 듯 허상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착각이다.

이런 인간성과 도덕성을 지닌 인간이 정치하겠다고 나선 사회는 암울하다. 이런 인간이 시민 속에 파고든다면 그 사회는 도덕적 카오스를 벗어나기 어렵다. 때문에 시민들이 정치에 관여해야 한다. 이런 인간은 시민들의 힘으로 확실하게 들어내야 한다.

영웅주의에 빠진 자의 속성은 자신의 생각 이념 사상이 절대적이며 완벽하다는 착각에서 헤어나질 못한다. 그는 파벌을 조장하고 해괴한 조직 만들기와 완장 두르기에 목을 멘다.

그렇기 때문에 깨어있는 시민들의 지적과 질책을 공격과 증오로 응대한다. 영웅주의에 빠진 자가 똬리를 틀게 되면 그 사회는 반드시 반칙과 분란과 혼돈으로 쇠락하게 된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라는 명언이 있다. 교민사회도 다를 게 없다. 사회적 가치를 무시하는 음침한 인간은 교민사회에서 반드시 들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웅주의에 빠진 질 낮은 인간이 설치고 다니게 돼있다.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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