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화이팅?

‘기상청 역대급 오보… 강수량, 강수위치 줄줄이 빗나가’ 지난 8월 한국의 한 신문이 홍수관련 기사를 실으면서 붙였던 헤드라인입니다. ‘안정환과 이영표가 ‘뭉쳐야 찬다’에서 역대급 진검승부를 펼쳤다’ 또 다른 신문의 연예기사 제목입니다.

몇 년 전 ‘역대급’이라는 요상한(?) 단어가 등장하더니 이제는 신문이고 방송이고 할 것 없이 ‘역대급’을 경쟁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역대급’은 조만간 신조어라는 타이틀로 사전에도 족보를 올릴 듯한 기세입니다.

하지만 ‘역대급’은 올바른 표현이 아닙니다. 위의 기사제목에서 ‘역대급 오보’는 ‘역대 최악의 오보’가 돼야 맞고 ‘역대급 진검승부’도 ‘역대 최고의 진검승부’로 표기돼야 옳습니다. 아울러 우리가 자주 접하는 ‘역대급 예산’ 또는 ‘역대급 출연진’이라는 표현도 ‘역대 최다 예산’ 또는 ‘역대 최고의 출연진’ 정도가 돼야 올바른 표기가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심코 쓰는 ‘아싸! 가오리!’라는 표현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될 말 중 하나입니다. 한국 TV에서는 필요 이상의 자막처리를 남발하는 성향이 있는데 얼마 전 한 예능프로에서 출연자가 높은 점수를 내자 ‘아싸! 가오리!’라는 자막이 따라 붙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싸! 가오리!’를 그저 신나는 일 또는 기분 좋은 일이 생길 때 쓰는 감탄사 정도로 생각하고 있고 이를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스스럼 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이 “옛날 어느 마을에 미모의 과부 3대가 한 집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천하의 난봉꾼으로 소문난 가오리장수가 이 집에…”로 시작하는 음담패설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면 함부로 쓰지 못할 것입니다.

“어, 선배 꼴리는 대로.” 30년도 훨씬 전, 후배 여기자와 함께 점심식사를 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지은씨, 우리 뭐 먹을까?” 하는 저의 질문에 황당한 대답이 돌아온 겁니다. 그 여기자는 그냥 ‘선배 먹고 싶은 거 아무거나 먹어요’라는 뜻으로 한 얘기였겠지만 ‘꼴리는 대로’라는 말 역시 그리 쉽게 쓸 수 있는 표현이 아닙니다.

비슷한 예로 ‘까라면 까야지’라는 말도 그 기원을 알고 나면 역시 함부로 써서는 안 될 말이라는데 동의하게 됩니다. 상명하복의 군대생활을 일목요연하게 표현한 ‘(가시가 돋쳐있는 밤송이를 XXXX로) 까라면 까야지’이기 때문입니다.

남녀노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쓰고 있는 ‘화이팅’도 바로 잡아야 할 표현입니다. 운동선수들은 물론, 언제 어디서나 ‘힘내라’ 또는 ‘잘해보자’ 등의 의미로 화이팅을 외치곤 하는데 이 또한 잘못된 말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전장에 나가면서 ‘싸우자’는 의미의 ‘파이트 (Fight)’를 일본식 발음 ‘화이또’로 외친 게 그 근원입니다. 실제로 영미권 어느 나라에서도 이 같은 구호는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화이팅’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 말… 이제부터라도 우리 말 ‘아자아자’로 바꾸면 좋겠습니다. 사전에는 아자아자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잘 극복하자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 혹은 용기를 주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잘 극복하라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로 표기돼 있습니다. 오랜 세월 일제의 잔재로 남아있었던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뀌었듯이 한국정부 차원에서 아니, 최소 신문 방송을 비롯한 매체들에서 파이팅 대신 아자아자를 쓰는 범국민적 캠페인을 벌여나간다면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워낙 신조어가 난무하고 줄임말도 넘쳐나는 게 현실입니다. 시드니만 해도 스트라스필드를 ‘스트라’로 줄여 부르고 있는지 이미 오래 됐고 웨스트 라이드를 ‘웨라’로 줄이더니 최근 들어서는 이스트우드도 ‘이우’로 줄여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 또한 매주 글을 쓰면서 잘못된 표현을 쓰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지만 ‘아싸! 가오리!’나 ‘화이팅!’ 같은 표현은 특히 모든 사람들이 뜻과 힘을 같이 해 빨리 바로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동안 모르고 쓰고 있었으면 바로잡고 이제부터 안 쓰면 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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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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