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표현

사랑을 표현하는덴 단도직입적인 말 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데…

울음을 참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여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저러다 자칫하면 쓰러져 통곡이라도 할 것 같다. 생을 마감하는 아버지와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나누지 못했던 모양이다. ‘포프리 쇼’ 강연 후 방청객이 개인적 문제를 놓고 강사에게 질문과 해답을 구하는 시간이었다.

 

01_한국사람들은 사랑이나 감정에 대해 말하지 않기 때문?!

술에 취해 어머니를 때리고 욕하는 것으로 고달픈 삶의 화를 푸셨던 아버지가 말년에 병원에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임종을 바라보는 자리에서 밉고 원망스러웠던 기억을 누르고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결국은 준비해간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버지, 사랑해요.’ 그녀가 애써 하려던 말이었다. 요즘 그녀에겐 어머니가 숙제다. 아버지 때처럼 쓰라린 기억을 남기지 않으려고 어머니에겐 평소에 사랑한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꺼내고 싶은데 그 일이 쉽지 않다고 했다. 말끝마다 핀잔과 폭언을 일삼는 분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까?

미국 소설계에서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으로 자신의 위치를 굳힌 이민진 작가는 재미교포 2세 ‘케이시 한’이라는 여자를 책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나는 우리가 함께 성장하는 것을 상상했단다. 그것 알고 있었니? 케이시! 나는 너를 무척 사랑하고 아낀단다.” 남자친구와 결별을 선언하고 눈물을 쏟는 케이시에게 헤어진 남자친구의 엄마가 한 말이다.

케이시는 자신의 부모님은 이런 말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자기의 엄마와 아버지를 비롯한 한국사람들은 사랑이나 감정에 대해서 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02_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존중하는 태도 보여주는 분들이라면…

그래서인지 요즘 텔레비전 드라마나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들은 어느 때보다도 사랑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보게 된다. 잘 안 되는 부분에 대한 의도적인 노력이리라.

예전에 친구와 부활절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예배 후 축도하시는 목사님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의미로 서로에게 ‘축하합니다’라는 말을 하고 헤어지라는 당부를 하셨다.

많은 사람과 섞여 계단을 내려오면서 나는 주변 사람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는 중이었다. 그런데 약간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다. 나의 축하 인사를 등 뒤에서 듣고 있던 젊은 여자가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왜요? 무슨 일인데요?” 하고 물어온 것이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대답하기 멋쩍었는지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렸다. “아니, 무슨 일로 축하하는데요?” 어떤 좋은 일에 자기만 따돌림을 당하는 줄 알았나 보다. 그녀는 집요하게 축하의 이유를 캐물었다.

“예수님이 부활해서 축하한다잖아!” 내 친구가 던진 퉁명스러운 답변에 호기심 많았던 여인이 주춤하며 한발 물러섰다. 그 틈에 나는 친구에게 등을 떠밀려 주차장까지 나왔다. “으이그!” 일그러지던 그녀의 얼굴이 기억날 때마다 나는 공연히 낯이 뜨거워진다.

이민자의 딸인 케이시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과연 부모님의 사랑을 언어로 확인 받지 못해서일까? 그녀의 부모님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삶의 모습을 케이시에게 강요하는 대신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 주는 분들이라면….

 

03_불안해하거나 화를 내기보다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당신들이 바라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고 불안해하거나 화를 내기보다는 자식을 바라볼 때마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 분들이라면…. 그래도 케이시가 ‘얘야, 널 사랑한단다’라는 말을 듣지 못해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상실감을 겪으며 괴로워할까?

“엄마, 김치를 어떻게 담아서 이렇게 맛있어?” “요즘 연속극 뭐가 재미있어?” 어머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지 못해 애를 쓰는 여인에게 김창옥 강사는 사랑을 표현하는데 단도직입적인 말 외에도 여러 가지 다른 방법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강사의 말처럼 평생을 거칠고 험하게 살아온 어머니에게 ‘사랑해요’라는 말은 자신의 삶에 어울리지 않는 언어적 유희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그런 말은 어린아이들의 낯간지러운, 자신을 희롱하는 말처럼 들려 오히려 그분의 울화를 돋울 수 있을지 모른다.

누군가 ‘언어는 믿을 게 못 된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언제나 오래 참고’로 시작하는 구체적 행동을 요구하는 사랑이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이리라. 딸이 전하고자 애쓰는 사랑의 표현이, 그것이 어떤 것이 될지라도 그 어머니에게 마침내는 ‘사랑해요’라는 말로 들려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글 / 박해선 (글벗세움 회원·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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