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형님의 살아온 이야기가 책으로 엮어졌다. 회고록이다. 제목이 <1942년생 최인규의 특별한 기억>이다. 내 형님은 유명인사가 아니다. 권력에 발 담근 세도가도 아니고, 사업을 일궈 부를 움켜쥔 사업가도 아니다.
그렇다고 삶을 고민하게 하는 어록을 남기는 사상가도 철학자도 아니다. 더더욱 글 쓰는 것으로 밥벌이하는 글쟁이도 아니다. 그저 짓밟히고 뭉그러져도 결코 드러눕지 않는 잡초처럼 죽지 않고, 부모 형제와 가족을 사랑으로 품어 안고 살기 위해 몸부림친 한 생명일 뿐이다.
어떡하든 살아야 한다는 생존본능으로, 사방이 얼음덩어리로 꽉 막힌 어둡고 차가운 북극의 얼음 구멍을 찾아 올라와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물보라를 뿜어대는 작은 고래일 뿐이다.
내 형님은 당신의 회고록에서 말했다. “내가 살아왔던 지난 일들을 글로 쓰다 보면 흔히 누군가는 자서전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말해 나의 살아온 과거는 매사에 부족했고 부끄러워 타인에게는 결코 귀감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감히 자서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이제는 70여년이 지난 나의 모든 기억이, 비록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세월이 더 흐를수록 남아있는 이 기억마저 더 희미해져 사라질 것이 두려워 사랑하는 손녀 손자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내가 기억하는 진실만을 솔직하게 정리하는 내 삶의 이야기로 대신하고자 한다.”
사람들은 회고록은 세상에 널리 알려진 흠결 없고 잘난 체 하는 사람들만이 쓰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내 형님은 흠결 없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내 형님의 회고록은 실체를 실체로서 마주하고, 사실을 사실로서 마주하는 당당한 삶이다.
내 형님의 회고록은 특권과 반칙, 불공정이 난무하는 사회에 던지는 화두다. 그러면서 남겨진 어쩔 수 없는 후회와 아픔을 희망으로 전환하려고 몸부림친 굴곡의 생애다.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미사여구로 치장하지 않는다. 고통스럽지만 감정에 기대지 않고 담담하다.
내 형님이 살아온 이야기에서 마주치는 이야기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다’는 언어의 유희가 아니다. 그저 ‘부끄러움 많은 삶을 돌아보면서 성찰하고 싶다’는 평범한 인간의 고뇌다.
더불어, 아프고 힘겨운 세상을 눈물 나도록 바르고 열심히 살아왔던 거짓 없는 고백이다. 그것은 어쩌면 나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또 어쩌면 나와 같은 사람의 이야기일 수도 있을 거다.
나는 내 형님의 회고록을 내 이웃과 지인들에게 나눠줬다. 그 회고록 속에는 나의 남루했던 (지금도 변함없이 남루하지만) 지나온 날들이 언급돼 있다. 가까운 사람들이 걱정했다. 당신의 누추하고 초라하고 거친 날들이 알려지면 좀 부끄러워지지 않겠냐는 걱정 아닌 걱정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모른다. 가깝다고 하는 아내도 나를 잘 모른다. 나는 바르고 진솔하고 온유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자식들의 삶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무능력자다. 그렇다고 ‘도덕적 순결주의자’도 아니다. 나의 지나간 시절은 음흉하고, 거짓을 말하고, 거칠고, 헐크가 돼 옷이 찢어지기도 했다.
나는 때론 교통법규를 위반하고, 보는 사람이 없을 땐 길거리에 침을 뱉기도 하고, 음주운전에 걸려 벌금을 물고, 술에 취하면 사나운 승냥이가 되기도 했다. 나의 지나온 날들은 대충 아무렇게나 살아온 못나고 어리석은 짓거리의 기억들이다.
그러나 다만 한가지, 그런 나와 그러면 안 된다는 또 다른 나는, 그런 행동을 저지른 후에는 한숨을 쉬면서 다투긴 했다. 하지만 그런 한심하고 몽매한 행태는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런 지난 날들을 변명으로 채색할 마음은 없다.
내 형님이 내 글을 모아 책으로 엮어내자고 했다. 나는 정중하게 사양했다. 내가 오랫동안 끄적거려온 글들은 깊은 울림이 없는, 그저 회한과 아쉬움에 급급한 넋두리다.
또 하나, 70살 넘게 살아오면서 뭐하나 당당하게 내세울 것이 없다. 나도 바르고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냥 남루한 인생일 뿐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남겨줄 나의 이야기가 없다.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