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테리아 이야기 ②

아내가 제왕절개로 딸을 낳자 남편은 예상치 못한 행동을 실행에…

한국 TV 프로그램에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한국에 사는 캐나다 남자와 결혼을 하여 아이 네 명이 있고 곧이어 다섯째 아이를 갖게 되는 한국 엄마의 사연이었다. 그 가족에 얽힌 여러 분야의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졌지만 내 관심은 엄마가 다섯째 아이를 이번에도 제왕절개로 분만하는 과정에 있었다.

 

01_엄마 코알라는 박테리아로 가득한 분비물을 만들어 새끼에게

코알라 (koala) 새끼는 태어난 지 6개월이 되면 어미 주머니에서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때가 바로 엄마 젖을 떼고 유칼립투스 (eucalyptus) 나뭇잎을 먹는 시기라고 한다.

이 나뭇잎은 거칠고 독소가 있으며 영양가는 전혀 없다는 것이 우리의 시각이다. 그러나 코알라는 장내에 있는 박테리아를 이용하여 이 보잘것없는 나뭇잎에서 필요한 에너지와 영양분을 충분하게 뽑아낸다니 놀랍다.

이유식을 해야 하는 그 시기에 새끼 코알라 장내에는 이 나뭇잎을 분쇄할 충분한 양의 박테리아가 없다고 한다. 이때를 맞추어 엄마 코알라는 박테리아로 가득한 파스타 같은 끈적끈적한 분비물을 만들어낸 후 새끼에게 먹인다는 것이다.

새끼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박테리아 씨앗을 엄마로부터 받아 장내에 키우기 시작하여 소화시키지 못할 것 같은 유칼립투스 나뭇잎을 평생의 주식으로 만드는 첫 단계가 되는 셈이다.

어미가 자식에게 필요한 박테리아를 물려주는 행위는 포유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곤충, 새 또는 물고기에서도 목격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들은 어떠한가?

 

02_태아는 평생 필요한 박테리아 씨앗을 자궁, 자궁경부, 질 통해 서

외부의 온갖 균으로부터 철저하게 보호되어 있던 자궁 속의 태아는 양수가 터지고 나서야 비로소 외부 세계의 균들과 첫 접촉을 시작한다. 이 만남을 나쁘게만 볼 수 없다. 왜냐하면 태아는 평생 필요한 박테리아의 씨앗을 자궁, 자궁경부 그리고 질을 통해 나오면서 얻게 되기 때문이다.

자연분만 과정에 수반되는 통증과 더불어 자궁경부가 이완되면서 흘러나오는 점액에 태아는 무방비로 노출이 된다. 그러면서 태아는 머리와 더불어 입 부분이 산도 밖으로 먼저 나오면서 자연스레 엄마의 질과 항문에서 나오는 분비물과도 접촉을 하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는 필요한 박테리아를 받기 때문에 엄마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태어나는 아이에게는 축복인 셈이다. 신은 이런 식의 분만과정을 통해 앞으로 살아가야 할 굳건한 힘과 의지를 새 생명에게 베푸는 것이다.

막 태어난 아이의 장에서 추출한 박테리아를 분석해보면 엄마의 피부나 아빠의 피부에 있는 것보다 엄마의 질에 있는 박테리아 구성원들과 가장 흡사하며 또한 엄마 장 내에 있는 박테리아 구성원보다는 훨씬 더 단순하다고 한다.

 

03_아내의 질에서 흘러나오는 액을 묻혀 아이의 온 몸과 입에 발라

태아에게는 꼭 필요한 균들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대부분의 균들이 락토바실러스 (Lactobacillus)라고 하는데 우유가 요구르트로 발효가 될 때 관여하는 바로 그 균이다.

이 균들은 다른 세균들의 번식을 막아줄 뿐 아니라 신생아가 먹는 우유를 소화시켜 에너지로 만들어준다. 이 단순한 박테리아를 가지고 생을 시작하는 태아는 점점 다른 음식을 소화할 다양한 균들이 필요하며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얻어지고 또 저장을 하게 된다. 일종의 박테리아 진화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과학적인 사실을 잘 아는 장내 미생물학자였던 미국의 롭 나이트 (Rob Knight) 박사는 자신이 콜로라도대학 (University of Colorado)에 근무하던 2012년, 아내가 어쩔 수 없이 제왕절개로 딸을 낳게 되자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행동을 실행에 옮긴다.

분만실에서 의료진들이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거즈에 아내의 질에서 흘러나오는 액을 묻혀 아이의 온 몸과 입에 발랐던 것이다. 자신의 딸이 자연분만을 통해 얻게 될 박테리아를 아빠가 대신하여 딸에게 선물한 셈이다. 위급한 상황에 아빠가 보인 대단히 용감한 딸 사랑이었다고 아니 할 수 없다.

 

글 / 박석천 (글벗세움 회원·챨스스터트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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