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DIS서비스가 없었더라면…

큰 아들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마비와 실어증 겪어

암을 비롯한 갖가지 질병이나 여러 사고 등은 예고 없이 찾아와 우리의 일상을 흔들어 놓는다. 이민자들의 경우 호주의 복지시스템에 익숙지 않아 어려운 일을 당하면 정부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거기에 언어문제까지 겹쳐 더 어려움을 겪는다. 본 칼럼에서는 뜻하지 않게 만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전문복지기관의 도움으로 이를 잘 극복한 사람들 그리고 사랑으로 이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이를 통해 호주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실제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호에서는 장애 아들을 돌보며 힘겹게, 그런 가운데서도 희망 속에서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어느 어머니의 이야기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01_호주로부터 걸려 온 한 통의 전화는 나의 삶을 송두리째…

내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둘 다 호주로 가게 되어 나 혼자였지만 한국에서 비교적 평온하게 살고 있었다. 하지만 2017년 어느 날 호주로부터 걸려 온 한 통의 전화는 나의 삶을 송두리째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던 그 날을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전화선의 목소리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던 큰 아들이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급하게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한달 후인 10월 호주에 도착했다. 당시 내 나이 65세였다.

호주에서 사는 것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데다가 더구나 뇌졸중으로 쓰러진 장성한 아들을 돌보는 처지로 이국 땅에서 살게 될 줄은 정말 상상하지 못했다.

호주에서 공부를 마친 후의 미래에 대해 나름 꿈도 많고 전도가 유망했던 청년, 그 아들이 갑자기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상황인데다가 그런 아들의 유일한 의지의 대상인 나는 호주 시스템도, 영어도, 아는 이도 없는 정말 고립무원의 막막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다행히 큰 아들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병원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NDIS를 신청하게 되었고 신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NDIS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이후에 카스 장애인복지서비스팀과 연결되어 코디네이터의 도움으로 정부주택도 신청하고 퇴원 이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받고 있다.

현재 아들의 상태는 쓰러지면서 생긴 뇌 손상으로 인지능력, 판단력, 기억력이 부족하고 감정조절이 잘 안 된다. 그리고 실어증으로 인해 말을 거의 할 수 없는 데다가 몸의 오른쪽 부분은 마비가 되어서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아들이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못하니까 밤에 자면서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 너무 걱정이 되어 아들 방을 자주 확인하느라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날들도 많다.

 

02_작은 아들마저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게 돼서

호주의 장애인복지서비스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상황에 있을까. 상상이 잘 안 된다. 카스로부터 아들과 내가 받고 있는 서비스는 우리에게는 ‘생명의 동아줄’과 같다. NDIS관련 서류작업을 포함한 서포트 코디네이션서비스, 개인위생, 가사, 교통지원 등 워커분들로부터 다양하게 받는 서비스는 일상의 실제적인 일상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 또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다른 가족들과의 모임, 한인 케어러그룹과의 만남은 얼마나 내게 큰 위로를 주는지 모른다.

호주에 온 날부터 지금까지 힘들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이 가장 힘들다. 가족이라곤 아들 둘뿐인데 큰 아들이 처한 상황만으로도 나 혼자 감당하기 너무나 버거운데다가 우리 집안의 기둥이었던 작은 아들마저 올 1월 말에 사고로 하늘나라로 떠났다.

평소 심장이 좋지 않아 정기적으로 병원진료를 받고 있던 나는 그 소식을 듣고 너무 쇼크를 받아 쓰러져서 한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카스에서 혼자 있는 큰 아들을 위한 24시간 케어서비스를 제공해주어 정말 큰 다행이었다.

우리 가족에게 닥친 너무나 힘든 고비를 그래도 잘 넘어온 것 같다. 그 동안 장애가 있는 형과 호주의 모든 것이 낯선 나를 위해 통역이며 일상생활의 작은 일까지 책임지고 맡아서 처리해주었던 작은 아들, 그 아들은 우리 가족에게는 세상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작은 아들마저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게 되어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기도 하고 앞이 깜깜하고 막막하기만 했다. 이제는 내가 모든 일을 책임지고 아들도 돌봐야 하는데 영어 한마디 못하는 내가 앞으로 이런 저런 서류문제나 주택문제 등 여러 가지 일들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걱정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날들이 많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래도 한계가 있기에 답답함과 걱정, 염려가 나를 사로잡는 날도 많다. 동생을 잃은 충격으로 큰 슬픔 가운데 있는 큰 아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정신을 차릴 수 밖에 없다. 이런 나의 안타까운 처지가 정말 하늘에 전달된 것일까.

 

03_카스 코디네이터는 수호천사 같은 정말 고마운 분

카스와의 만남은 하늘에서 내려 온 선물 같다. 카스 코디네이터는 작은 아들이 하늘나라에 간 후 처리해야 될 일들, NDIS 관련업무, 하우징 등 크고 작은 많은 일 처리를 도와주고 있다. 카스 코디네이터는 나한테는 수호천사 같은 정말 고마운 분이기에 그 고마움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아들과 함께 호주에서 살기 위해 기본적인 영어랑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일들을 하고 있다. 길을 묻는 일을 포함, 집 주소, 나와 아들에 관한 것, 적어도 스트라스필드나 이스트우드 등 한인 밀집지역에 가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방법, 또 핸드폰과 인터넷 사용법도 배우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은 없지만 포기하지 않고 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져야 나도 자신감이 생기고 살아가는 일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새로 배워가는 일들은 집에 카스 워커분들이 오셨을 때 하나씩 도움을 주고 있어 많이 나아지고 있다.

앞으로 작은 바램이 있다면 큰 아들이 현재 받고 있는 치료들을 잘 받는 가운데 병이 호전되어 사람들이랑 대화도 가능하고 재활을 잘해서 몸의 전반적인 기능들도 좋아졌으면 하는 것이다. 그게 내 가장 큰 소망이자 바램이다.

현재 아들은 정기적으로 물리치료, 언어치료, 수중치료, 음악치료, 미술치료 등을 받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아들이 모든 치료를 다 좋아하고 치료 선생님이 집에서 연습하라고 내준 숙제를 성실하게 잘 따라가고 있다. 아들과 내가 힘을 내서 서로 의지하며 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아들과 나를 지속적으로 서포트 해주고 있는 카스의 코디네이터분들과 매니저, 여러 워커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덕분에 어려운 시간들을 잘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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