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씨?!

두 놈 다 마음에 안 듭니다. 한 녀석은 저만 보면 주먹만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지러지듯 울어대고 또 한 녀석은 뜬금 없이 저를 ‘아이씨!’라고 부릅니다.

얼마 전 100일을 지내고 이제 5개월째로 접어든 봄이, 에밀리 (Emily)는 낯가림이 유독 심합니다. 그나마 여자들한테는 좀 덜한데 남자들한테는 새침하기가 이를 데 없어 아주 아주 까칠한 반응을 보입니다.

지 아빠를 제외한 다른 남자들을 보면 입을 삐쭉삐쭉하다가 이내 ‘으앙!’ 울음을 터뜨립니다. 두 눈에서는 우박(?) 같은 눈물이 쉴새 없이 떨어지고 커서 성악가가 되려는지 목소리도 매우 우렁찹니다. 봄이의 그 같은 반응은 저한테도 예외가 아닙니다.

가끔은 어쩐 일인지 저를 보며 생글생글 웃기도 하고 뭐라고 옹알이도 하지만 그게 오래 가거나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지난 일요일에도 저를 보고 함박웃음을 짓길래 크게 감동했는데 3초만에 울음이 터졌습니다. 아마도 잠시 동안 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빠와 착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엄마 아빠가 봄이랑 자주 안 만나니까 더 하지. 엄마 아빠는 이든이만 좋아하잖아. 우리 집에도 이든이 때보다 훨씬 적게 오고….” 딸아이의 조금은 볼멘소리에 문득 돌이켜보니 살짝 그런 듯도 싶습니다.

에이든이 태어나자 우리는 녀석을 보기 위해서 지금보다는 훨씬 많이 딸아이 집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첫정’이 무서운 겁니다. 우리는 지금도 어디를 가면 훈이, 에이든 (Aiden)에게 줄 맛있는 것과 장난감을 가장 먼저 생각합니다.

녀석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못 말릴 정도인 건 사실이지만 녀석도 예쁜 짓, 사랑 받을 짓만 골라서(?) 합니다. 항상 활달하고 밝은 녀석이 눈을 찡긋거리며 애교를 부리면 우리는 그야말로 ‘무장해제’입니다. 평소 지 할머니를 “안니니!”라고 부르는 녀석이 가끔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이모!” 하고 불러주면 ‘이모 같은 할머니’는 녀석에게 완전히 녹아 듭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저한테는 “아이씨, 아이씨!” 합니다. 어찌 들으면 아저씨를 부르는 소리 같기도 하지만 녀석 딴에는 힘차게 ‘할아버지’를 부르는 겁니다. 가끔씩은 지네 집에서 ‘아이씨’를 연발하며 엄마를 조르다가 페이스톡이 연결되면 녀석은 반가움 반, 쑥스러움 반으로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한참 동안 영상통화를 하고 나서 빠이빠이를 하자면 녀석은 또 그게 싫은 모양입니다. 어떨 때는 ‘이든이가 할아버지를 보고 싶어한다’는 딸아이의 말에 한달음에 녀석에게로 달려갑니다. 우리가 가까이 살고 있는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지난 토요일이 에이든의 세 번째 생일이었습니다. 딸아이 부부와 봄이, 훈이 그리고 아들녀석까지 우리 일곱 식구가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맛있는 음식도 먹고 예쁜 생일케익도 자르고… 꿀과 행복이 넘치는 시간이었습니다.

녀석은 아직도 촛불을 끄는데 입으로 ‘후~우!’ 소리를 냅니다. 하지만 이제 조금 더 컸다고 촛불 끄는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생일선물로 받은 장난감 보따리를 펼쳐놓은 녀석은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그날도 우리의 까칠한 봄이는 저를 보며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좀더 자주 보고 시간이 지나면 할아버지를 보고 악을 쓰며 우는 일은 없어질 겁니다. 훈이도 아직은 ‘아이씨’를 연발하고 있지만 머지 않아 ‘할아버지’라고 똑바로 발음하게 될 겁니다.

아직도 헤어질 때면 녀석 몰래 나와야 하고 우리 집에 오면 지네 집에 안 가겠다고 생떼를(?) 쓰는 녀석이지만 가끔은 의젓하게 빠이빠이를 해주기도 합니다. 그렇게 녀석이 조금씩 커가는 모습과 함께 우리의 사랑, 우리의 행복도 그 크기를 무한대로 가져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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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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