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향한 민중들의 항쟁, 1987년 6월 항쟁 기폭제로

광주민중항쟁으로도 일컬어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시민과 전라남도민이 중심이 돼 이뤄졌다. 이들은 조속한 민주정부 수립,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 및 계엄령 철폐 등을 요구하며 열흘 동안 민주화운동을 전개했다. <구성/정리 김해선 기자>

 

01_헌정파괴와 민주화 역행에 항거

당시 광주시민은 신군부 세력이 집권 시나리오에 따라 실행한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로 발생한 헌정파괴와 민주화 역행에 항거했다. 이에 신군부는 사전에 시위진압 훈련을 받은 공수부대를 투입해 이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해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됐다.

이후 무장한 시민군과 계엄군 사이에 지속적인 교전이 벌어져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한국 내 언론통제로 독일 제1공영방송 ARD의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그 참상을 세계에 처음으로 알렸다.

1995년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으로 희생자 보상 및 희생자 묘역 성역화가 이뤄졌고 1997년 5.18 민주화운동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해 1997년부터 한국정부 주관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북한에서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인민봉기’라 부르며 해마다 기념하고 있다.

 

02_반민주, 군사독재 야만성 세계에 폭로

광주민주화운동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영화로는 ‘꽃잎, 화려한 휴가, 26년, 택시운전사’ 등이 있으며 2011년 5월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정식으로 등재됐다.

광주민주화운동은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결정적 계기가 됐다.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과 민중의 의지를 대내외에 드러냈고 반민주, 군사독재의 야만성을 세계에 폭로함으로써 군사독재체제의 입지를 크게 약화시켰다.

민주주의를 향한 민중들의 항쟁의지를 보여준 사건이었으며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광주민주화운동은 다른 국가의 민주화운동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네스코는 광주민주항쟁은 1980년대 한국뿐만 아니라 필리핀, 태국,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등지에서 일어난 여러 민주화운동에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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