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토요일마다 부모님의 강요로 한글학교에 나간 덕분이라 했다

사실 나는 이민 오기 전부터 한글학교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내가 그를 처음 본 것은 한국에서 어떤 기업의 IT 프로젝트에서였다. 그는 세계적으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미국의 비즈니스 컨설팅회사에서 한국법인으로 파견 나와 3년째 지내는 중이었다.

 

01_외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한국어를 꾸준히 접한다는 건…

약간 교포냄새 나는 한국어 발음이었지만 별로 어색하지 않았고 70년대 중반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부모님 슬하에서, 그의 발음대로 흉내내면 필라델피아가 아닌 ‘휠러뒐퓌아’에서 태어났다는 그를 만나는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질문을 했다. “한국말을 어떻게 그렇게 잘해요?”

그는 토요일마다 부모님의 강요로 한글학교를 빠지지 않고 나간 덕분이라 말했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그 시절이 ‘아주 터프했다’라고 했지만 그 덕에 대학시절 1년간 한국에 있는 Y대학 교환학생과 직장생활 중 한국 파견 기회가 생겼을 때 자원할 자신이 있었다 한다.

그와 달리 강요를 받지 않았던 그의 두 여동생은 결국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어린 시절 한국어를 배울 시기를 놓치지 않았고 한국에서 공부도 해 영어와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한국의 큰 기업 프로젝트로 흔치 않을 여러 기회까지 잡은 그의 모습은 나에게 매우 부러움을 자아냄과 동시에 멋있게 보였고 – 실상은 그의 부모님의 공이지만 – 그 당시 이민을 고려하던 나에게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예시가 되었다.

그 이후 호주로 이민을 오고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나이가 되어감에 따라 갈수록 외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꾸준히 접하게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며 아이들 자체에게도 배우는 것이 그의 말대로 정말 ‘터프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한글학교의 중요한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02_코로나19 상황에서도 온라인으로 토요일마다 한글공부를

나의 게으름 덕에 집에서 아이들에게 별도로 한글교육을 따로 시키지 못하지만 호주한국학교를 다님으로써 아이들이 한국어를 말한다는 것에 대한 당연함과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고 평생의 기억으로 존재할 성장기에 한국어와 문화에 대한 지식을 심어주는 것 만에도 큰 감사함을 느낀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호주한국학교를 등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온라인으로 토요일마다 선생님을 만나서 한글공부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모습에서 그 효과를 절로 느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사람이 한글을 배우고 한국어를 잘하는 것에 어떤 목적을 두는 것이 좀 그렇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한국어를 잘한다는 것은 미래에 아이들에게 선택지 하나가 더 생기고 큰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더구나 한국 경제성장과 한류 붐 덕에 일부러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엄청 늘어나는 상황이 아닌가.

학창시절 내내 영어를 배우고도 이민 와서도 영어에 악전고투를 해야 하는 이민 1세대 입장에서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2개 국어와 다양한 문화를 배울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란다는 것은 너무나도 부러울 뿐이다. 이런 기회를 그냥 지나치고 간다면 나중에 나뿐만 아니라 아이 스스로에게도 너무나 후회가 될 것 같다.

자신의 여동생들과 부모님 사이에 복잡한 문제나 미묘한 감정을 설명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통역을 해야 했다는 그 사람의 말이 당시에 쇼킹하게 들렸기에, 나와 우리 아이들 간에 그런 일이 나중에 생기지 않도록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오늘도 아이들은 나와 한국어로만 대화하고 있고 또 개학 후에는 매주 한국학교에 갈 것이다.

 

글 / 정호연 (호주한국학교 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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