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밤 낚시를 마치고 텐트로 돌아가는 길, 처음에는 워낙 커서 무슨 바위덩어리(?)인 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 동네 터줏대감쯤 됐던, 나이도 꽤 많았던 그 웜뱃은 사람들에 익숙해진 탓인지 가까이 다가가 아는 체를 해도 별 신경 안 쓰고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모닥불도 꺼지고 밤 열두 시가 가까워졌을 무렵에는 어디에서 몰려왔는지 30여 마리의 캥거루들이 텐트 주변에 모여 있었습니다. 평소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봐왔던 녀석들의 치열한 권투(?) 장면도 눈앞에서 볼 수 있었고 개중에는 업어치기(?)를 하는 놈들도 있었습니다.

4년 전 크리스마스 휴가 때 지인가족들과 가졌던 1박 2일 뉴니스 (Newnes) 캠핑의 추억입니다. 모닥불 그리고 금세라도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던 밤 하늘의 별들과 함께 지금도 그날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곤 합니다.

그리고 지난주… 호주에서의 두 번째 캠핑을 가졌습니다. 고마운 선배 지인부부가 번개(?)제안을 했고 우리는 주저 없이 그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지난번의 뉴니스보다 조금 더 위쪽에 있는 글렌 데이비스 (Glen Davis)의 Coorongooba Campground였습니다.

우리 집에서 212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그곳에서 지낸 2박 3일은 뭔들 안 좋은 게 없었습니다. 비좁은 텐트에서의 이틀 밤은 5스타 호텔 못지 않았고 뭘 먹어도 맛 있지 않은 게 없었습니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나눈 이런 이야기와 저런 생각들은 모조리 예쁜 추억이 됐습니다.

뉴니스 녀석들보다 훨씬 더 예쁘게 생긴 그곳의 캥거루들이 특유의 이벤트(?)로 우리를 반겨줬고 귀엽게(?) 생긴 포썸 녀석은 개구쟁이 짓으로 커다란 웃음을 선사했습니다. 우리가 시드니를 비운 동안 이곳에는 비가 제법 왔다는데 그곳은 첫날만 잠시 아주 여리게 비가 흩뿌렸을 뿐 캠핑하기에 최적의 날씨를 제공해줬습니다.

별 기대 없이 던져 넣었던 낚싯대에 제법 쓸만한, 커다란 장어들이 달려 나왔을 땐 환호가 터졌습니다. 무서울 정도로 진하게 쏟아져 내리던 밤하늘 별들의 향연… 그 한가운데에서 남십자성이 우리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한 주 한 주가 바쁘고 정신 없는 요즘, 전화도 인터넷도 안 되는 곳에서 속세(?)를 잊고 살았던 그 시간들은 충분한 힐링의 기회가 됐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캠핑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강원도 주문진에서 있었던 기아자동차 고객 캠프… 우리도 기아자동차를 타고 있었던 덕에 널찍한 자동차 캠프장에서 작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 아이들은 엄마 아빠, 할머니와 캠핑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추억들을 남겼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그런 기회를 자주 갖지 못했던 빵점 짜리 아빠의 무심함에 대해서도 반성을 해봅니다.

요즘, 아내와 저는 좋은 곳에 가면 늘 우리 아이들 생각을 하곤 합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금은 머리가 다 커버린 우리 아이들보다는 에이든과 에밀리가 더 눈에 아른거립니다. ‘정작 내 자식 클 때는 모르고 있다가 손주들 크는 거 보면서 그런 걸 느끼게 된다’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입니다.

앞으로 두 녀석이 조금 더 크면 캠핑이 됐든 여행이 됐든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녀석들이 지 엄마 아빠와 함께 다니는 시간이 훨씬 많고 우리에게는 가끔씩이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드물게는 이른바 3대가 함께 움직이는 여행의 기회도 더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몇 년 전, 에이든과 함께 베리 (Berry) 그리고 이든 (Eden)에서 가졌던 가족여행이 우리에게는 아주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됩니다.

좋은 곳에 가서 우리 아이들 다음으로 떠오르는 분들이 코리아타운 애독자들입니다. 몰라서 못 가는, 차일피일 미루다 못 가는 좋은 곳을 코리아타운을 통해 부부끼리, 연인끼리, 가족끼리 그 즐거움을 나눴으면 하는 바램 때문입니다. “요즘은 왜 좋은 데 소개 안 해주세요?” 하는 분들의 수가 그 반대의 생각을 가진 분들보다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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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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