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스터트 국립공원

2021년 7월… 탐험가 찰스 스터트의 발자취를 따라가보다

코로나19 델타변이가 막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7월 초, 아직은 혼자인 상태를 유지해야 했지만 나를 포함해 나이가 60-70대인 부류는 스멀스멀 다가오는 권위적 구속에 대한 반항(?)으로 일탈을 결심했다. 반드시 존재할 것이라 굳게 믿었던 호주 내륙의 바다 (inland sea)를 찾아 나섰던 찰스 스터트 일행의 1845년 발자취를 더듬기 위해서였다.

 

 

Day 1

 

01_닝건 초입에는 2015년 세워진 철제 조각품 빅 보건이

자동차 한대에 나를 포함해 4명 그리고 다른 차의 70대 부부까지 도합 6명이 오렌지 (Orange)에서 여정을 시작한 시간은 새벽 5시.

찰스 스터트 국립공원 (Charles Sturt National Park)은 시드니가 속한 NSW주가 다른 두 개의 주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북서쪽에 걸터앉아 있다. 오렌지에서 한 시간 거리의 베터스트 (Bathurst)에 사는 나는 이른 출발시간에 맞추기 위해 잠을 설친 것은 당연했다.

미첼 고속도로 (Mitchell Highway)를 따라 북쪽에 있는 더보 (Dubbo)를 지나자 우리는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닝건 (Nyngan)으로 향했다. 보건 강 (Bogan River)을 가슴에 안고 형성된 닝건은 양모와 축산업 그리고 밀 농사가 주요산업이지만 초창기 유럽인들이 이곳에서 저지른 원주민 대규모 학살로 인해 슬픈 기색이 강변 곳곳에 덕지덕지 묻어 있는 느낌이다.

부끄러운 역사적 사실을 희석하고자 함이었을까? 닝건에 들어서는 초입에는 2015년에 세워진 철로 된 조각품 ‘빅 보건 (Big Bogan)’이 자리를 잡고 있다. 물고기가 걸려 있는 낚싯대를 들고 있는 중년남성이 객지인들에게 호객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닝건부터는 베리어 고속도로 (Barrier Highway)가 시작된다. 북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광대한 산맥인 베리어 레인지 (Barrier Range)가 이곳을 통과하는데 지대가 높아 물길의 흐름이 강줄기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래서 불리어진 베리어 고속도로를 따라 코바 (Cobar)와 윌케니아 (Wilcannia)에 도착한다. 물론 코바는 19세기 구리 (copper) 채굴 광산으로 명성을 떨친 곳이지만 우리 일행은 주마간산 (走馬看山) 격으로 코바를 스치듯 지나 곧장 윌케니아로 향했다.

 

02_메말라 있을 거라 생각한 강이 펄펄 살아 움직인다

그곳에서 과감하게 북으로 방향을 잡아야 했으므로 당연히 윌케니아에서 자동차 기름도 넣고 점심을 하기로 했다. 하나밖에 없는 주유소지만 시드니로부터 날아온 실내 마스크 착용 규칙은 머나먼 오지에서도 잘 지켜지고 있었다.

19세기 당시 수확된 밀과 양털을 실어 나르던 배들이 쉴새 없이 다녔던 달링강 (Darling river)이 윌케니아 목덜미를 감싸고 있어 포근한 느낌이다. 최근 내린 비로 인해 제법 수량이 풍부해진 달링강에서 긴 부리와 그 밑에 신축성이 뛰어난 주머니를 가진 펠리칸 (pelican) 서너 마리가 부지런히 고기를 낚고 있다.

메말라 있을 거라고 생각한 강이 펄펄 살아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즐거움을 선사한다. 강의 흐름을 자세히 살피니 가로질러 세워진 하구 둑 한쪽에 어류들이 상류와 하류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생태통로 (fish ladder)가 만들어져 있다.

윌케니아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다리가 두 개인데 하나는 현대식이고 다른 하나는 이곳 전성기 때 달링강에 오고 가는 배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가운데가 들어올려지는 형태로 만들어진 것인데 지금은 문화유산으로 보존되어 국가가 관리하고 있다. 또한 윌케니아에는 예쁜 색깔을 머금은 사암 (sand stone)으로 지어져 100년 이상 보존된 병원, 우체국, 경찰서, 법원, 교회 등의 건물들이 많아 둘러보는 재미도 솔솔했다.

윌케니아에서 북으로 방향을 잡아 100킬로미터를 달리니 언덕 위에 하얀색이 듬성듬성 보이는 화이트 클리프 (White Cliffs)가 두 팔을 벌려 반긴다. 19세기 후반 무렵에 발견된 오팔 (opal)로 인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광산마을이다.

 

03_무더운 여름날씨로 대부분의 집안은 지하에 만들어져

NSW주에 있는 또 다른 오팔 광산마을인 라이트닝 릿지 (Lightning Ridge)처럼 무더운 여름날씨로 인해 대부분의 집안은 지하에 만들어져 있고 땅 위에는 환기통이나 태양광 패널 그리고 파헤쳐진 흙, 자갈더미 만이 눈에 띈다.

당연히 호주 최초의 태양광발전소 (solar power station)가 이곳에 설치되었고 현재는 안테나 모양의 태양광 집전판만이 남아 있다. 버려진 지하광산 갱도를 방으로 만들어 상업화된 화이트 클리프 지하 모텔 (White Cliffs Underground Motel)을 둘러보면 지하의 생활이 얼마나 아늑한지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지하 모텔을 둘러보는데도 당연히 공짜는 없다. 한 사람당 10불을 달라고 해서 일행들이 주저하니 곧바로 커피를 덤으로 제공한다는 상술을 발휘한다. 미친 척 꾐에 넘어가면서 대부분 비어있는 방들을 둘러보았다. 이런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면 오래 남는 추억이 될 성 싶은데… 이번 여행의 첫날밤은 화이트 클리프 호텔 (White Cliffs Hotel)에서 보냈다.

일행은 호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코딱지만한 시내를 순식간에 벗어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다 함께 고개를 젖혀 소낙비처럼 퍼부어 쏟아지는 별들을 눈에 담는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별들로 그득한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서로 바라보면서 밤 늦도록 이야기 꽃을 피웠다.

 

 

Day 2

 

04_한낮인데도 겨울바람이 휘젓고 있는 유령마을 같은 분위기

210킬로미터 북서쪽에 있는 밀페린카 (Milparinka)로 향했다. 오지에 만들어진 도로인지라 볼거리가 많다. 새벽에 출발한 까닭에 식구들끼리 아침거리를 찾으러 나온 이뮤 (emu)들과도 눈인사를 한다.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붉은색 캥거루 (red kangaroo)들도 자주 출몰한다.

광활한 이곳을 지나다 보니 저 멀리 꼭 울룰루 (Uluru) 바위 형태의 거대한 지형이 우리와 함께 한참을 동행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도로에서 벗어나 주로 19세기에 급하게 조성된 무덤들을 찾아 수인사를 하고 또한 거대한 소금호수도 한참 바라봤다.

말라있는 호수 위를 자동차로 달리고 싶었지만 자연에 대한 경외로 절제심을 발휘했다. 설렘과 흥미로움이 가득한 도로는 드디어 브로큰 힐 (Broken Hill)에서 거의 일직석으로 북쪽을 향하는 실버시티 고속도로 (Silver City Highway)와 조우를 한다. 포장 상태가 양호해 차가 속력을 높였다.

곧이어 원주민 언어로 ‘물이 이곳에 있을 수도 있다 (water may be found here)’라는 의미를 가진 밀페린카에 도착하였다. 한낮인데도 차가운 겨울바람이 휘젓고 있는 유령마을 같은 분위기다. 1886년 밝은 색의 사암으로 지어져 빵을 훔치거나 집에서 키우는 돼지를 도로에 방목한 죄목들을 다룬 법원 건물이 기능을 다해 현재는 박물관으로 변신된 곳으로 들어섰다.

마침 시드니에서 와 석 달을 머물면서 자원봉사를 한다는 부부를 만나 대화의 물꼬를 텄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소중한 역사의 실타래가 무명의 봉사자들에 의해 끊어지지 않고 그 신축성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세월의 굴레 속에 무너져 벽돌의 뼈대만 남은 우체국을 둘러보던 에릭 (Eric)이 마침 전화통화를 끝내더니 오렌지 시내에 있는 사진사가 어릴 적 이곳 우체국 뒤에 있던 집에서 살았다고 하는 믿기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05_1845년, 호주 내륙의 바다 찾아 일행 15명과 함께 이곳에

과거 호텔 자리에 남은 빵을 구웠던 화로와 주변에 엉기성기 만들어진 무덤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실 이곳 밀페린카에 들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멀지 않는 곳에서 호주 역사에 큰 획을 그은 탐험가 찰스 스터트의 발자취를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싱싱하고 팔팔한 탐험역사의 맥박을 느낄 수 있는 유적지 세 곳이 밀페린카 주변에 모여 있다. 물 부족으로 더 이상 진군을 못한 탐험대가 반년이나 머물러야 했던 장소인 데포 글렌 (Depot Glen)이 15킬로미터, 스터트의 오른팔 격인 대원 제임스 풀 (James Poole)의 무덤이 있는 곳 (Poole’s Grave)이 데포 글렌 바로 옆, 그리고 탐험대원들에 의해 만들어진 돌무덤인 스터트 캔 (Sturt’s Cairn)이 북쪽 방향으로 2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스터트는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호주 내륙의 바다 (inland sea)를 찾기 위해 일행 15명과 함께 11마리의 말 그리고 식량으로 30마리의 소와 200마리의 양을 이끌고 아들레이드 (Adelaide)를 출발해 1845년 이곳에 도착했다고 한다.

바다를 찾으면 띄우려고 배까지 가지고 간 탐험대는 극심한 가뭄과 물 부족으로 더 이상 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약간의 물줄기가 남아 있던 데포 글렌에 진을 치고 때를 기다렸다. 그 사이 탐험대 부대장인 제임스 풀이 비타민 C섭취 결핍증인 괴혈병 (scurvy)으로 고통스럽게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대원들에 의해 호주 토종이며 가뭄과 서리에 강한 그러빌리아 (grevillea) 나무 옆에 묻힌다. 더 나아가 대원들은 나무 껍질을 벗겨 그의 이름 이니셜인 ‘JP’와 연도 ‘1845’를 새겼다.

보통 그러빌리아 나무는 상당한 크기로 자라는데 이곳에 비가 얼마나 오지 않았으면 거의 200년이 되어 가는 지금껏 별로 자라지도 않았고 더불어 베어진 껍질 상처도 지금까지 아물지 않아 새겨진 글자들이 선명하다.

 

06_시내 한 켠에는 스터트 탐험대가 가지고 온 배의 모형이

남은 대원들에게 스터트는 데포 글렌에서 5킬로미터 떨어진 256미터 높이의 민둥산 (Mount Poole) 위에 돌무덤 (cairn)을 쌓게 했다. 그 당시 스터트가 작성한 일기에는 매일 켜켜이 쌓인 그의 고뇌가 녹아 있다. 힘든 하루하루 생활의 낱낱이 여러 번 짓이겨지고 말려져 탄생된 표현이 한 뼘 정도의 내 심장을 아리게 했다. 한낮임에도 오지 특유의 겨울바람이 그 당시 그들 모두가 겪었을 매섭고 황당한 고행 냄새와 함께 내 후각을 진하게 후빈다.

스터트에 관련된 육중한 역사적 사건들에 짓눌려 어깨가 무거워진 일행은 30분을 더 북으로 달려 티버버라 (Tibooburra)에 도착했다. 이곳이 NSW주에서 ‘등허리 긁어 손 안 닿는 곳’이라고 할 만큼 오지라는 곳이다.

약속이나 한 듯 우리는 일단 펍에 들러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며 지금은 유명을 달리한 과거 펍 주인이면서 지역 화가가 벽에 그려놓은 그림들을 안주 삼아 위안을 얻었다.

그래도 스터트에 의해 짙게 드리워진 아픈 감성을 쉽게 떨쳐낼 수 없다. 동전 크기만한 시내 한 켠에는 스터트 탐험대가 당시 가지고 온 배의 모형 (replica)이 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3일 밤을 지낼 숙소는 여기에서도 동쪽으로 27킬로미터떨어진 마운트 우드 홈스테드 (Mt Wood Homestead)여서 우리는 이곳의 유일한 가게에서 마지막 쇼핑을 했다. 깜박 잊고 못 가지고 온 칫솔을 다행히 구입해서 오늘 밤부터는 손가락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숙소는 과거 소와 양을 키우던 목장에 딸린 부속건물을 숙소로 개조한 곳이라 불편함이 많지만 그래도 오지이니 감지덕지다. 여행의 준비물이 결핍이라고 하지 않던가? 여행 이틀 만에 스터트 국립공원의 경계에 들어온 셈이다.

 

 

Day 3

 

07_이 판을 중심으로 돌면 세 개 주를 다 밟게 되는 셈이다

원래 땅에는 선이 없었다. 새와 동물들이 증거다. 다만 인간이 금을 그어 경계를 만들었다. 인위적이다. 아이들 놀이인 땅 따먹기가 그 좋은 예다. 그래서 국경에서는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든다. 과거 남아공에서 모잠비크로 넘어갈 때 생생하게 경험했다.

국경은 아니지만 주와 주를 갈라놓은 경계에서도 강도는 약하지만 비슷한 느낌이 온다. 연탄 구들방의 따뜻한 아랫목에 깔린 이불 안에다 다리만 넣고 찐 고구마를 먹고 있는 엄마와 두 딸처럼 3개의 주가 옹기종기 코너를 나누고 있는 곳이 카메론 코너 (Cameron Corner)이다.

1880년부터 2년에 걸쳐 주 경계를 만들기 위해 측량을 한 존 카메론 (John Cameron)을 기리기 위해 이 코너가 이름 지어졌다. 그가 경계로 표시한 곳에는 오늘날 세 개의 주가 새겨진 표지판이 있다. 이 판을 중심으로 돌면 세 개 주를 다 밟게 되는 셈이다.

새해가 되면 서로 시간대가 다른 세 개 주의 시간에 맞춰 새해 파티를 세 번 즐긴다는 농담도 진담처럼 들리는 곳이다. 이곳에 있는 유일한 건물인 가게 (Cameron Corner Store)는 세금을 어느 주에 납부할까? 단순 세포적이 질문이 심각하게 들리는 곳이기도 하다.

사실 도착 하기 전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방식이 주마다 다르기 때문에 각 주에서 파견된 경찰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기우였다. 마르고 붉은색을 머금은 너른 평야에는 과거 토끼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웠던 철조망이 더 발전하여 이제는 딩고 (dingo)가 넘어오는 것을 막는 현대화된 철조망 만이 끝없이 이어져 있을 뿐이다.

점심을 준비해 왔지만 브로큰 힐에서 오는 신선한 채소가 들어간 햄버거를 가게에서 주문했다. 이 오지에서 장사하는 대단한 이런 사람들을 돕는 유일한 방안인 셈이다.

 

 

Day 4

 

08_게이트 열고 닫기를 반복하며 퀸즈랜드주에 발을 담가본다

오늘의 일정은 순전히 지질학 여행이었다. 숙소에서 북으로 갔다가 서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반원 모양으로 50킬로미터 정도의 루트가 나오는데 이것이 고지 루프 도로 (Gorge Loop Road)이다. 곳곳에 볼거리들이 많다. 과거 목축업을 하면서 사용된 온갖 농기구들이 야외에 전시된 박물관도 있다. 양털 깎기 전문가들이 묵은 숙소와 일했던 건물 그리고 더러운 양털이 씻겨지기 위해 만든 간이 저수지 등도 남아 있다.

이곳 지형에는 특히 조약돌이나 자갈 크기의 암석조각들로 덮인 표면이 쉼 없이 이어진다. 기버 평원 (gibber plains)이다. 이런 험준한 평지를 뛰어다니면서 적응한 캥거루들의 진화력이 놀랍다.

운이 좋아야만 볼 수 있다는 호주 새 버스터드 (Australian bustard)도 카메라에 담는다. 계절에 맞는 지형색깔과 비슷한 색으로 외투를 두르고 있어 움직이지 않으면 찾아낼 수가 없다고 한다.

반원의 도로가 끝나는 곳에 남쪽에서부터 계속 이어지는 실버시티 고속도로가 있다. 이제 서쪽으로 나 있는 나머지 반원의 루트 즉, 점프 업 루프 도로 (Jump Up Loop Road)를 정복하기에 앞서 고속도로에 몸을 싣고 북으로 곧장 가서 퀸즈랜드 경계 철조망과 어색한 조우를 한다. 워리 게이트 (Warri Gate)다.

순전히 호기심으로 괜스레 게이트를 열고 닫기를 반복하면서 퀸즈랜드주에 발을 담가본다. 경계는 별다른 매력도 없이 이렇게 사람을 홀리는 마력이 있다.

오전에 둘러본 루트와는 상반되는 지질형태를 보이는 점프 업 루프 도로는 이름 그대로 끝이 없을 것 같은 무한대의 지평선 저편에 갑자기 긴 가래떡 형태의 지형이 불뚝 솟아 나온다. 사실 지질학 역사를 보면 이 일대가 1억 년 전에는 내륙의 바다였으니 스터트의 이론이 반드시 틀린 것만은 아니다.

한참을 가다 보니 마침 점심 하기에 좋은 캠핑장이 나왔다. 주린 배를 채운 일행은 그곳에서 왕복 4킬로미터 정도의 산책길이 있다는 안내문을 따라 걷기로 했다. 가는 도중 한낮 햇빛을 피해 나무 그늘에서 오수를 즐기는 캥거루에게 계속 미안해 하면서…. 길은 멀리 수평선을 한눈에 조망하기 좋은 절벽 위로 계속된다. 지질학자와 함께 여행했더라면 이 장소가 한 시간짜리 강의실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Day 5

 

09_마른 나의 가슴 속 습자지에 많은 것 빨아들인 여행

이제 돌아갈 여정이다. 집으로의 출발은 항상 이른 새벽이다. 더불어 도로에서 아침 형인 캥거루와 접촉사고 위험도 높다. 모든 촉각을 열어두고 ABBA의 노래 ‘I have a dream’으로 커피를 대신한다.

도로 옆에서는 캥거루와 이뮤 가족들이 밝아오는 여명 속에서 우리에게 작별인사를 건넨다. 여명은 밤새도록 여러 가지 원색들이 가랑대다가 새벽 무렵 서로 섞이면서 수백 가지 색깔로 변신을 하는가 싶더니 폭풍우처럼 지상으로 몰아쳐 내린다.

눈이 멀도록 아름답다. 천사가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을 느낀다. ABBA가 증인이다. 꿈같은 아침 속을 달려 우리는 브로큰 힐에 도착하였다. 광물 중 납 (lead), 아연 (zinc) 그리고 은 (silver)의 매장량이 세계 최고인 곳이다.

여기에서 퀸즈랜드를 만나는 북쪽의 경계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실버시티 고속도로라고 명명한 것이 이해가 된다. 1885년 광산활동이 시작된 이래 지하에서 파 올려져 산처럼 쌓인 흙더미 위에 그 동안 과로나 사고로 숨진 광부들을 추모하는 박물관이 있다.

이곳에 있는 전망대는 브로큰 힐을 파노라마 식으로 관망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역사적으로 양모와 탄광 산업이 호주 경제의 쌍두마차임을 실감했다.

갈 길이 멀어 박물관의 카페에서 주문한 점심을 들고 길을 재촉하지만 결국 닝건에서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올 호주 농사가 풍년을 이뤄 덩달아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쥐들의 습격(?) 때문인지 닝건 모텔에서 주문하는 요구 사항이 만만치 않다.

더불어 스쳐가는 바람의 기척에도 놀라 밤새 잠을 못 이루다가 갑자기 날이 밝은 느낌이다. 탐험가 스터트가 그 당시 겪은 불면의 밤을 생각하니 동병상련의 마음이 들었다. 이번 여행에 준비해 가지고 간 바싹 마른 나의 가슴 속 습자지에 나름 많은 것을 빨아들였다고 생각하니 축축해진 가슴이 일견 풍성해진다.

 

 

박석천 교수의 '따로 또 같이' 여행기 ⑥ '지붕 없는 박물관' 강화도 ...글 / 박석천 (글벗세움 회원·찰스스터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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