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결혼?

아직 희망은 있어, 용기 내서 첫 단추 다시 끼우길…

저희 부부는 처음부터 잘못된 결혼인 것 같아요. 이제 아이들도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첫 단추를 잘못 끼웠던 것 같아요. 주변에서 반대도 많고 부정적인 피드백도 많이 해주었는데 그때 왜 그 말을 듣지 않았을까요? 후회가 많이 됩니다. 어떻게 하죠?

 

01_불행한 결혼은 첫 단추 잘못 끼웠기 때문?

부부 중에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을 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부부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특정한 조건이 맞거나 특별한 감정 없이 적당하다 생각해서 결혼합니다.

제가 아는 한 분은 정말로 아내를 끔찍이 사랑했다고 합니다. 그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분은 결혼 생활에서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 때를 상기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자신의 아내가 참 소중한 사람이고 그 사랑을 잘 지켜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결혼 전에 두 사람이 사랑했던 기억이 뚜렷할 경우에 어려움이 생기면 옛 추억을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서로의 애정통장에 잔고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사람들은 결혼생활에 어려움이 오면 자신들을 묶어줄 수 있는 좋은 기억이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불행한 결혼이 바로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치 않던 임신으로 인해서 결혼을 하게 된 경우나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지만 외부적인 조건 때문에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된 경우 아니면 사별과 이혼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급히 결혼한 경우 너무 일찍 멋도 모르고 결혼한 경우 그리고 부모님이 많이 반대했는데 결혼을 한 경우 등이 그러할 수 있습니다.

 

02_내 문제 고쳐볼 의향 없으면서 과거 탓, 중매인 탓, 배우자 탓

그렇지만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경우라도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의 원인을 과거의 잘못된 선택으로만 돌리는 것은 내 문제를 남 탓으로 돌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의 내 문제는 고쳐볼 의향이 없으면서 과거 탓, 중매인 탓, 배우자 탓을 하는 것입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경우에 다시 단추를 끼우기 위해 모든 단추를 다 풀어야 합니다. 이처럼 첫 단추를 다시 끼우기 위해서는 과정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결과로 단추를 다시 잘 채울 수 있게 됩니다.

사람들은 노력과 변화 없이 저절로 내 삶에 기적이 찾아오길 바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생활의 행복은 반드시 노력과 변화가 필요합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부부의 경우에는 첫 단추를 잘 끼운 부부보다는 서로의 노력이 더 필요할 수 있지만 서로가 노력하고 변화를 시도한다면 첫 단추는 충분히 다시 끼워질 수 있습니다.

과거에 원치 않는 임신을 해서 결혼한 경우에는 배우자에 대한 깊은 원망과 적대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크고 작은 결혼생활의 어려움이 생기면 도망가고 싶고 전부가 내 배우자 탓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03_배우자 깊이 용서하는 과정 필요

그런 경우에는 배우자를 깊이 용서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배우자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이며 언약의 관계에 있는 삶의 동반자인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용서로 인해 새롭게 생긴 사랑과 화해의 기반 위에 결혼생활을 새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부모님이 반대한 결혼을 한 경우 결혼생활에서 갈등이 생기면 “내가 부모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서 이런 결과가 초래한 거야”라며 “우리의 결혼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인이 된 후 자신이 결정을 내려 결혼을 했다면 더 이상 부모님의 간섭이나 뜻이 현재의 부부관계에 영향을 끼치도록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별이나 이혼으로 인한 슬픔의 과정을 충분히 갖지 못하고 결혼을 한 경우에는 상담을 통해 과거의 아픔과 슬픔을 치유하는 과정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부터 과거의 아픔을 떠나보내는 것입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나의 결혼생활은 가망이 없어’라고 말하는 분들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아직도 희망은 있습니다. 용기를 내셔서 첫 단추를 다시 끼우십시오.”

 

 

글 / 김 훈 (호주기독교대학 학장·호주한인생명의전화 이사장·상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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