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를 깎으며…

오전 열한 시 반에 잔디 깎는 기계 시동을 걸었으니 둘이서 여섯 시간을 앞 뒷마당 정리에 매달렸던 셈입니다. 그 동안 변덕스러운 날씨에 게으름까지 살짝 얹어진 탓에 우리 집 모양새가… 영, 말이 아니었습니다.

잔디가 조금만 길어도 그냥 넘어가지 못하던 우리였는데 이건 마치 한동안 머리를 깎지 않아 텁수룩하고 꾀죄죄한 모습을 하고 있는 더벅머리 총각을 보는 것 같아 더 이상은 놔둘 수가 없었습니다.

잔디를 모두 깎고 내친 김에 군데군데 파고들어 있던 민들레를 비롯한 잡초 그리고 아무개 풀까지 모두 제거하고 나니 마침내 ‘우리 집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와 마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전에는 한번 시작하면 밥이고 뭐고 끝장(?)을 봐야 했지만 얼마 전부터는 쉬엄쉬엄 하는 식으로 방법을 바꿨습니다. 잔디를 조금 깎고는 커피도 한잔 마시고 신문도 읽곤 하던 옆집 호주인 할아버지한테서 배운(?) 겁니다.

뒷마당 잔디를 먼저 깎은 후 아침 겸 점심으로 삼겹살을 구웠습니다. 적당한 배고픔에 싱그러운 풀 냄새가 더해져 꿀맛, 그 이상이었습니다. 우리는 향 짙은 커피까지 한잔 마시고 나서야 앞마당으로 일터(?)를 옮겼습니다.

잔디 깎기… 참 별것 아닌 듯싶은데도 한번 시작하면 세 시간은 너끈히 걸리는 대 작업입니다. 게다가 지난 일요일에는 잡초까지 뽑아내느라 시간과 노력이 더 많이 들어, 밥 먹는 시간을 빼더라도 둘이서 다섯 시간은 족히 그 일을 붙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노동(?)을 하고 나니 다리며 허리며 어깨며 여러 곳이 뻐근했습니다. 하지만 한결 깨끗하게 정리된 우리 집을 보니 깔끔하게 머리를 다듬은 미남청년을 대하는 듯해 기분이 좋아졌고 그 위에서 신나게 뛰어 놀 에이든과 에밀리의 모습도 행복하게 오버랩 됐습니다.

할배가 게으름 피우지 않고 며칠만 더 일찍 손을 댔더라면 지난 주 금요일 두 녀석이 우리 집에 왔을 때 깨끗하게 정리된 잔디 위를 맘 놓고 질주할 수 있었을 텐데…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요 며칠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는 심술궂은 날씨도 이제 더 이상은 어쩔 수 없는 듯싶습니다. 뒷마당 텃밭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상추며 깻잎이며 각종 모종들이 쑥쑥 자라고 있고 블루베리도 꽃들을 무수히 피우고 있습니다. 그 중 잘 익은 블루베리 한 개는 지난 주말 에이든의 앙증맞은 입 속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늘 드는 생각이지만 하우스에 산다는 건, 집 안팎을 예쁘게 유지하고 산다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워낙 가꾸기를 좋아하는 아내이긴 하지만 집 안팎 정리를 위해 늘 바쁩니다. 아내의 그 같은 노력이 있기에 우리 집을 찾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예쁘다’는 표현을 아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자 파리들이 극성을 부립니다. 그런데 이놈들은 참 희한합니다. 고기 굽는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잔디를 깎는데, 잡초를 뽑는데 얼굴로 집요하게 덤벼드는 건 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것도 교묘하게도 두 손을 다 쓰고 있어 놈들을 쫓아버릴 수 없는 상황만 골라서 눈이며 입이며 코며 모든 곳들을 끈질기게 공격합니다.

파리들의 집중공격에 연신 손을 내저으며 잔디를 깎다가 좀 뜬금없는 비유이긴 하지만 안 그래도 똥 묻은 아니, 똥 범벅이 돼 있는 개들이 겨 묻은(?) 개를 끈질기게 물고늘어지는 작금의 한국 상황이 문득 떠올라 짜증이 더해졌습니다.

뭣이 중한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들 기득권, 지들 밥그릇 지킬 생각에 연신 짝짜꿍이 돼 돌아가는 검찰과 언론들…. 역시 태생은 숨길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믿었던 그 사람’이 주는 배신감과 허탈감 그리고 유일무이하게 무한신뢰를 쏟아줬던 한 방송사의 배신(?) 혹은 제자리(?) 찾아가기가 집요하게 달려드는 파리들과 겹쳐져 씁쓸함을 금할 수 없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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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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