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의 1패?!

맞은편에서 오고 있는 유모차… 그 안의 아기가 고사리 같은 손을 흔들며 저에게 천사의 미소를 지어 보냅니다. 뽀얀 피부에 인형처럼 예쁜 눈동자를 지닌 그 아기에게 한국말로 “안녕?” 하며 손을 흔들면서 먼저 찝쩍댄(?)건 당연히 저입니다.

말은 안 통해도 바디랭귀지(?)는 역시 세계 공통어인 모양입니다. 아기는 물론, 아기엄마의 포근한 미소까지 덤으로 받고 나면 절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기는 저와 스쳐 지나면서도 고개를 한껏 돌려 저를 향해 계속 빠이빠이를 합니다.

어린(?)시절부터 저는 아이들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길을 지나다가도 아이들을 만나면 무조건 다가가 예뻐했는데 희한하게도 아이들도 난생 처음 보는 저에게 방긋방긋 미소를 지으며 손도 마주 잡고 심할 경우에는 저한테 훌쩍 안기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또 한 가지 신기한 것은 지나던 강아지들도 제가 부르면 백이면 백 저한테 달려와 엄청 친한 척을 했습니다. 꼬리를 정신 없이 흔들며 저에게 안기는 건 물론, 어떤 녀석들은 발랑 드러누워 오줌까지 찔끔거려 주변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곤 했습니다. 저는 아이들 복, 강아지 복은 타고난 듯싶습니다.

얼마 전, 결혼 4년여 만에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절친 딸네 집들이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아직 세 살이 채 안 된 큰딸과 5개월 반 된 작은딸과 함께 예쁜 삶을 사는 딸과 사위를 바라보는 절친부부의 입가에서는 시종일관 흐뭇한 미소가 넘쳐났습니다. 거기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손녀의 귀염과 재롱은 덤이었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우리 할아버지인데 저 할아버지는 누구 할아버지예요?” 나이에 비해 말을 엄청 잘하는 하윤이가 지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응, 하윤아. 얼마 전에 에이든 오빠랑 에밀리 언니 왔었지? 저 할아버지는 그 에이든 할아버지야.” 엄마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던 하윤이는 저에게 다가와 “에이든 할아버지, 저랑 같이 놀아요”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하윤이와 에이든 할아버지의 꽁냥꽁냥(?)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계속됐습니다. 혼자서 놀다가도 수시로 저에게 달려와 “할아버지, 같이 놀자” 했습니다. 워낙 아이들이라면 내 새끼나 남의 새끼나 무조건 좋아하는 저로서는 하윤이의 그런 초대를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손녀를 빼앗긴(?) ‘진짜 하윤이 할아버지’가 저만치 멀뚱히(?) 앉아 있었습니다. “하윤아, 할아버지한테 가서 같이 놀자고 해.” 녀석에게 귓속말을 하자 쪼르르 달려가 지 할아버지 손을 이끌고 옵니다. 그리고는 뭐라 재잘재잘, 할아버지와 놀이 삼매경에 빠집니다. 저는 다정한 할아버지와 손녀의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이번에는 지 엄마한테 안겨 있는 하영이를 받아 안았습니다. 낯가림이 전혀 없는, 붙임성이 한없이 좋은 하영이도 에이든 할아버지의 품이 편하고 좋은 모양입니다. 동그랗고 큰눈을 반짝이며 연신 미소를 짓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던 하윤이가 저에게 달려와 “할아버지, 안아줘!” 합니다. 시샘? 질투? 그렇게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저는 하윤이, 하영이와 이런저런 놀이를 하며 지냈습니다.

하윤이, 하영이도 당연히 진짜 할아버지가 더 좋겠지만 그날만은 진짜 할아버지보다는 저한테 할애해준 시간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의문의 1패 아니, 의문의 2패를 당한 절친의 얼굴에서는 사람 좋은 미소가 한시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집을 나서는 데도 하영이는 엄마한테 안겨 눈을 찡긋거리며 저를 향해 깊은 애정을 표시했고 하윤이는 90도 배꼽인사를 하며 연신 “할아버지, 안녕히 가세요!”를 외쳤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그날 하윤이는 “진짜 할아버지보다 에이든 할아버지가 더 좋다”고 수줍게 고백(?)을 했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 두말할 나위도 없이 아이들의 천사 같은 미소이고 우리는 그 미소에서 삶의 의미를 더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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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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