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맛

끝이 보이지 않는 넓고 푸른 바다… 적당히 거친 파도가 몰고 오는 하얀 물거품(?)들이 ‘바다 멍’에 빠져 있는 저를 흔들어 깨웁니다. 구름 한 점 없이 높은 하늘은 덤입니다. 어찌 보면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 속에 들어가 있는 그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큰 힐링이고 더없이 예쁜 행복입니다.

순간, 부러질 듯 휘면서 요동을 치는 낚싯대… 빛의 속도로 달려가 한판 힘겨루기를 하고는 덩치가 산만한 연어를 비치 위로 끌어올립니다. 앗?! 옆에 꽂혀있던 낚싯대가 녀석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순식간에 바다로 빨려 들어갑니다. 간발의 차로 낚싯대를 잡아채고 이어지는 또 한번의 짜릿한 승부… 이후로도 그 같은 쾌감은 여덟 대의 낚싯대에 계속 이어졌습니다.

오전에는 큰 바다 사이로 나 있는, 고요하기 짝이 없는 만 (Inlet)에서 우리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잔잔한 물위로 낚싯대 여러 개를 꽂은 작은 배들이 무시로 오갈 뿐 평온함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는 미리 예습(?)해간 대로 물고기가 많다는 낚시스폿을 찾았고 그곳에서 손맛을 톡톡히 봤습니다.

그 동네 물고기들이 성격이 화끈한 탓인지 입질이 무척 활발하고 공격적이었는데 40센티미터를 넘나드는 대형 트레바리들이 거침없이 달려들었습니다. 잡은 숫자보다 끌려오다가 도망친 녀석들이 더 많을 만큼 녀석들은 터프했고 그곳의 플랫헤드는 시드니의 그것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비치와 만에서 잡은 물고기는 모두 열아홉 마리였습니다. 사이즈가 마음에 들지 않아 놓아준 녀석들과 한참 끌려오다가 도망친 녀석들의 수도 그에 못지 않았습니다. 힐링과 낚시를 목적으로 간 것인 만큼 우리의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는 고맙고 행복한 여행이었습니다.

여덟 명이 내·손·내·잡 (내 손으로 내가 잡음)한 다양한 물고기들로 회와 회 덮밥을 배가 터지게(?) 먹고도 남았고 다음 날엔 그릴에 깔끔하게 구워낸 물고기들이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렇게 먹고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각 팀의 아이스박스에는 물고기 한두 마리씩이 들어 있었습니다.

지난 주말, 선배지인 부부 세 팀과 함께 서섹스 인렛 (Sussex Inlet) 3박 4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시드니에서 세 시간 남짓 남쪽에 위치한 곳인데 동네가 참 조용하고 예뻤습니다. 우리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4 베드, 2층짜리 깔끔한 하우스에서 지냈는데 가성비도 좋았고 낚시스폿이나 각종 편의시설들이 자동차로 5분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 편리함까지 더해줬습니다.

네 부부 중 우리가 가장 막내였지만 저보다 많게는 열네 살, 적게는 일곱 살 위인 선배지인들이 서로서로를 위하고 챙기는 덕분에 여행기간 내내 우리는 티끌만치의 불편함도 없이 쾌적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자매님들이 열정적으로 다양한 음식들을 만들어내는 덕분에 남자들은 그야말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호사를 누렸습니다.

마음이 맞고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여행을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3박 4일 동안 실컷 먹고, 마시고, 즐기고, 자고 지급한 돈은 부부당 520불… 뛰어난 가성비입니다. “이 어려운 시국에 여행이라니 팔자 좋은 소리 한다”라는 분들도 계실 수 있지만 우리의 삶에 활력을 더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투자는 해볼만하다는 생각입니다.

21년 전 처음 시드니에 왔을 때 주변에서 이런 얘기를 해줬습니다. “김 사장님, 지금 부지런히 놀러 다니세요. 1년 아니, 6개월만 지나도 먹고 살기에 바빠 여행 같은 건 엄두도 못 내게 됩니다.” 그 얘기에 고무된 우리는 없는 돈을 쪼개 얼떨결에 시드니시티, 블루마운틴, 포트스티븐즈, 행글라이딩포인트, 울릉공, 카이아마 등을 비롯한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실제로 몇 달 후 낮에는 교민매체에서 일하고 새벽에는 세븐데이로 울워스 청소를 하는 생활이 시작되자 우리는 여행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여행… 우리의 삶에 없어서는 안될 요소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귀찮아서… 하루 이틀 미루다 보면 영영 못 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다리 떨릴 때 말고 가슴 떨릴 때’ 가성비 높은 ‘여행의 맛’을 최대한 즐기는 것… 아내와 저의 작은 꿈입니다. 마음이 맞는 좋은 사람들은 보너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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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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