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어? 요놈 봐라? 거실에서 자동차놀이 삼매경에 빠져있던 녀석이 지 엄마 아빠가 현관문을 열자 정신 없이 그쪽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는 엄마한테 찰싹 달라붙어서는 함께 밖으로 나갑니다.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매우 생소한 장면입니다. 우리 집에만 오면 지네 집에 안 가겠다며 떼를 쓰고 엄마 아빠가 밖으로 나가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녀석이었습니다. “이든아, 엄마 아빠한테 빠이빠이 해야지” 하면 쳐다보지도 않고 손만 건성으로 흔들던 녀석이었습니다.

반면, 제가 밖으로 나갈라치면 어떻게 아는지 달려 나와 붙들고 늘어져 꼼짝을 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별채에는 물론, 화장실에 갈 때도 녀석 몰래 움직여야 했습니다. 이런 녀석을 두고 지 엄마 아빠는 “야! 넌 소속이 어디야?” 하며 눈을 흘기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회사 일 때문에 뒷문을 통해 몰래 밖으로 빠져나갔는데 녀석이 용케도 제가 나간 걸 알고는 “아빠! 아빠!”를 외치며 (그때는 녀석이 할아버지 소리를 못할 때였습니다)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급기야 제 차가 우리 집을 벗어나 큰 길을 향하자 녀석은 발까지 동동 구르며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녀석의 그런 모습을 아내가 동영상으로 담아놔 지금도 녀석이 보고 싶을 때면 종종 꺼내 보며 웃곤 합니다. 그랬던 녀석의 그날 모습은… 정말이지 낯설기가 이를 데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배신의 기운?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것이라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빨리? 그것도 쓰나미처럼? 녀석의 세 번째 생일파티 얼마 후부터 시작된 녀석의 배신은(?) 저를 적지 않은 충격으로(?) 몰아넣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녀석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얼마 전, 새로 옮긴 차일드케어센터에 녀석을 데려다 주고 지 엄마 아빠가 동생을 데리고 돌아서는데 녀석이 엄마를 꽉 붙들고는 놓지 않으려 했답니다. 새로운 환경이 낯선 데다가 엄마 아빠가 지만 떼어놓고 가는 걸로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여동생이 태어나도 질투 같은 건 전혀 안 했던 녀석이 그날 이후로는 엄마 아빠 특히 엄마 곁에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하기 시작했고 그 같은 영향이 우리한테까지 이어졌던 겁니다.

그렇다고 녀석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싫어하거나 멀리하게 된 건 아니었습니다. 우리 집에만 오면 여전히 신이 나고 우리가 지네 집에 가도 좋아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다만 지 엄마에 대한 집착은 엄청나고 아내나 제가 동생을 안을라치면 그러지 말라며 얼른 가운데로 파고 듭니다. 집에서도 엄마 아빠가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떼를 쓰며 할아버지를 연신 불러댄답니다.

그리고 얼마 전, 귤 농장에 다녀오면서 우리가 잠시 딸아이네 집에 들렀을 때의 일입니다. 지 아빠가 까준 귤을 받아 든 녀석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한 조각을 떼어내 예의 그 살인미소와 함께 얼른 할머니 입에 넣어줬습니다.

그 다음은 제 차례였습니다. 제 입에 귤을 넣어주고는 눈을 찡긋찡긋 고개를 끄떡끄떡 하며 ‘맛있어?’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녀석은 그렇게 엄마 입에까지 귤을 넣어주고 나서야 지 입에 귤 한 조각을 넣고는 “으~음!” 소리를 냈습니다.

짧은 방문,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녀석이 얼른 제 품에 안겨 떨어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현관까지 안고 나와 간신히 떼어내 엄마한테 넘겨주자 녀석은 싫다며 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아빠와 동생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 함께 있는 게 녀석이 바라는 최고의 그림이었을 겁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에도 녀석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부르며 떼쓰는 소리는 계속 들려왔습니다. 그래! 에이든, 넌 여전히 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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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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