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놀음?

거스를 수 없는 게 계절의 변화, 자연의 이치인 것 같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자카란다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HSC꽃’이라는 별명(?)을 가진 자카란다는, 신기하게도 앙상한 가지에서 꽃을 먼저 피우고 난 후에야 새로운 잎사귀를 돋아냅니다.

HSC를 치르는 12학년 수험생들은 머리를 쥐어뜯고 있겠지만 보라 빛 눈꽃(?)으로 뒤덮인 우리 집 뒷마당은 1년 중 가장 예쁜 그림을 그려냅니다. 그곳에서 마시는 향 짙은 커피 한잔… 두말 할 나위 없는 행복입니다.

올해 우리 집에서는 각종 과일나무들이 약진(?)을 하고 있습니다. 예년에 비해 무수히 많은 열매들이 달려 있어 올해에는 다양한 과일들을 많이 많이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한껏 부풀려줍니다.

지난해에는 두 그루의 레몬나무에서 단 세 개의 레몬만을 수확할 수 있었는데 올해에는 여기저기에서 꼬마레몬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그 옆 오렌지나무도 처음 사올 때 오렌지 한 개가 달려 있던 것 외에는 몇 년째 열매 구경을 못했는데 올해는 드디어 우리가 기른 오렌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뒷마당 포도나무에도 해마다 앙증맞은 포도열매들이 무수히 달렸다가는 소리 없이 사라지곤 했는데 올해는 상황이 좀 다릅니다. 아직 나이(?)가 좀더 차야 할 감나무도 일단은 많은 꽃들을 피워내고 있고 무화과나무에도 작고 앙증맞은 꼬마열매들이 자리다툼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블루베리가 많이 달려 우리 에이든이랑 에밀리가 ‘할머니 할아버지 표’ 블루베리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옆 배나무는 나이가 꽤 들었음에도 아직 감감무소식입니다. 누구처럼(?) 대기만성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얼마 동안 아내와 제가 앞마당과 뒷마당에 쏟은 정성은 실로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도 종종 허리를 감싸 쥐고 있긴 하지만 참 잘한 일인 건 확실합니다. 커피잔을 들고 뒷마당 그네에 앉아 여기저기를 둘러보면 우리도 모르게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특히 깔끔하게 정돈된 가든펜스가 매우 흡족합니다. 물론, 프로들에 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훨씬 많이 들고 2% 어설픈 구석도 있지만 나름 아주 훌륭합니다.

어제 저녁에는 일찌감치 마감작업을 끝내놓고 아내와 둘이 맛있는 삼겹살을 구우며 소주잔을 열심히 부딪쳤습니다. 우리 집 텃밭에서 자란 100퍼센트 유기농 상추며 갓이며 쑥갓, 부추들이 우리의 입을 더 즐겁게 해줬습니다. 특유의 향이 매혹적인 깻잎은 아직 좀더 기다려야 할 모양입니다.

오늘 저녁에는 선배부부와 함께 낚시를 가기로 했습니다. “아마 이 시간 동안 우리한테 일을 하라 그랬으면 엄청 피곤했을 거야!” 실제로 몇 시간 동안 낚시터에 하릴없이 앉아 있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입질이 팍팍 오고 물고기들이 잘 잡혀주면 덜 할 텐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심심하고 따분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죽이다가(?) 몇 시간 만에 낚아 올리는 엄청 크고 뚱뚱한 물고기… 그 동안의 따분함을 한방에 날려주기에 충분합니다.

희한하게도 집중해서 낚싯대를 째려보고 있으면 잠잠하다가도 제가 딴짓, 이를 테면 스마트폰을 본다거나 컵라면을 먹는다거나 낚싯대를 꽂아두고 이리저리 산책(?)을 한다거나 하면 낚싯대가 요동을 칩니다. 이런 징크스(?) 때문에 한참 동안 입질이 없을 때면 저는 일부러 딴짓을 해보기도 합니다.

일주일 단위의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 신선놀음까지는 아니어도 큰 걱정 없이 편안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늘 가져봅니다. 물 위를 우아하게 떠다니고 있는 백조… 하지만 물 아래에서 녀석의 발은 쉴새 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백조 생각이 자주 나는 요즘… 오늘 저녁에는 물고기를 많이 많이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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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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