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있는 교회… 과연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성경적인 교회, 과연 이 땅에 존재하는가? 문제가 있는 교회가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결론은 성경적인 교회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땅의 모든 교회는 성경적인 교회를 지향하고, 성경적인 교회가 되려고 노력한다.  문제가 있고 분쟁이 있는 교회의 모습이 ‘정상적인 교회 (a normal church)’이다. 죄성 (sinful nature)으로 가득 찬 인간들의 모임인 교회는 문제가 있고 분열, 분쟁이 있는 것이 정상적 (normal)이고 없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01_열린 마음, 열린 논쟁: 정상과 이상 사이

그러기에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건강한 교회 (a healthy church),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 (a church that pleases God),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a church as the Body of Jesus Christ)에 대해 구체적이고 의미심장하게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또 하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제시하는 이상적인 교회–성경적인 교회–는 과연 이 땅에 존재하는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만약 존재한다면, 과연 어떤 모습인가?

하나님의 교회를 고귀하게 여기는 필자는 매일 이 고민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물론 답을 얻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이 고민과 질문을 회피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더 예리하고 더 비평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열린 마음으로 의견을 나누고 논쟁해야 한다. 이런 과정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교회가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 필요하다. 이런 인고의 과정을 통해 우리의 교회가 좀 더 성경적인 교회, 바울이 꿈꾸는 교회로 성숙되어 갈 것이다.

 

02_패러다임 전환: 두 종류의 의사

이 땅에 수많은 크고 작은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이 땅에 존재하는 그 어떤 교회–작든 크든–도 하나님 나라에 무가치한 (valueless, worthless) 교회는 없다.

예외 없이 모든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중요한 사명과 달란트를 부여 받았다. 이 사명을 잘 감당하려면 각 교회는 적어도 사역의 한 분야에 스페셜리스트 (specialist: 전문의)가 되어야 한다. 20세기 교회가 제너럴 프락티셔너 (general practioner: GP, 가정의학의)를 지향하는 교회였다면 21세기 교회는 스페셜리스트를 지향하는 교회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된다.

스페셜리스트 교회는 어떤 특정한 한가지 사역에 집중한다. 그 사역은 ‘전문가 교회’이다. 예를 들면, 다문화 2세 사역, 노숙자를 돌보는 사역 등등… 그 분야에서만은 어떤 GP교회도 결코 넘볼 수 없는 전문가 수준의 교회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전문성 (speciality) 하나만 있어도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데 엄청난 공헌을 한다.

그렇다면 섬기는 교회에서 어떤 사역에 특별한 전문성, 독특성이 있는 발군의 전문가인가? 고린도전서를 통해 사도 바울이 제시하는 하나님의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

필자는 신약성경 중 교회 모습을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성경이 바로 고린도전서라고 주장한다.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쓴 시점을 기준으로 볼 때 고린도교회는 설립한 지 3-4년 정도 된 ‘어린 아이 수준의’ 교회였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3장 1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당신들을 영적으로 성숙한 자로 대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로 대한다.”(필자 사역)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개척한 후 1년 6개월이란 짧은 기간 동안 사역했다 (행 18:11). 그리고 에베소로 떠났다. 하지만 그 이후 고린도교회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그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그의 기대를 완전히 뒤집는 암울한 소식들이었다.

그는 아마도 이런 소식을 내심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코 속과 입 안을 즐겁게 해주는 진한 카푸치노 커피향 같은 소식, 혹은 귓가를 즐겁게 해주는 바이올린 선율 위의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 (집시의 노래) 같은 소식… 그러나 그의 기대와 전혀 다른, 아니 정반대의 소식이 들려왔다.

 

03_교회 집도의, 바울의 수술 칼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공동체의 건강하지 못한 모습에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자신의 모든 열정과 혼신의 힘을 쏟으며 세운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고통을 겪고 있었다.

교회는 점점 병들어가고 있었다. 이런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아마 자신의 귀를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자책했을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에게 인간적인 서운함과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치밀어 올라오는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여러 분파로 나누어졌다 (고전 1:10-13). 어떤 성도들은 ‘바울당’ 어떤 이들은 ‘아볼로 당’ 어떤 이들은 ‘게바 (베드로)당’ 그리고 다른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 당’이라 주장했다.

그리스도의 건강한 몸이어야 할 고린도교회는 극심한 파벌싸움의 중병을 앓고 있었다. 온 몸은 점점 썩어가고 여기저기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썩은 고름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더 이상 간단한 처방전으론 도저히 치료할 수 없는, 너무나 심각한 중병이었다. 대수술을 감행하지 않으면 도저히 완쾌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중병 환자였다.  이런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교회 집도의’ 사도 바울은 매섭고 날카로운 편지로 ‘수술의 메스’를 들었다.

자신의 모든 열정, 정열, 수고의 노력을 쏟아 부었던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가슴을 치며 통회하는 심정으로 편지를 썼다. 그 편지가 바로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 이다. 독자들은 지금까지 고린도전후서를 읽으면서 어떤 감정과 느낌이었는가? 이 두 성경을 읽으면서 맹숭맹숭하고 냉랭한 가슴이었는가? 통회하는 울분과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쓰라림이 있었는가? 만약 없었다면, 지금까지 성경을 너무 재미없게 읽었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수백 번, 수천 번을 읽어도 그 성경은 가슴을 별로 울리지 못했을 것이다. 삶에 별다른 큰 변화나 도전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04_이전과 전혀 다른 책

독자 제현이여, 지금부터라도 고린도전후서를 읽을 때 사도 바울의 쓰라린 가슴을 느껴보라! 갈기갈기 찢어지는 아픈 가슴을 온 몸으로 느껴보라! 두 눈에서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경험해 보라! 사도 바울의 피눈물이 나의 피눈물로 느껴지기 바란다!

사도 바울의 울분과 고뇌의 심정을 그대로 느껴보라! 분명히 고린도전후서가 이전과는 전혀 달리 읽혀질 것이다. 성경 속의 글자 하나하나가 생명을 살릴 것이다. 영혼에 신선한 충격을 줄 것이다. 사고와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시킬 것이다. 삶의 목표와 비전이 더욱 뚜렷하게 보일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글 / 권오영 (철학박사· 알파크루시스대학교 한국학부 학장)

Previous article막말하는 사람들은…
Next article내 사랑 시드니